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꽃이 시들어 버렸다고 느끼는 건,
그 꽃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갑자기 사람이 시들어 버렸다고 느끼는 건,
그 사람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꽃은 찰나의 순간에 시들지 않는다.
서서히, 서서히, 시간을 들여 시들어 간다.
꽃의 죽음이란 결말은, 자신을 포기하는 긴 여정을 지난 후에 도달하는 결말이다.
꽃잎을 떼어낸다.
엷은 수채화 같던 색을 그려내던 꽃잎은, 생기와 함께 색을 잃는다.
꽃은 자신의 찬란했던 순간을 포기한다.
잎사귀를 떼어낸다.
푸르고 푸르던 잎사귀를 떼어낸다. 푸르른 잎이 떨어진 꽃은 왜소해진다.
꽃은 자신의 푸르름을 포기한다.
줄기를 버린다.
꽃은 목이 새카맣게 썩어 들어간다.
꽃은 자신을 지탱해 주는 지지대인 목을 포기한다.
꽃잎, 잎사귀, 줄기.
차근차근 자신을 버리고 버린 꽃은, 마지막엔 자신을 떼어낸다.
그렇게, 꽃은 삶을 떼어내고 생기를 망각한다.
그 자리엔 영혼이 빠져나가고 홀로 남겨진 몸의 흔적만이 덩그러니 방치된다.
그리고 그 순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우리는 차갑게 식어버린 꽃에 관심을 주며 넌지시 말한다.
아, 꽃이 어느새 시들었구나.
아, 화려함은 찰나의 순간이구나.
우리는 시든 꽃에서, 꽃의 시든 과정보단, 꽃이 시든 결과만을 담는다.
꽃이 시든 마지막 순간만을 기억하고 기록한다.
생기를 잃어가는 과정은 눈에 담지 않는다. 꽃이 삶을 쫓으며 몸부림치던 발버둥은 망각한다.
꽃의 찬란하고 단아했던 순간만을 기억 속에서 더듬고 어루만진며, 그 순간을 추억한다.
이미 지나가 버린 그 순간을. 후회 속에서.
시든 꽃을 보고, 갑자기 꽃이 시들어 버렸다고 느끼는 건,
그 꽃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도 한 송이의 꽃이다.
사람도 찰나의 순간에 시들지 않는다. 사람도 저마다의 아픔으로 시름시름 앓고 시들어 간다.
꽃보다는 조금 더 서서히, 서서히.
아픔은 사람의 몸을 사각사각 갉아먹는다.
꽃잎을, 꽃잎 다음엔 잎사귀를, 잎사귀 다음엔 줄기를, 그리고 마지막엔 삶을.
사람을 시들게 만드는 아픔은 한순간의 파도처럼 몰아치는 게 아니다.
바닥에 번지는 물처럼 천천히 퍼져가며 사람에게로 스며든다.
그래서 더 무서운 것이다.
슬며시 숨통을 엄습해 오는 아픔은, 차분히 목을 조여 오는 아픔은, 우리에게 적응이라는 시간을 준다.
우리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야금야금 우리를 갉아먹는다.
참을만하다고 느낀다. 버틸 수 있다고 느낀다.
그렇게 반복되는 아픔과 고통에 익숙해진다. 익숙해짐은 당연함이 되고, 당연함은 곧 망각이 된다.
아픔과 고통을 망각한다. 정확히는 망각했다는 착각의 늪에 빠진다.
아픔과 고통은 여전히 좀 먹고 있다. 갉아먹은 자리는 공백으로 남아 있다.
아픔이란 늪에 푹 절여져서, 고통에 익숙해져서 본인의 아픔 또한 망각한다.
그렇게 자신의 아픔을 실감했을 땐,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만큼 고통과 아픔으로 세상이 뒤덮인 후이다.
꽃도, 사람도, 사랑받아야 할 이유는 있어도, 아픔에 허덕여야만 한 이유는 없다.
그러니 당신에게. 우리에게. 관심을 기울여 주자.
따스한 햇살을 선물해 주고, 한줄기 물로 적셔주자.
우리는, 충분히 햇살을 선물 받아도 되는 꽃이니.
우리는, 충분히 보듬을 받아도 되는 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