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기분 좋게 하는 일

책, 드라마, 글쓰기 수업 그리고 아이들

by 안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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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집으로 돌아오면 정신이 없다.

"비누로 손 먼저 씻어~"

"옷 갈아입어야지~"

"벗은 옷은 빨래통에 넣어~"

한 번 말했을 때 들으면 좋을 텐데 저마다 할 일로 바쁜 아이들에게 여러 번 말하게 된다.

그러다 점점 언성이 높아진다.


아이들 간식 문제로 남편과 부딪혔다.

바깥놀이할 때 주웠다는 멘토스를 안된다고 가져갔더니 남편이 대체할 만한 다른 간식을 찾는다.

삐져서 방에 들어가 있는 선우에게 뭔가를 주고 나온다.

눈빛과 몸짓이 어색하다. 입을 오물거리는 게 수상하다.

"뭐 줬어요?"

입을 앙 다물고 고개를 젓는다.

"윤우야~ 엄마도 줘~~"

타요 과자다.

저번에 선우랑 마트 갔을 때 사 온 거 뭐라 했더니 하나만 먹고 나머지는 넣어 뒀던 거다.

한숨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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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안된다고 안 주는데 선배는 주고. 애들이 뭐라 생각하겠어- 나만 나쁘잖아요!"

"어차피 유치원에서 먹잖아."

"유치원에서 먹으니까 집에서라도 안 줘야지!"

"내가 책에서 본 게 있어서 그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책에서 한 명이 억제하면 한 명은 풀어줘야 한대. 그거 따라 해 본 거야."

"먹는 것도 그렇고 티비도 그렇고 컴퓨터도! 엄만 안되고 아빤 되고. 그러니까 애들이 자꾸 내 눈치만 보잖아 -"

"그런 거 아니야. 너무 오버하지 마. 네가 다 맞는 것도 아니잖아. 내가 찾아서 보여줄게!"


최대한 아이들에게 자극적인 건 늦게 접하게 해주고 싶은데 남편이 그 벽을 조금씩 허문다는 생각에 답답했다.

조리원에서 돌아오니 보여주는 영상 종류도 넓어져 있고 컴퓨터도 혼자서 만질 수 있었다.

책에서 하는 말도, 남편이 하는 말도 무슨 말인지 알겠다.

그래도 먹는 거에 있어선 나랑 사전에 협의된 건데 이렇게 나 몰래 줄 때마다 답답하다.

나만 나쁜 사람 된 것 같다.


"엄마 나 피아노 치는 거 봐봐~~" (선우)

"엄마 티비 틀어죠~~" (윤우)

엄마 마음을 모르는 아이들은 제 요구사항만 얘기한다.

둘 다 해주기 싫었다. 상한 마음이 아이들에게 갈까 봐 말도 최소한으로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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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에서 빨래를 개면서 생각했다.

'애들 숨통 트여준다고? 그럼 나는 숨 막히게 하는 건가? 같이 안 되는 건 안된다 해야 혼동이 안 오지!'

한편으론 아이들 마음도 남편 마음도 이해가 갔다.

'그런 과자 얼마나 먹고 싶겠어... 간지러운 거 알고 잘 참고 있는 거 아는데...'

'진짜 내가 숨 막히게 하는 건가... 그렇다고 안 좋은걸 줄 순 없잖아...'


은서가 찡얼거린다.

안고서 눈을 마주쳤다.

으응- 으응- 옹알이를 하면서 동그랗게 눈을 뜨고 나를 본다.

그 순간 마음속에 있던 미운 감정이 스르르 녹았다.

'아... 너 보니까 힐링된다 은서야...'

거기다 오늘 저녁 문장 수업도 있고 기다리던 드라마도 하는 날이다.

거실에는 낮에 도착한 책도 쌓여 있다.

기분이 좋아졌다.

안 좋게 있을 이유가 없다.


잠시 뒤 남편이 방에 들어온다.

"뽀뽀 좀 해보자~~~"

"싫어 -"

은서를 방패 삼았다. 은서를 사이에 두고 실랑이를 하다가 키득거리며 웃었다.

"은서 보면서 힐링하고 있었어..."

"그래? 나는 선우 안으면서 힐링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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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뒤 선우가 한 손으로 피아노 친다고 보러 오라고 부른다.

벌떡 일어섰다.

휴대폰으로 동영상도 찍고 사진도 찍었다.

앨범 보면서 아이들이랑 웃었다.


남편이랑 잘 싸우지도 않지만 싸우더라도 한 시간을 안 넘긴다.

아이들 때문에 싸워도 아이들 덕분에 금세 화해한다.

이 일을 계기로 나를 기분 좋게 하는 게 뭔지 확실히 알게 되었다.

오늘 잔뜩 도착한 책, 드라마, 글쓰기 수업.

그리고 소중한 내 아이들.


'그렇지, 아이들은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존재였지!'

잠투정한다고 짜증을 부려도 이 생각을 하니 짜증이 나지 않았다.

은서를 볼 때마다 안을 때마다 "은서 좋아! 너무 귀여워!" 란 말이 절로 나온다.

선우, 윤우에겐 "엄마 뽀뽀~" , "엄마 꽉 안아줘!"를 자꾸 요구하게 된다.


너무 좋다.

내가 세 아이 엄마라는 게.

선우, 윤우, 은서 엄마라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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