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악의는 도대체 어디에서 나온 걸까요.” ‘가시노’의 소설. ‘악의’의 한 문장이다.
‘가시노’의 소설, ‘악의’의 모든 시작은, 베스트셀러 작가의 죽음이 신호탄이었다. 범인은 금방 잡혔다.
그의 친구였다. 허술한 트릭을 사용했던 범인은 손쉽게 잡혔다.
그렇다면, ‘왜’ 범인이 베스트셀러 작가를 죽였는가.
어떤 악의가 범인이 베스트셀러 작가를 죽이도록 만들었는가.
범인은 자신이 죽였다는 사실은 순순히 토해냈지만, 그 부분만은 꽁꽁 베일에 숨겼다.
범인의 자택을 수색하는 도중, 수많은 낡은 노트가 발견되었다.
하나같이 베스트셀러 작가가 출판한 소설들의 내용이 빽빽하게 담겨있는 것들 뿐이었다.
그 외에 다른 것들이 발견되었다. 범인의 수기와 비디오.
자신이 잡히기까지의 과정과 있었던 일들이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그 발견과 함께, 그의 ‘악의’가 세상에 드러났다.
범인은 베스트셀러 작가의 ‘고스트 라이터’였다.
베스트셀러 작가와 친구였던 그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평가를 받고자 그의 자택에 방문했다.
그의 자택을 지속해서 방문하다가, 그의 아내와 눈이 맞게 되었고, 불륜을 저질렀다.
둘의 사랑이 깊어질수록, 작가는 둘의 사이를 의심하고, 본인의 아내에게 폭언과 폭행을 일삼았다.
범인은 본인과 여성의 상황이 도덕적으로 옳지 못하다고 생각하지만 여성의 멍든 몸을 보고,
사랑에 냉정을 잃고 악의를 품었다.
둘은 공조하고, 작가가 잠든 사이에 숨통을 끊으려다 미수에 그쳤다.
작가는 아내가 이 상황에 연루된 사실과 증거들로 범인을 협박했다.
범인은 작가의 여성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협박에 굴했다.
그것을 빌미로, 범인은 작가의 ‘고스트 라이터’로서 글을 써나가게 되었다.
그런 범인에게 작가가 말했다.
“내 이름이 아니었으면, 네 글은 그렇게 수많은 독자에게 읽히는 일도 없었단 말이야.
내 이름은 특정인의 이름이 아니라, 책을 팔기 위한 상표 정도로 생각하면 돼.”
얼마 지나지 않아, 작가의 아내는 불의의 사고로 죽게 되었다.
범인은 작가를 의심했지만, 증거는 단 하나도 없었다.
범인은 세상에 대한 마지막 미련마저 사라져, 정신을 놓고 글을 써갔다.
죽은 그녀의 마지막을 기리기 위해서.
작가는 해외로 떠나기 전, 마지막 소설을 써주면 둘의 범행증거를 돌려준다고 범인에게 약속했다.
하지만 막상 당일이 되니, 작가는 말을 흐리면서 언젠가는 돌려주겠다는 식으로 얼버무렸다.
지금까지의 울분이 터진 범인은 충동적인 살인을 저질렀고,
급작스러웠던 상황에 조잡한 트릭을 사용했다가 덜미를 잡혔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모든 내용이, 고백과 함께, 범인의 수기와 비디오테이프에 담겨있었다.
그의 악의의 진실이 세상에 퍼지자, 사람들은 자신이 구매한 책을 환불해 달라,
지금까지의 수익을 모두 반환해라, 문학상을 박탈해야 한다,
당신을 믿었는데 독자들을 배신했다, 는 악의를 뱉어내기 시작했다.
그런 악의 가운데 가장 강렬한 악의는, 베스트셀러 작가의 책 판매량이 사건 이후 늘어났다는 사실이었다.
과연 그들에게 악의를 뱉을 자격이 있을까.
그들은 의심하지 않고, 베스트셀러 작가의 작품을 샀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작가가 쓴 글을 읽고, 작가의 생각이 본인의 것이라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 안에 숨겨진 악의는 알려고 하지 않고. 누군가는 되려 그 악의를 받아들이고 싶어서 책을 샀다.
그것이 거짓임을 알면서도.
우리는 글을 읽을 때, 의심할까.
당신은 읽으면서 의심한 적이 있는가.
당신은 악의를 가지고 읽었는가. 아니면 순종적으로 받아들였는가.
그리고 당신은 의심했는가. 나의 ‘악의’를.
‘가시노’라는 작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의 말들은 내가 노트에다가 끄적였던 내용을 늘여놓은 것일 뿐이다.
‘가시노’라는 이름은 선미의 ‘가시나’라는 노래에서 영감이 온 것일 뿐, 별다른 의미도 없다.
그런데도 이 글을 읽는 동안 의심했을까.
작가의 이름도, 방금의 내용도, 다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왜 책을 읽을까.
책을 사고선 한 번 펼친 사진을 SNS에다가 게시한 후, 중고 거래로 책을 판매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실로 충격적이고, 신선한 악의였다.
심지어 그 사람은 책의 어떤 부분이 맘에 들었다.
어떤 부분이 사회의 부조리를 절절히 보여주었다. SNS에 게시한 사진에 구구절절 써 내려갔다.
다른 사람이 쓴, 블로그의 글을 그대로 복사해서.
그 모습은 순수 악의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면서도 블로그의 글에 공감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럼 그 사람의 공감은 본인의 생각일까, 아니면 블로그 주인의 생각일까.
그 사람이 사회의 부조리에 품은 악의는, 본인의 악의가 맞을까.
우리는 책의 무엇을 볼까.
어느 날, 한 연재소설에 달린 댓글이 눈에 들어왔다.
“이 작가님은 믿고 봐도 됩니다. 읽을 때마다 매순간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그리고 댓글의 말대로 그 작품은 절로 감탄이 나왔다.
다른 유명 작가들의 문장을 그대로 복사해서 본인의 소설에 사용하고 있었다.
그의 악의가, 글 안에 잔뜩 담겨있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사람들은 작가를 옹호했다.
“이 정도면 표절까지는 아니다.”, “누가 이걸 표절이라고 생각합니까?”
그들은 작가를 의심하지 않았다. 작가가 보여준 것만을 믿었다.
악의를 가지지 않고, 순종했다. 그들은 작가의 악의에 전염되었다.
왜 책을 읽을까. 지식을 얻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본인의 지적 허영심을 보여주기 위해서인가.
왜 책을 볼까. 누군가의 생각을 보고, 본인만의 생각을 만들기 위해서일까.
아니면, 누군가의 생각을 보고, 본인의 생각이라고 착각하기 위해서일까.
누군가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보고 들은 것을 있는 그대로로 믿고,
의심하지 않고, 순종적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 읽을까.
책을 읽을 때, 우리는 작가의 악의를 읽고 있다. 글 곳곳에 작가의 악의가 가득 차 있다.
자신이 본 세상을 우리에게 악의를 담아서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모르는 사이에 그 악의에 전염된다.
누군가의 악의를 본 후, 우리도 자신의 내면에 악의가 피어난다.
저 사람이 이런 말을 했어. 그러니 저 말이 맞을 거야. 그것을 우리는 본인의 악의라고 착각한다.
애초에 악의를 품은 적도 없다. 누군가의 악의에 전염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믿는다. 저 사람이 이런 말 했는데 거짓이겠어. 거짓된 악의를 품는다.
거짓된 악의에 속는 이유는, 악의를 가지지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악의를 마주할 때는, 우리도 악의를 가져야 한다.
저 악의가 진실한 악의인지. 내가 악의에 전염된 것이 아닌지.
범인이 누구인가. 즉, 무슨 책을 읽었는가도 분명 중요하다.
범인이 누구인지 알아야, 사건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자신이 얻고자 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대상을 올바르게 찾는 것도 분명 중요하다는 얘기이다.
하지만, 범행의 동기는 무엇인가. 즉, 왜 그 책을 읽었는가가 중요하다.
단지 악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나만의 악의를 가지기 위해서인가.
우리는 의심하고, 악의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그 끝에서, 내가 품게 된 악의가, 나의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의 거짓된 악의인지. 알아야 한다.
그런 ‘악의’를 세상에 널리 알려야 한다.
내 노트 안에 적혀있는 이 ‘악의’가 세상에 널리 퍼질 그날도 언젠가는 올 것이다.
추리소설은 자고로, 반전이 중요하다. 앞으로 이어갈, 뒤의 내용은 미리 정해 두었다.
범인이 품었던 ‘악의’는 거짓된 악의였다.
자신이 고스트 라이터였던 것. 친구의 아내와의 불륜. 베스트셀러 작가의 인성.
그 모든 것이 거짓된 악의였다.
우리는 하나부터 열까지, 범인의 수기, 비디오테이프, 고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범인의 말을 믿었다. 악의를 품고, 의심하지 않았다.
증거였던, 고백이었던, 수기와 비디오테이프는 모두 거짓이었다.
범인이 적었던 자기 고백의 글. 자기 고백의 비디오테이프.
지금까지 자신이 적어왔던 노트 안의 소설까지.
그 모든 것은 자신의 진실한 악의를 숨기기 위한, 거짓된 악의였다.
죽은 자는 말을 하지 못한다. 오직, 산 자만이 그 입을 떠벌릴 뿐. 그 점을 악의적으로 이용했다.
꽁꽁 베일에 숨겨져 있던, 그의 악의가 얼굴을 쳐들었다. 그의 진정한 악의는 베스트셀러 작가의 몰락이었다. 그가 쌓아온 모든 것들을 무너뜨리는 것이 목적이었다.
자신의 초라한 모습과는 정반대 되는, 승승장구하는 친구인 베스트셀러 작가의 모습에 일그러진 꽃이 피어났다. 그 꽃이 활짝 피었을 때, 만개한 악의가 그를 죽인 것이었다.
처음에는 악의를 숨긴 채, 베스트셀러 작가인 친구와의 인연으로 성공할 생각으로 만남을 지속해 갔다.
하지만 병에 걸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자신 안에 묻어두었던 악의를 가감 없이 방출했다. 거짓된 악의 속에, 진실한 악의를 숨김으로.
사람들은 또 의심하지 않았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믿었다.
그들은 범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범인의 악의에 악의를 품어 의심하지 않고, 순종했다.
그 결과 그들은, 범인과 같은 악의를 가지게 되었다. 그 악의가 자신들의 것이라고 믿었다.
‘악의’에 쓸 문구를 하나 적겠다.
“그런 악의는 도대체 어디에서 나온 걸까요.”
우리는 악의를 가지고, 의심하고 또 의심해야 한다.
누군가의 책도. 누군가의 고백도. 누군가의 글도. 누군가의 말도.
자신이 믿는 만큼, 의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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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베스트셀러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베스트셀러 작품 ‘악의’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주어 감사를 표합니다.
당신에게 ‘악의’가 마음에 들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