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허락한 시간으로부터 받은 힘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12권 20.

by 안현진

첫째, 아무런 목표도 없고 목적도 없는 행동을 하지 말라. 둘째, 공동체의 유익을 너의 행동의 유일한 목표로 삼아라.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12권 20.



남편이 강의하는 데 같이 가자고 했다.

집에서도 읽고 써야 할 책과 글이 있었기에 망설여졌다.

망설이는 데는 세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이곳엔 없는 알라딘 중고 매장을 갈 수 있다.

둘째, 남편과 은서와 데이트하는 여유 있는 시간이 앞으로 점점 줄어들 것이다.

셋째, 한 번 나갔다 오면 하루가 금방 지나가버린다.


세 번째 이유로 집에 머문다면 시간은 아낄 수 있었다.

하지만 결국 따라나선 것은 첫 번째, 두 번째 이유가 더 커서다.

남편이 두 시간 동안 강의하는 동안 은서와 나는 10여 분을 걸어 알라딘 중고 매장을 찾아갔다.

책을 고르고, 지갑 사정을 점검한 뒤 이건 살까 이건 뺄까 고민했다.

아이들 책과 내 책을 무겁게 이고서 스타벅스로 갔다.

남편이 보내준 쿠폰으로 맛있는 커피와 케이크를 먹으며 마치길 기다렸다.


돌아오는 길에 친정에 들렀다.

전부터 설치해 준다고 했던 CCTV를 오늘에서야 달았다.

남편은 집에서 챙겨 온 드릴로 선이 나올 구멍을 내고 실리콘으로 틈새를 메꾸는 전문가적인 면모를 보였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CCTV를 달고, 금순이와 새끼들 밥과 간식을 챙겨주고, 산책을 갔다 온 뒤 집으로 돌아왔다.


아침에 아이들 등교시키고 바로 챙겨서 따라나선 길이 벌써 저녁 시간이 다 되어 있었다.

이렇게까지 길어질 줄은 몰랐지만 후회 없는 시간이었다.

사고 싶었던 책도 저렴하게 사고, 은서와 평일 낮 카페에서 케이크와 커피를 마시는 여유로움도 즐기고, 남편과 셋이서 CCTV 사러 간 마트에서 간단하게 요깃거리도 샀다.

그리고 부모님 댁에 필요한 일도 해드리고 왔으니 뿌듯하다.


저녁부터가 본격적인 내 시간이다.

못다 쓴 글도 쓰고, 내일 있을 수업 준비도 하고, 밀린 집 정리도 해둬야 한다.

해야 할 일이 밀려 있는데도 괜찮은 이유는 시간에 대한 만족감 때문이리라.

앞서 보낸 시간이 내게 에너지가 되어주었기에 '괜찮아, 지금부터 하면 되지. 할 수 있어.'가 된다.

나에게 허락한 시간으로부터 받은 힘으로 다시 나를 움직여 나간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매일 내게 떳떳해질 수 있는 기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