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남성과 신여성

여성과 남성에 대하여.

by 아니아즈


어째서, new 남성. 즉, 신남성은 없는가. 미간을 찌푸리며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

가정을 하나둘 세워본다. 남자는 새로울 수 없는 건가.

남자는 우직하고 강직하여 바뀜 없는 존재인 건가.

무엇 하나도 ‘신남성’이 존재하지 않는 이유를 명명백백 밝혀주지 못하였다.

아아. 이는 실로 난제로다. 도대체 그 이유란 무엇이냔 말인가.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의 자세를 한 채로, 내 방의 회전의자에 앉아 빙빙 돌았다.


왜 이러한 의문을 가지게 되었는가는,

그리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큰 사회적 반향에서부터 온 것은 아니었다.

한 단어에서부터 그 의문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신여성’.


과거 학창 시절에 교과서에서 스쳐가듯이 봤던 한 단어.

그 단어가 갑작스레 내 기억 속에서 머리를 빼꼼 내밀었다.

이 한 단어에서부터 잡생각들이 팝콘처럼 팡팡 터져 나왔다.




신여성은 개항기 이후 일제강점기까지 신식 교육을 받은 여성을 지칭하며, 신여자,라고도 한다.

그들은 중등교육이나 고등교육을 받고,

기존 질서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가치와 태도를 추구하여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던 여성들이다.


일제강점기 때, 신여성이란 단어가 만들어졌지만, 신남성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내 잡지식 백과사전에만 없는 건가 싶어, 만인의 대백과사전인 구글 검색창에다가 검색하고 왔다.

만인 공통의 대백과사전에도 내가 생각했던, ‘신남성’은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고 여러분이 생각한, 이전과는 달라진 남성을 의미하는 단어로서의 'new 남성'은 없었다.


여하튼, 내가 진정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는,

new 남성이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만이 아니다.

나는 ‘신여성’이라는 단어의 존재에도 의문을 제기하고 싶다.


신여성의 한자어는 ‘新女性’이며, 맨 앞의 ‘신’은 새로울 신, 이다.

여기서 또다시 난제가 발생한다. 왜 여성은 바뀐단 것인가.

여성은 바뀐다고 하는 것도 고개가 절로 갸웃해지지만,

남성은 바뀐 것이 없다고 하는 것도 고개가 절로 갸웃해지는 상황이다.


서로 같은 일제강점기를 거쳤고, 새로운 문물은 여성과 남성 모두 받아들였다.

하지만 한쪽은 new를 거쳐 최신식으로 거듭났다고 하고, 누구는 new라는 이름을 선사받지 못하였다.

이 아이러니한 상황은 말해준다. 최소한 둘 중 하나에는 오류가 있다고. 어쩌면 둘 모두에게 오류가 있다고.

과연 여성은 정말로 新 새로울 신, 새로워진 것이 맞는가.

새로워진 게 아니라, 당연히 누려야 할 것을 하나둘 찾아가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이것에 굳이 수식언으로 ‘신’ 여성이라는 말을 붙여야 하는 사실은 가혹하고 슬픈 사실이다.


남성은 새로워지지 못한 것이 맞는가.

남성이 누리는 것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기에 새로워진다고 하지 않는 것은 아닌가.

남성도 새로워질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남성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남성성이라는 갑옷 안에 남성을 가두어 변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건 아닌가.

남성은 우직하고 강직해야만 한다는, 그런 목을 옥죄어 숨 막히게 하는 옷 안에 갇혀서,

새로운 옷인 new를 입지 못하는 걸 수 있다.


모두가 '남성'과 '여성'이란 틀 안에 갇혀 있다.

그 탓에, 누군가는 본인이 원치 않는 옷을 강제로 입고,

누군가는 본인이 원하는 옷을 강제로 입지 못한다.


new 남성이라는 단어도, 신여성이란 단어도 세상에 굳이 존재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그 단어가 굳이 필요했다면, 둘 모두에게 주어져야 했을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수식언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문장에서 필요한 것은 주체이지, 수식언이 아니다.

수식언만으론 문장이 완성될 수 없다.

주체가 있기에 문장이 완성되고, 세상도 ‘신’, 新, new,라는 수식어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남성과 여성, 그리고 그 모두를 아우르는 '인간'이 있기에 완성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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