《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12권 14.
계획도 없고 방향도 없는 혼돈만이 존재하는 것이라면, 그러한 격랑의 파도 속에서도 너를 인도해 줄 이성이 네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감사하라. 그 거센 파도가 너를 덮쳐서 네게서 모든 것을 휩쓸어가 버리고자 할 때, 너의 육신과 호흡과 거기에 붙어 있는 다른 모든 것들은 다 휩쓸어가 버리라고 하라. 하지만 너의 정신만은 절대로 휩쓸려가지 않게 하라.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12권 14 중에서
결혼식을 하루 앞둔 밤이었다.
다음 날 11시 식이라 신혼집에서 자고 아침 일찍 나가기로 했다.
새 가구와 새 가전제품 그리고 처음 덮는 새 이불까지… 낯설었다.
그제야 ‘아, 내가 결혼하는구나.’ 실감이 났다.
기분이 이상했다.
함 전달과 프러포즈 이벤트 준비로 피곤했던지 남편은 금방 잠이 들었다.
옆에서 코 골며 자는 남자 얼굴을 가만히 바라봤다.
그러다 엄마, 아빠, 동생 생각에 눈물이 났다.
우리 네 가족이 살던 울타리에서 나만 다른 울타리로 옮겨온 것 같았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무언가에 발을 내디딘 기분이었다.
이 이상한 기분은 신혼 기간 내내 함께 갔다.
그리고 어느덧 10년의 시간이 흘렀다.
스무 살 때, 타지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자취를 시작했다.
내일부터 시작될 대학 생활은 어떨까 떨리는 마음으로 누웠다.
함께 고향에서 올라와 같은 방을 쓰는 룸메이트가 먼저 잠들었다.
잠이 오질 않았다.
어두운 방에서 눈만 깜빡거리다 집에 있을 부모님과 고등학생 동생이 생각났다.
한동안 가족이란 단어만 떠올려도 눈물이 났다.
향수병이었다.
금요일이면 같이 고향으로 내려갔다가 일요일 저녁 함께 버스를 타고 돌아왔다.
혼자였다면 힘들었을지 모를 타지 생활이 고향 친구가 있어서 든든했다.
룸메이트와는 대학 내내 싸운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지금까지도 연락하는 몇 안 되는 친구다.
친구와 남편 모두 스무 살에 만난 인연이다.
룸메이트의 생일과 결혼식을 올린 날도 같고, 가족을 떠올리며 눈물 흘리던 지역도 같다.
결혼기념일이 다가오면 그 친구 생각도 함께 난다.
가족을 떠나 낯선 곳에서 새 출발 할 땐 두려웠지만 그때마다 사람이 있었다.
평생을 함께 해도 좋을 만한 배우자와 친구가 있었기에 잘 적응하며 지나올 수 있었다.
결혼기념일을 하루 앞둔 밤.
남편과 세 아이로 꽉 찬 집을 둘러본다.
나를 엄마라 부르는 세 아이 틈에서 친구에게 생일 축하 메시지와 작은 선물을 보냈다.
올해도 우린 한 살씩 먹어가고, 아이들은 커 간다.
10여 년 전의 나를 떠올리면서 생각한다.
언젠가 아이들이 독립하게 될 때, 가족의 빈자리가 좋은 인연으로 채워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