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앞에 있는 건, 이제부터 ‘오리’다.
선생에게, 아니. ‘오리’가 퍼덕인 날개에 맞은 탓에, 달아오른 뺨의 열기를 잘근잘근 곱씹으며,
그렇게 정의 내렸다.
중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나만의 ‘오리’라는 단어를 만들어냈다.
‘오리’라는 단어의 영감을 받은 곳은, 시골이었다.
아버지의 시골에는 꽤 큰 연못이 있다.
어렸을 적 나는 시골에 가면, 가장 먼저 통발을 연못에 던져놓고, 다음날 걷어드려 민물새우를 잡곤 했었다. 그날도 던져놓았던 통발을 걷으러 가던 길이었다.
연못 주변 들판을 오리들이 걸어 다니고 있는 모습이, 어린 내 시야에 들어왔다.
마침 심심했던 나는 그 뒤를 쫓아다녔다. 오리를 보자 머리를 스쳐 간, 체리필터의 ‘오리 날다’를 흥얼거리며.
내가 무서운 기세로 쫓아오자 오리는 꽥꽥거리며 퍼덕퍼덕 뛰어다녔다. 그리고, 그뿐이었다.
비둘기의 뒤를 쫓으면 하늘 위로 날아오르듯이, 오리도 날개를 흔들어 하늘로 날아갈 줄 알았다. 하지만 그들은 목을 긁는 울음소리를 내며 퍼덕퍼덕 뛰어다닐 뿐, 날지 않았다. 날개가 있지만, 귀를 막고 싶은 그런 울음소리만 뿜을 뿐이었다.
흥이 떨어져 뒤쫓는 것을 그만두자, 오리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뻔뻔하게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느긋하게 걷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훑어보고선, 관심을 민물새우가 가득 담겨있을 통발로 돌렸다.
듣기 싫은 오리의 목을 긁는 울음소리를 지워내고자, 체리필터의 ‘오리 날다’를 흥얼거리며.
내 앞에 있는 ‘선생’이었던 건, 그 어린 시절 오리와 다를 바 없었다.
내 귀를 후비는 목을 긁는 우는 소리가 내 신경을 긁었다.
당시 나는 반장이었다. 그 길은 시작부터 끝까지 순탄치 않았다.
첫 투표로, 후보 3명 중 내가 가장 많은 득표수를 받았다.
그렇게 투표가 끝난 줄 알았는데, 반장이 되려면 반 전체 중 과반수의 득표를 받아야 한다, 는 소리를 하며 나와 부반장, 둘만으로 재투표를 했다.
무효표가 나왔으니, 다시. 서로 동표이니, 다시. 계속, 계속 투표했다.
심지어 하교 시간임에도 투표를 했고, 결국 내가 되었다.
그리고 내게 ‘오리’가 한 첫 ‘오리’ 소리는 내 뇌리에 못을 박았다.
“난 솔직히 너 맘에 안 들어.” 그러고선, 홱 가버렸다.
그 소리를 듣자마자 숨이 턱 막혔던 나와는 달리,
‘오리’는 어린 시절 속 오리처럼 뻔뻔하게 엉덩이를 흔들며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 이후로, 내 말은 들어보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꽥꽥 소리를 질러댔다.
아니, 알면서도 모르는 척했다. 계속되는 상황에 나는 포기해 버렸다.
오리의 꽥꽥거리는 소리에 고통스러워, 귀를 닫아버렸다. 눈앞의 상황에서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다.
듣기 싫은 오리의 목을 긁는 울음소리를 지워내고자, 체리필터의 ‘오리 날다’를 마음속으로 불렀다.
‘나는 꿈을 꾸었죠. 네모난 달이 떴죠.’
내 귀로 들어오는 꽥꽥거리는 소리가 커지면, 내 마음속 노래도 커졌다.
‘이제는 하늘로 날아갈래요. 하늘 위 떠 있는 멋진 달 되고 싶어.’
‘이렇게 멋진 날개를 펴. 꿈을 꾸어요. 난 날아올라.’
지금 이 상황이 어서 지나가길 바라며, 끝나지 않는 노래를 계속, 계속 불렀다.
시간이 얼마나 흘러야 끝나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끝나는 순간만큼은 알았다.
꽥꽥거리는 오리의 마지막 울음소리는 항상 같았기 때문이다.
‘왜 너 같은 놈이 반장이 되어 가지곤, 지금이라도 안 늦었으니 부반장이랑 바꾸던지 해.’
마음껏 꽥꽥거리고 난 후 자리를 뜨는 ‘오리’의 모습을 훑어봤다.
어린 시절의 오리같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뻔뻔하게 엉덩이를 씰룩이며, 웃는 얼굴로 부반장을 불렀다.
오리의 꽥꽥거리는 소리를 들은 날의 늦은 밤, 베개를 흔들어대며 주먹을 휘두르곤 했다.
베개를 향해 무차별적인 폭력을 가했다. 내 앞에 있는 건, 이제부터 오리다.
그렇게 생각하며 베개를 폭행했다. 분이 풀릴 때까지, 주먹을 휘둘렀다.
분이 풀리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폭행을 가한 후에도, 바뀌는 건 없었다.
결국 제풀에 지쳐 잠이 들 뿐이었다.
나는 항상 깨어있는 채로, 꿈을 꾸었다.
꽥꽥거리는 그 주둥이를 콱 쥐고선, 인정사정없이 뒤통수를 때려주는 꿈을 꿨다.
달콤한 꿈은 오래가지 않았다. 꿈에서 깨면, 그런 일은 없다, 자신을 혼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다른 ‘오리’를 만났다.
도서관 사서를 통해, 곧 교내 활동으로 작가와의 만남이 열릴 예정이라는 소식을 접했다.
각 반에서 한 명만을 뽑았기에, 나는 기대를 한가득 안고 선생이 공지해 주길 기다렸다.
그런 나를 기다린 건, 감감무소식이었다.
공지가 없는 것에 의구심이 몸을 불려 가는 도중, 참가자 명단이 나왔다.
명단의 우리 반 대표는 정해져 있었다. 우리 반 성적 1등인 친구였다. 이 상황에 나는 멍해졌다.
그 친구에게 묻자, 자신도 지금 처음 듣는 거라고, 눈을 동그랗게 뜨며 당황해했다.
점심시간에 나는 명단을 한 손에 꽉 쥐고 교무실로 뛰어갔고, 자리에서 일에 열중하는 선생 앞에 섰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선생 앞에 서 있었다.
10분. 20분이 지나도 내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그래도 그냥 그 앞에 서 있었다.
시간이 한참 더 흐르고 나서야, 보다 못한 옆자리의 다른 반 선생이 내게 말을 걸어주시자,
그제야 멀뚱멀뚱 나를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떨리는 목소리를 최대한 진정시키며, 어찌 된 영문인지 물었다.
다음 순간 주둥이에서 튀어나온 건, 목을 긁는 오리 울음소리였다.
”어머. 네가 그런 쪽에 관심이 있었니? 진작에 얘기하지 그랬어. “
귀를 틀어막게 하는 ‘오리’ 소리는 들어 줄래야 들어줄 수가 없었다.
글에 관심 있는 건, 다른 반 선생조차도 아는 내용이었으니깐.
계속되는 ‘오리’의 꽥꽥 소리에, 머리가 달궈졌다. 가슴이 턱 메어와, 숨쉬기가 힘들었다.
누구보다 많이 알아야 하는 사람이, 누구보다도 알려고 하지 않았다.
누구보다 바른말을 해야 하는 사람이, 누구보다 역겨운 말을 했다.
이건 선생이 아니다. 이건 사람이 아니다. 이건 오리다.
할 줄 아는 건, 꽥꽥거리며 날개를 흔드는 것뿐.
자신이 말하고 싶은 것만 주둥이로 뱉고, 자신이 하고 싶은 행동만 날개로 흔들 뿐.
그날로, 내 사전에 ‘선생님’이라는 단어는 완전히 사라졌다. 그 자리를 ‘오리’가 메꿨다.
그 이후로도 몇 번이고, ‘오리’는 나를 철저히 무시했다.
그러고서는 어린 시절의 오리처럼 언제 그랬냐는 듯이 뻔뻔하게 엉덩이를 씰룩거릴 뿐이었다.
기억은 마모된다고 한다. 분명, 그때 맞았던 뺨의 아픔은 가물가물하다.
그냥 맞았구나,라는 잔재만 남아있다.
하지만, 그때 맞았던 가슴의 아픔은 고름이 진득하게 배어 나오고 있다.
기억의 폭력은 여전히 내게서 떠나지 않고 나를 괴롭힌다.
나에게 있어 가장 큰 폭력은, 알려고 하지 않는, 알고도 모른 척하는 오리들이었다.
그런 오리들 탓에 마음껏 날지 못한 작은 오리가 더는 나오질 않길. 그저 간절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