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향 맛이 나는 ‘자유’

by 아니아즈


Freedom does not exist.


The freedom we enjoy is a freedom that has been learned and suppressed.

However, we take such freedom for granted and believe it to be freedom.

This is because it is the only freedom we have enjoyed since we were born.


What is freedom?


It is said that freedom is a beautiful and shining being,

and that freedom is something that we must pursue even with blood on our hands.

After giving up our flesh and blood and taking on enormous responsibility,

we gain 'freedom', but that 'freedom' is also just 'freedom' with only a drop of the minimally refined scent of 'freedom' added.

Although it doesn't contain bananas, it's no different from something called banana milk.


뜬금없이 영어로 작성한 에세이를 본다면 무슨 생각과 감정이 들까.


일단 고백하자면, 내 영어 실력은 그리 출중하지 않다.

위의 영문 또한 번역기를 수차례를 돌려보며,

내가 썼던 원문의 느낌을 최대한으로 살려보고자 보이지 않는 노력을 거듭한 부산물이다.

그렇다면, 굳이 왜 영어로 작성하였는가, 에 대한 의구심이 피어오를 거다.

누군가는 내게 말할 수도 있다.

우리는 한국인이기도 하고, 현재 글을 작성 중인 장소가 ‘한국’에서 운영 중인 ‘한국’의 플랫폼이지 않냐.

그런데 영어로 에세이를 작성하는 행위에 고개가 갸웃할 것이다.


그런 질문을 받는다면, 미리 준비해 둔 답변이 있다.

에세이는 ‘자유’ 형식 아닌가. 이것이 그 답변이다.

자유형식으로 쓰되 ‘한글로만 작성’ 해야 한다는 규정이 고정되어 있다면, 그것은 ‘자유’ 형식이 맞는가.

우리의 선택지에 제한이 있다면, 그것을 ‘자유’라고 칭할 수 있을까.

분명, 에세이는 자유형식이다.

하지만 왜 어떠한 형식으로 작성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고, 결국 그렇게 행동할까.

우리는 자신의 자유 의지에 따라, 선택하고 행동한다고, 학습받았으며 그렇게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정확히는, 본인이 ‘본인의 생각’으로 ‘선택’했다는 사실에 중점을 둔다.

그 선택이 유도되었고, 본인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정해져 있어도,

‘본인’이 ‘선택’했다면 그것을 ‘자유’라고 생각한다.


다섯 가지의 선택지가 있고, 그중에서 하나만을 고를 수 있다고 해보자. 고르는 것은 분명 자유다.

하지만 고를 수 있는 것이 다섯 가지로 한정되어 있다면, 이것은 진정한 자유라고 이름 붙일 수 있을까.

다섯 가지의 선택지 안에 본인이 원하는 선택지가 없을 수도 있고,

애초에 다섯 가지의 선택지 중에 정답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결국 다섯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고, 우리는 그것에 자유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우리의 자유란 아름답고 또한 빛나는 것이 아니다.

자유에서 빛이 난다면, 그것은 자유 본연의 빛이 아니다.

진정한 빛을 자유라는 거울이 반사해서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보는 건, 자유라는 탈을 쓴 억압이며, 자유라고 착각되는 자유의 연속이다.

그리고 그 족쇄 속에서 나름 만족한다.

모든 것은 자신의 선택이었다고 외치며. 선택이라는 자유를 했다고 외치며.


과연, 진심으로 그렇게 행동하고 싶었을까. 자유에 따라 본인이 하고 싶은 선택을 한 것인가.

우리의 선택지는 제한되어 있었고, 우리가 할 수 있던 선택 또한 제한되어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이 선택지 중 하나를 선택했기에, 그것을 자유라고 말한다.

우리는 외친다. I can do it. 나는 할 수 있다고.

나는 여행을 갈 수 있고, 결혼할 수 있고,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할 수야 있다.

물론 처음부터 우리가 할 수 있었던 것만을, 우리는 ‘할 수 있다’.


우리는 들판 위의 양들이다. 우리가 있는 들판은 울타리로 둘러싸여 있다.

우리는 들판을 신나게 뛰어다닌다. 들판의 풀과 바람을 느끼며, 이것이 자유의 맛이구나,라고 말한다.

자신이 들판 위를 뛰어다닌다는 사실만을 의도적으로 생각하고,

자신이 뛰어다니고 있는 들판이 울타리로 둘러싸여 있다는 것은 본능적으로 망각한다.

자신에게 허용된 범위 내에서, 자신에게 허용된 들판의 넓이 내에서의 자유를 누리고 있을 뿐이다.

이것은 자유일까.


아니다.


자유처럼 생겼기에 우리가 자유라고 믿고 있을 뿐, 자유가 아니다.


자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는, 학습되고 억압된 자유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자유를 당연하게 여기며, 그것을 자유라고 믿는다.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누려온 자유는 그것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자유란 무엇인가.


자유란 아름답고 또한 빛나는 존재이며, 자유라는 건 우리의 손에 피를 묻히면서도 추구할 존재라고 한다.

그렇게 우리의 살과 피를 내어주고 막대한 책임을 진 끝에 우리는 ‘자유’를 얻게 되지만,

그 ‘자유’ 또한 최소한으로 정제한 ‘자유’의 냄새를 딱 한 방울만이 첨가된 ‘자유’ 일뿐이다.

바나나가 들어가 있진 않지만, 바나나 우유라고 이름 붙인 것과 다를 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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