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나는 대상에게 안길 수 있는 마음이란

26개월 막내 양치질 시키다가

by 안현진



photo-1604341841227-6dd5c2255842.jpg?type=w1 © nate_dumlao, 출처 Unsplash



“이렇게 양치를 안 하면 엄마는 사탕을 줄 수 없어!”


오늘도 양치질하는 걸로 26개월 막내와 씨름했다. 분명 츄파춥스 막대 사탕을 건네주며 약속했던 터였다.

선우가 교회 전단지와 함께 사탕과 젤리를 받아왔었다. 사탕을 보고 달려드는 동생에게 뺏기지 않으려 하다가 둘 다 한바탕 눈물 바람이 일었다. 젤리 하나를 주는 것으로 오렌지 맛 츄파춥스를 지켜낼 수 있었다. 아껴 먹으려고 냉장고에 넣어 둔 것을 오늘에서야 꺼냈다. 문제는 예전에 받은 막대 사탕을 책장에서 발견하고는 무얼 먹을까 고민하는 것을 은서가 봤다는 것이다. 이틀 전 먹고 싶어서 울고 떼쓰며 매달리던 사탕이 결국 은서에게로 넘어왔다.

“은서야, 사탕 먹고 양치해야 해. 알겠지?”

사탕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아이에게 다시 말했다.

“사탕 먹고 엄마랑 꼭 양치해야 한다?! 그래야 사탕 줄 수 있어.”

고개를 끄덕이며 “응.” 대답한다. 세 살에게 엄마와의 약속이란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지만 잠시 뒤 일어날 일에 대한 담보를 걸어두고 싶었다.

사탕을 먹으며 오빠들과 TV를 본다. 그동안 나는 거실에 앉아 글을 쓰고 있었다. 웃으며 달려오는 딸을 안았다. 사탕 다 먹었냐고 물으니 “응.” 말한다.

“그럼 이제 엄마랑 양치하러 가자~”

안겨서 화장실로 가는 순간부터 싫다고 버둥거린다. 우아앙 우는 은서를 붙잡고 양치시켰다. 일으켜 세워 좀 전에 엄마랑 약속하지 않았느냐고, 사탕 먹고 양치 안 하면 벌레가 아야 하게 한다고, 이렇게 싫어하면 이제 사탕 줄 수가 없다고 다소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세 살까지는 훈육이 들어가는 시기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위험하거나 양치질처럼 중요하다고 여기는 생활 습관에 대해선 말을 한다. 말하면서도 세 살이 무얼 알겠나, 어떻게 하면 양치질을 싫어하지 않을 수 있을까 생각하며 우는 은서를 바라봤다.

그때 아이가 울면서 내게 폭 안겼다. 높아졌던 언성과 감정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안긴 아이 등을 토닥이며 왜 우냐고 했더니 엄마가 하면서 뭐라 뭐라 말한다. 양치하기 싫었냐고, 그래도 이 안 아파지려면 해야 한다고 천천히 얘기했다. 그때까지도 훌쩍이던 은서를 안고 다시 화장실로 갔다. 컵에 물을 받아 세 번 뱉어내게 했다. 잘했다고, 이제 오빠들이랑 TV 보러 가라고 내려주니 뛰어간다.


의자에 앉아 생각했다. 혼나는 대상에게 혼나고 있는 와중에 안길 수 있는 마음이란 무엇일까. 아이에게 엄마란 존재는 무엇일까. 그러던 와중 TV 보는 시간이 끝나고 아이들이 방에서 하나둘 나왔다.

선우는 레고와 놀고 윤우는 종이접기를 하고 은서는 젠가 블록으로 논다. 안방에 있던 은서가 내 손을 이끌고 블록 쌓은 것을 보여준다. 이야, 우와 하는 감탄사로 은서가 블록 쌓는 것을 보고 있었다. 안방에 들어온 윤우가 침대에서 뛰다가 갑자기 은서에게 묻는다.

“은서야 가족이 좋아? 한 사람이 좋아? 엄마가 좋아?”

고개를 숙이고 블록 쌓기에 집중하고 있는 은서가 곧바로 답했다.

“아니야. 같다.”

이 말에 나와 윤우가 눈을 마주치며 웃었다. 오빠가 한 질문의 의도를 알고 답한 건지, 같다는 말이 무엇인지 아는 건지는 모르지만, 어느 쪽이든 놀라웠다.


아이에게 부모는 자기 세계다. 누군가에게 전적인 사랑을 받으면서 세계가 되는 시기는 지금뿐이지 않은가. 아이들은 커 가면서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가고 확장 시켜 간다. 그때는 부모가 자식과 분리되어야 한다. 다만, 힘들고 의지하고 싶을 때 언제든지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 수 있는 존재가 네 옆에 있다고, 가까이 있지 않아도 함께한 기억만으로도 힘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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