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하고 싶다

단발병과 히피펌에 대한 고찰

by 안현진


머리가 하고 싶다.

미용실에 가고 싶을 때는 똑같은 일상에 변화를 주고 싶어질 때다. 기분 전환도 되지만 내 몸 중에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것이 머리이기 때문이다. 내 머리 길이는 대부분 어중간한 쇄골 즈음에 머물러 있다. 가슴 아래까지 길게 길러 보고 싶은데 거기까지 가는 길이 멀다. 한 번씩 찾아오는 단발병을 이겨내지 못하고 짧게 자르고 다시 기르다가 파마도 했다가 풀기의 반복이다. 파마했다가 푸느라 1년에 두 번은 미용실에 갔었다.


셋째 임신과 조리 기간 덕분에(?) 강제로 머리가 많이 길었었다. 그 머리를 작년 겨울, 턱선까지 싹둑 자른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1월에 공저에 참여하면서 원고를 쓰고 2월까지 계속 퇴고에 퇴고를 거듭하던 중이었다. 머리도 지끈지끈 아프고 긴 머리가 거추장스럽게 느껴졌다. 머리가 짧아지면 뭐든 가벼워질 것만 같은 단발병이 찾아온 것이다.


가슴이 답답하거나 하는 일이 잘 안 풀리면 헤어스타일부터 변화를 주고 싶다. 마음가짐을 새로이 하는 나만의 의식이다.

긴 머리에서 단발 같은 급격한 변화는 망설인다. ‘안 어울리면 어쩌지? 이상하면 어쩌지? 긴 머리가 더 나으면 어쩌지?’ 하는 나 혼자 신경 쓰는 타인의 시선 때문이다. 하지만 단발로 자르고 나면 묘한 해방감을 느낀다. 가벼워진 머리만큼 내 고민의 무게도 가벼워진 것 같아서다. 긴 머리에서 단발로 자르는 것은 꽤 큰 마음의 움직임이 있었음을 알기에 자른 뒤 후회하더라도 자르기로 결심했을 때의 나를 응원한다.




© taiamint, 출처 Unsplash


단발병처럼 한 번씩 찾아오는 것 중 하나가 히피펌을 하고 싶은 욕망이다. 나처럼 숱 많은 사람이 머리 처음부터 끝까지 파마하면 헤그리드 머리가 되기 십상이다. 큰 마음 먹고 찾아갔다가 거절당한 적도 두어 번 있다. 집 앞 미용실에서 해 본 적도 있었는데… 그때 사진이 한 장 남아 있다. 예상한 대로 <메리다와 마법의 숲>에 나오는 메리다 머리가 되었다.

인터넷에서 찾아간 머리랑 다르게 나오는 것은 얼굴이 달라서이지 않겠나 하며 외모지상주의가 되기도 한다. 이건 내가 해선 안 되는 머리라고 생각하면서도 가끔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일종의 일탈이다. ‘에라 모르겠다.’ 하는 마음이랄까.


미용실 갈 시기를 보고 있다. 조금만 더 기른 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던 것이 쇄골 약간 아래까지 길렀다. 이 구간을 넘기기가 왜 이렇게 어려울까. 파마를 하기에도 어중간하고, 거지존을 잘 지나갈 수 있다는 레이어드 펌을 해야 겠다 마음먹고 있던 참이었다.

지금까지 이것저것 머리를 해본 결과, 나는 붕 뜨는 파마보다는 차분한 생머리가 더 어울리고, 짧은 단발 보다는 턱선 아래의 중간 단발이 더 나았다. 둥글고 넙데데하고 평면적인 얼굴형이라 그렇다. 그렇기에 파마가, 히피펌이 또 잘 어울린다는 말에 솔깃한다.



© lexjann, 출처 Unsplash



요즘 재밌게 보고 있는 드라마 <종이달>에서 김서형 배우의 숏컷이 무척 예뻐 보였다. 드라마 속 유이화 라는 인물과 잘 어울리는 이미지였다. 헤어스타일이 단정하고 단아하고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더욱 부각시켰다. 어쩜 숏컷도 저렇게 예쁘게 어울릴 수 있을까 감탄한다. 엄두가 안 나는 머리기에 대리만족하며 보고 있다.

남편에게 짐짓 진지한 척 물었다.

“나 숏컷으로 잘라 볼까요.”

“…… 그러지 마…….”

짧은 침묵과 흔들리는 눈동자로 말하기도 전에 이미 대답을 들었다.

남편은 연애할 때부터 긴 생머리를 좋아했다. 파마를 해도 머리를 짧게 잘라도 예쁘다는 말은(?) 해주지만 여전히 긴 생머리를 좋아한다.

아들 둘에게는 뽀글뽀글 파마머리를 보여주며 엄마도 이렇게 머리해 볼까 물어봤다.

“아니, 아니. 이상할 거 같아.”

첫째와 둘째 모두 즉답한다.

“왜… 엄마는 이 머리 하고 싶은데….”

“그럼 해 봐!”

“그러다 이상하면 어떡하지?”

“그럼…. 어쩔 수 없지~”

답변이 시원시원하다. 아이들 눈에도 생머리가 더 예뻐 보이나? 남자에게 긴 생머리란 대체 무어란 말인가. 남편과 아들의 의견은 참고만 할 뿐, 내가 하고 싶으면 한다. 당연하게도 내 머리니까.



그래서 머리를 어떻게 하기로 했냐 하면, 아직 고민 중이다.

머리 스타일을 고민하는 나는 똑같은데 1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 사이에 달라진 점이 있다. 머리가 안 어울리면 어떡하지, 망하면 어떡하지에 대한 걱정이 타인의 시선에서 나로 옮겨 왔다.

머리가 잘 됐을 때와 안 됐을 때, 만족과 불만족의 초점이 오롯이 나에게 맞춰져 있다. 거울을 볼 때마다 기분이 좋은지, 후회막심한지가 생활의 질을 좌우했다. 이것도 생각하기 나름이다. 생머리를 하든 히피펌을 하든 단발만 아니면 묶을 수 있으니 수습할 수 있다. 그러니 크게 고민하지 말고 그 순간의 마음을 따르자. 남의 시선이 아닌 나를 더 신경 쓰고 있다는 발견을 한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그래, 나만 만족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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