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옷을 벗어던지는 바닷가재

by 아니아즈


바다는 광활하며, 그 세상은 끝을 알 수 없다.

그런 범람의 세상 속 흘러가는 물방울처럼 작디작은 존재인 바닷가재.

바닷가재는 험난한 세상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갑옷을 입는다.

육중한 갑옷을 입고 세상과 맞서 싸우는 기사.

바닷가재는 세상의 압력을 견뎌줄 갑옷을 갖춰 입으면서도,

한편으론 자신을 옥죄는 갑옷을 벗어던지기 위해 하루하루를 암중혈투 속에서 보낸다.




대부분 사람이 바닷가재는 알고 있을 것이다. 바닷가재는 흔히 랍스터라고 부르기도 한다.

바닷가재는 알지만, 바닷가재에 얽힌 이야기는 모르는 사람이 다수일 거다.

이 바닷가재는 수명이 없다. 바닷가재는 불로장생의 동물이라고 한다.

정확히 정의한다면, 현재로선 밝혀진 수명이 없다는 얘기다.

바닷가재의 수명은, 일반적인 생물의 수명과는 다르다고 볼 수 있다.


바닷가재는 자신을 지켜주는 갑옷이자, 껍질을 가지고 산다.

자신을 호시탐탐 노리는 포식자로부터, 물의 압력으로부터,

바다 곳곳에 존재하는 돌들로부터, 갑옷은 바닷가재를 지켜준다.

그리고 그들의 수명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 또한 자신을 지켜주는 갑옷이다.

바닷가재는 세월이 지나면 껍질 안의 자기의 몸이 자라기에, 그 속살에 맞춰 탈피한다.

탈피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바닷가재는 죽을 때까지 탈피를 거듭한다.


분명 갑옷이란 존재는, 자기의 내면이 가득 찰 때까지 외면의 자신을 지켜주는 존재가 된다.

하지만 내면이 가득 찬 순간, 외면의 갑옷은 자신을 옥죄어 오는 감옥으로 변한다.

그 불편함을 깨닫고 탈피하고 새로운 얻게 된 바닷가재의 다음 갑옷은, 이전 갑옷보다 튼튼하다.

하지만 그만큼 단단하게 자신을 옥죄어 온다.

새로운 갑옷을 벗기 위해선, 이전 갑옷을 벗을 때 든 힘보다 많은 힘이 요구된다.

바닷가재는 세월이 지남에 따라 몸집이 커지고 힘도 강해지지만,

그만큼 다음 탈피에 필요한 힘도 늘어난다.

점점 튼튼해져 가는 갑옷을, 적절한 순간에 벗어내지 못한 바닷가재의 껍질은 썩어간다.

어떤 바닷가재는 내 힘으론 이 갑옷을 벗어낼 수 없다며, 스스로 탈피를 포기하는 경우 또한 있다.

탈피를 포기하거나 실패하면, 오래된 갑옷은 점점 썩어가며 온갖 질병을 발병한다.

바닷가재의 수명은 그 순간 정해진다.


자기의 갑옷을 이겨내지 못한 순간. 자기의 갑옷을 벗어던지길 포기한 순간.

그 순간에 그들은 죽을 운명을 마주하게 된다.



우리도 모두 갑옷을 가지고 산다.

그 갑옷이 실패의 아픔일 수도, 노력의 과정의 아픔일 수도, 사람들의 시선일 수도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수많은 갑옷을 벗어왔다. 입시, 취직, 연애, 자신의 가치관, 자신의 신념 등등.

지금까지 많은 갑옷을 벗어던지고 지금까지 왔다. 여전히 우리는 끊임없이 탈피해야 한다.

지금에 안주한 순간, 탈피를 멈추고 현재에 만족하는 순간, 우리는 죽고 만다.


이 정도면 ‘완벽’하다고 누군가는 말한다. 완벽의 기준은 무엇일까.

세상 모두가 이름도, 나이도, 성별도, 그 외에도 여러 요소에서 차이를 보이는데

‘완벽’을 바라보는 기준이 같을 수 있을까.

세상에 ‘모두의 완벽’이란 없다.


완벽하지 않기에,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을 완성하기까지만 해도, 수없이 많은 단어와 문장들이 모이고 흩어지고를 반복했다.

그 보이지 않는 고뇌가 있지만, 여전히 이 글엔 고칠 부분이 많다.

아마 이 글을 발행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쉬려고 하는 순간,

얼굴이 붉게 물들며 내가 왜 그런 말을 썼을까 후회할 예정이다. 그것도 아마 매우 높은 확률로.

하지만 그 후회들을 받아들이고 탈피하면, 나는 한층 성장할 것이다.

새로운 기준과 가치관을 세운 순간, 한층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질 것이다.


글을 통해, 하나의 갑옷을 벗어던졌다. 모두가 각자의 갑옷을 벗어던졌는지에 대해 묻고 싶다.

벗어던지지 못했더라도 괜찮다. 지금이 아니어도, 다음이 있으니깐.

더 노력한 끝에 벗어던진 갑옷은, 더 튼튼하게 여러분을 지켜줄 수 있는 갑옷일 테니깐.

우연히도 갑옷이 벗겨질 수도 있고. 하지만 그 우연을 단순한 우연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우연은 필연과 필연이 만나는 교차점이다.

우연이라는 행운은 갑작스레 찾아오는 게 아니라, 필연이라는 노력이 있었기에 오는 것이다.

누구 한 명의 인연을 만나기까지의 과정만 보아도 그렇다.

내가 글을 올리고, 당신이 이 글에 들어왔어야만 했던 필연.

나의 필연과 당신의 필연이 만나 우연이라는 형태의 인연이 만들어진 것처럼.

이렇듯이, 미래는 정해져 있지 않지만, 미래는 만들어가는 것이다.

모두가 모두의 미래를 만들고, 그 마지막에 웃음 지을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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