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내게 떳떳해질 수 있는 기회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12권 19.

by 안현진

너를 구성하고 있는 여러 부분들 중에는 육신의 정념들을 불러일으켜서 너를 조종하여 꼭두각시로 부리는 부분보다 더 선하고 강하며 신성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마침내 깨달으라. 지금 나의 마음과 생각 속에는 무엇이 있는가. 두려움인가? 의심인가? 욕망인가? 아니면 그런 종류의 어떤 것인가?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12권 19.



종일 노트북 앞에서 서성거렸다.

대단한 글을 쓰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타자기 두드리기가 어려웠을까.

갈라진 머리끝을 매만지다가 아이가 가져오는 동화책을 읽어주다가 유튜브에 들어갔다가 다시 백지로 돌아오는 반복이었다.

낮잠을 자고 일어나 동생과 긴 통화를 했다.

어느새 날은 어두워지고 저녁을 챙겨 먹고 치우느라 시간이 또 흘렀다.

그리고 낮의 반복이 저녁에도 반복되었다.

머릿속에는 이런저런 생각들이 뒤엉켜 답답하기만 했다.

오랜만에 체중계에 올라갔다.

3kg이나 늘었다.

의자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늦게 자고, 군것질을 많이 하니 몸무게가 느는 것도 당연하다.

는 몸무게를 생각해서인지 내 몸이 더 무겁게 느껴진다.


일부러 핸드폰에 있는 유튜브도 지워놨는데 노트북 앞에 앉으면 한 번씩 들어가 본다.

좋아하는 영상을 보면서 자극받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유튜브를 켜는 순간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버린다.

다시 백지로 되돌아왔을 땐 차라리 그 시간에 뭐라도 쓰지 그랬냐고 스스로를 나무란다.

또 다른 내가 나를 방어하고 나선다.

'아니, 글이 안 써진다는데 어떡해. 그냥 오늘은 건너뛰자. 억지로 쓴 글은 읽는 사람한테도 다 표가 난다고. 노트북 그만 덮고 따뜻하게 불 올려놓은 침대로 가서 책 보다가 자자.'

이렇게 생각하면서 두 권의 책을 집어 들고 노트북을 끄러 갔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정말, 오늘은 못 쓰는 거야? 아니. 쓸 수 있어. 집중해 봐. 뭐라도 써 봐. 글이 안 써지면 안 써진다고라도 쓰기로 했잖아. 이대로 방으로 들어가면 마음 편히 책 읽을 수 있겠어?'

그런 마음으로 쓴 글이 지금 쓰고 있는 글이다.

게으름이었다.

못 쓴 게 아니라 안 쓴 거였다.


지금 내 마음속에는 무언가를 갖고 싶다는 욕망, 무언가를 이룰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뒤섞여 마음이 복잡하다.

피곤함과 체력 부족이 겹치면서 부쩍 낮에 존다.

정리되지 않은 책상 위가 내 머릿속 같아 어지럽기만 하다.

그런데 이런저런 이유는 다 핑계고 합리화였다.

이 시간까지 오늘 글을 시작도 못 했다는 것은 내가 조금 더 게을렀기 때문이다.

내 안에 있는 욕망, 의심, 두려움은 내가 키우는 존재다.

크게 키울 것인지 아주 작게 줄일 것인지도 스스로가 정한다.

내 손에 쥔 두 권의 책이 나를 글 앞에 앉혔다.

책과 글쓰기는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매일 내게 떳떳해질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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