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콘 튀는 걸 보다가

팝콘과 나의 가능성에 대하여

by 안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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펍. 펍. 퍼버법. 유리 뚜껑을 덮은 팬 안에서 팝콘이 튄다. 순식간에 옴박한 궁중팬이 팝콘으로 가득 찬다. 저마다 다른 속도로 튀는 팝콘을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도 가능성을 꽃피우는 시기가 다 다르지 않은가.


26개월 막내가 아침을 먹고 팝콘, 팝콘 한다. 아침 설거지도 다 끝내 놓았지만, 다시 가스레인지 앞에 섰다. 불부터 올려 팬을 달군 다음 기름을 둘렀다. 팝콘 알을 바닥에 깔리는 정도만 부은 뒤, 유리 뚜껑을 덮었다. 잠시 뒤, 펍 하는 첫소리와 동시에 퍼버법 하며 팝콘 알이 터진다. 센 불을 중간으로 낮추고 팬을 한 번 흔들어 준다. 아직 터지지 않은 알과 터진 알이 고루 섞이라는 의미에서다. 팝콘 튀는 소리가 줄어들면 불을 꺼야 한다. 안 터진 건 아까워도 어쩔 수 없다. 먼저 터진 팝콘이 타게 둘 수는 없다. 불을 끈 뒤에도 남아 있는 열기로 끝까지 터지는 알들이 있다. 유리 뚜껑을 살짝 열어 보았을 때 바깥으로 튀어나오는 녀석들도 있다. 갓 튀겨져 나온 거라 뜨겁다. 여기서 달게 먹고 싶으면 설탕을 녹여 팝콘 위에 뿌려 주면 된다. 그러면 캐러멜 팝콘처럼 달콤하게 먹을 수 있다.


처음에는 남편이 하는 걸 어깨너머로 보기만 했다. 전적으로 남편만 할 수 있는 일로 남겨두고 싶은 마음이 컸다. 아빠 없는 날 아이들이 팝콘을 찾을 때면 ‘엄마는 못 만든다.’라는 게으름 뒤로 더는 숨기가 미안해졌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세 번… 계속해 볼수록 팝콘 튀기는 능력도 업그레이드되어 갔다. 지금은 남편보다 더 잘 튀길 수 있다 자신한다.


팝콘 만드는 게 오래 걸리지도 않지만 타이밍을 놓치면 잘 탄다. 그래서 불 앞에 지키고 서 있어야 한다. 오늘은 유리 뚜껑에 부딪히는 팝콘을 멍하게 보고 있다가 갑자기 팝콘이 터지는 속도와 사람이 가능성을 꽃피우는 시점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일 먼저 터지는 팝콘처럼 일찍 성공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뒤늦게 터지는 팝콘처럼 대기만성형인 사람도 있다. 대기만성(大器晩成)의 한자를 풀이하면 큰 그릇은 늦게 이루어진다는 뜻으로 크게 될 인물은 오랜 공적을 쌓아 늦게 이루어지거나 나이 많은 노인이 되어 성공하는 일을 말한다.

내가 팝콘이라면 언제 터지는 게 좋을까. 일찍? 중간? 끝? 중요한 건 시점이 아니었다. 언제든 터트리기만 하면 좋겠다. 끝내 터지지 않는 알맹이로 남아 있지 않고, 온 힘을 다해 알을 터트려 나오는 팝콘이면 좋겠다. 불을 꺼도 끝까지 자신의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고 알맹이에서 팝콘이 되는 존재가 되면 좋겠다.


숱하게 팝콘을 튀겨 왔으면서 하필 오늘 이런 생각이 든 것도 이유가 있으리라. 나의 소명은 무엇일까, 나는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일까, 내가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등등 나에 대해 이것저것 묻고 고민하고 대답을 찾아 나가는 중이었다.


2006년도에 미국 퍼듀대 연구팀이 안 터지는 팝콘의 원인이 껍질 구조에 있다고 밝혔다. 열을 가해도 터지지 않고 남는 낟알들은 껍질에 공기가 빠져나가는 틈이나 상처가 있어 폭발에 이를 정도의 압력을 유지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연구를 주도한 퍼듀대 식품공학과의 브루스 하마커 교수는 “가열과정에서 너무 많은 수분이 빠져나가면 터지지 않고 그대로 딱딱한 낟알로 남게 된다”라고 말했다.


사람을 팝콘에 빗대어 표현하긴 했지만 크게 다른 점이 있다. 팝콘은 알맹이의 겉면에 틈과 상처가 있으면 압력을 유지할 수 없어 팝콘이 되지 못하지만, 사람은 다르다. 어떤 상처나 아픔이 있어도 극복하고 나아갈 힘이 누구에게나 있다고 믿는다.

불의 온도, 팬을 흔드는 시점, 불을 끄는 타이밍은 외부에서 오는 자극이다. 내가 꽃피울 신호라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아파하고 흔들리고 두려워만 한다면 계속 알맹이로만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팝콘처럼 펍 하고 터질 날을 기다리며 자신의 가능성을 의심하지 않고 묵묵히 계속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원하는 지점에 도달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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