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인천공항전 - 가출기행록(上)

by 아니아즈


내 갑작스레 출가(가출)하였도다.

그 시각, 22시이니. 푸른 하늘이 붉은 하늘을 거쳐, 어둠으로 탈색한 후였도다.

멍하니 그 먹물 같은 하늘로 타는 목을 축이니,

저 어둠이 마치 내 앞날과 같구나, 하여 한숨을 절로 뱉어졌도다.

호기롭게 출가하였건만, 돈도 계획도 목표 또한 존재치 않으니.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내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알려줄 이정표 또한 보이지 아니하였다.

그러하나, 무릇 사내가 칼을 꺼내 들었다면, 단무지라도 썰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상황일수록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해야 한다, 정의하니.

그렇게 탄생하게 된 계획은 모두가 감탄을 자아낼만한 대발견은 아닐지라.

그는 당연하고 간단한 일이오,

마치 앞으로 가기 위해서는 한 발을 뻗고, 다음 발을 뻗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



止步不變事如初 - 멈춰 있으면 모든 일이 처음과 같고

姑行一步路應途 - 일단 한 걸음 내디디면 길이 따라오며

心開行始風轉面 - 마음을 열고 나서야 바람도 방향을 바꾸니

且向前方莫躊躇 - 앞으로 나아가자, 머뭇거리지 말자



한 발을 뻗고, 다음 발을 뻗으니, 그것이 ‘왕인천공항전’의 시작이노라.




여정의 초행길은 지금까지 내 평소 오고 갔던 길이었기도 하거니와,

여정의 목표 또한 확실치 아니하였기에, 별다른 감흥 느껴지지 못하였다.

이는 마치 한번 끓인 사골국을 일주야 내내 먹는 것과 같은 이치니,

그것이 꼴도 보기 싫어 땅바닥에 고개를 박고 나아갔도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가 확인하고자 하니,

시간의 흐름은 내 모르는 길이 나타났다는 사실이 고하여 주었도다. 그 사실을 전해 듣고, 발걸음을 멈추었다. 이대로 목표도 목적도 없이 걷기만 해선 안 될 노릇이라.

출가 시 최초에 했던 행동을 반복하여, 고개를 하늘로 향하니, 그곳에 이정표가 달처럼 떠 있더라.


‘인천공항↑’


옳거니. 저것이로다. 이백의 동반자로 달이 있었더라면, 내게는 저것이야말로 달이자 동반자이다.

대발견에 내 기분이 흡족하였도다.



燈火照途明似晝 - 등불이 길을 비추니 대낮처럼 밝고

心欣豈不喜其中 - 마음이 기쁘니 어찌 기쁘지 않으랴

思今啓步懷新路 - 지금부터 걸음을 여니 새 길이 떠오르고

念此前程滿喜容 - 앞날을 생각하니 기쁨이 얼굴에 가득하네



내 앞으로 향할 여정과 함께, 두 가지 목표를 같이 세웠으니.

첫째, 이대로 걸어서 인천국제공항까지 향하고자 하는 것이오.

둘째, 가던 길이 끊겨, 그것이 불가할 시, 왔던 길을 돌아가고자 정하였도다.

내 가야 할 길도, 목표도 정하였으니, 발걸음이 어찌 무거우리오,

내 발은 흔들바람에도 날아오르는 홀씨가 되었노라. 그것이 진정한 ‘왕인천공항전’의 시작이었노라.




기쁨은 어찌 항상 내 옆에 있는 것이 아닌가.

내 기쁨을 품고 나선 여정이었건만, 그 마음 채 3시간 가지 못하였다.

걷는 것만으로 이리 힘이 들다니, 내 그 사실 처음 깨달았느니라.

그러하나, 어찌 사내가 줏대도 없이 이대로 돌아가리오. 내 한번 정한 것은 그 끝 봐야 속 편하겠도다.

때마침, 저 앞에서 고속도로 진입로인 외다리가 아지랑이처럼 모습을 일렁이더라.

그 모습,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 같노라. 고속도로가 나왔으니, 이제 정말 끝이로구나.

겉으로는 한탄을 자아내었지만, 실상 내심 기뻐하였다.

이거 어쩔 수 없이 저 앞까지 갔다가 돌아가야겠구나 싶어, 사막의 오아시스를 향해 한달음 달려갔도다.

내 오아시스 앞에 당당히 섰다. 그 다리에는 분명히도 사람이 갈 수 있는 길은 없더라.

이거 어쩔 수 없이 돌아가야겠구나 싶던 찰나, 절로 고개가 외다리 옆의 풀숲으로 향하오니.

내 시선의 끝, 풀숲 사이에 ‘길’이 있었더라. 그 길, 자연적으로 생길 수 없는 부자연스러운 길일지니.

모세의 기적이 이와 같지 않을까 싶더라.

어째선가. 어찌하여, 그곳에 사람 한 명이 지나갈 수 있는 폭의 길이 존재하는가.

갈대로 이루어진 풀숲이지 아니한가. 탄식이 절로 나오더라.



人路難行當目前 - 사람이 갈 수 없는 길이 눈앞에 있구나

誰能踏過此途前 - 이 길을 누가 지나간단 말인가

仰天一笑風雲破 - 하늘을 우러러 한 번 웃으니 구름이 흩어지네

行者原來是我焉 - 그 길을 갈 자, 바로 나구나



사람의 몸이 상하면, 정신도 상하는 모양이로다. 그래도 어찌하겠는가.

한 번 정한 일, 끝을 봐야 속 후련하지 않겠는가.

내 무거운 발걸음을 풀숲으로 향하였다. 풀숲길을 지나가며, 생각하였도다.

이곳에 길이 있다는 것은, 이미 누군가 지나간 길이라는 것이오. 길이란 어디든지 있는 것이로다.

그 사실을 내 안에 각인하며, 풀숲 사이의 길을 다시 걷기 시작했도다.

풀숲길을 다 지나오자, 다리가 사시나무처럼 후들거리더라.

아. 정말 위기로다. 출가하면 개고생이다, 그 말 참말이더라. 더는 안 되겠거니.

내 더 이상 사내가 아니올시다. 인정 또 인정하며 주머니 속 핸드폰을 꺼내 들었으나,

아뿔싸. 이건 내 계획이자 길에 없던 일인지라. 핸드폰의 배터리가 방전되는 불상사가 발생하였도다.

이것이 인생사 새옹지마가 아니면, 무엇이 인생사 새옹지마인가.

인생이란 것은 물살대로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나,

물살을 거슬러 흘러가기도 하거니, 아. 고것이 참인생이로다.


지나가는 철 마차(차량)도 없고, 철 마차(차량)가 있더라도 내 성격 내향형인지라,

붙잡고 태워달라고 말하길 부끄럼 느끼었다. 나온 답은 하나뿐일지. 걷는 것 말고는 있겠는가.

내 잠깐의 유혹으로 사내를 포기할 뻔하였으나, 강제로 사내를 지키게 되었으니,

이것은 길복인가, 흉복인가. 당최 모르겠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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