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기 위해, 꿈으로 도망친다.

'꿈'에 대하여

by 아니아즈



우리는 꿈을 꾼다.


누군가는 꿈을 이루기 위해, 꿈을 꾼다.

누군가는 꿈을 꾸기 위해, 꿈을 꾼다.




어느 깊은 가을밤, 잠에서 깨어난 제자가 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스승이 기이하게 여겨 제자에게 물었다.


"무서운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슬픈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달콤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리 슬피 우느냐?"


제자는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나지막이 말했다.


"그 꿈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


영화 ‘달콤한 인생’의 대사 중 한 부분이다.

제자는 꿈을 꾸고 있는 당시에는 누구보다 행복했다. 자신이 이루고 싶은 것들을 이루었다.

하지만 그 꿈에서 깨어나 현실을 마주한 순간, 현실과 꿈의 괴리에 빠져들어 슬픔에 사무쳤다.

그가 할 수 있는 건, 눈물을 흘리는 것뿐이었다.

차라리 꿈속에서 깨지 않았으면 더 행복했을 듯이.




꿈을 꿨다. 나는 단박에 이것이 꿈이라는 사실을 알아챘다.

왜냐, 하늘을 날아다니는데 누가 현실이라고 생각할까.

현실에서는 땅 위의 지옥철을 타는 평범하고도 평범한 사람일 뿐인 내가,

하늘을 날아다니며 세상의 누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꿈이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오히려 꿈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한참을 구름을 누비며 하늘을 날아다니며 즐겼다.

그것도 잠시. 허공을 둥둥 떠다니던 몸이 배터리가 떨어져 전원이 꺼진 듯이 덜컥 수직으로 떨어졌다.

나는 허우적거리며 괴성을 질렀다. 이윽고, 내 코앞에 땅이 다가왔다.


꿈이 달아났다. 나는 우어어억 괴성을 내며, 팔다리를 휘적거리며 벌떡 일어났다.

꿈이 달아나자, 꿈이라고 믿고 싶은 사실들이 다가왔다.

평범한 하루, 평범한 사람, 평범한 과업들이 서슬 퍼렇게 다가왔다.

평범의 사이에서 유일한 특이점이라면 하나, 평범하게 과업을 마치지 않은 평범한 사람이었다.


몽롱한 정신을 이끌고 온기가 채 가시지 않은 이불의 안락함에서 탈출했다.

비틀거리며 책상 앞에 앉은 내가 가장 먼저 할 일은, 꿈속의 나를 음미하는 것이었다.

일도, 삶도, 과업도, 그 모든 책임감으로부터 해방된 나. 모든 것으로부터 무책임할 수 있는 나.

빠져나오고 싶지 않은 꿈이라는 미로 정원에서 고의로 길을 잃어버렸던 나.

그런 ‘나’들이 벌써 그리워졌다.


그리고 또 그리워졌다.


인생 중 책임감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시간. 꿈을 꾸는 시간이.




밤이 찾아오면, 사람들은 대개 잠에 빠져든다. 사람들은 잠을 자면서 꿈을 꾼다.

꿈을 꾸는 순간, 그 순간은 우리가 그 누구보다 무책임할 수 있는 시간이다.

현실의 일로부터, 현실 일의 책임으로부터, 자신의 직위의 의무로부터, 어느 소속으로부터,

우리는 자유로워진다.


우리는 꿈의 세계에서는 현실의 어떤 것도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꿈과 현실은 나누어진 경계선 너머의 세계이니깐. 꿈속의 우리에게 주어진 책임은 단 하나이다.


꿈을 꾸는 것.


눈을 감고서만 꿈을 꾸는 건 아니다.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서 꿈을 꾸기도 한다.

자신이 이루고 싶은 소망, 자신이 이루고 싶은 미래, 그런 꿈들을 두 눈을 뜨고 자신의 눈앞에 그린다.

이 꿈을 상상이 아닌 진정 두 눈으로 보고 싶다면, 이 꿈을 현실로 가져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갖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대부분 사람은 ‘달콤한 인생’의 제자처럼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라며,

고통과 함께 눈물을 흘린다.

하지만 이 꿈을 현실로 가져오지 않고, 꿈에만 머물러 있으면, 아픔도 고통도 없다.

꿈에서 깨지 않고, 꿈을 꾸기만 하면 행복하다. 시작하지 않으면 편하다.


꿈이란, 무엇보다 달콤한 말이다. 자신의 행동을 미화시켜 줄 수 있는 존재이다.

현재 책임져야 할 일들로부터 도주시켜 준다.

왜냐, 꿈을 위해서 이 정도는 포기할 수 있어야 하니깐.

난 현실에 수긍하지 않고, 꿈을 꾸고 있으니깐. 꿈을 가지고 있는 자신은 무엇이라도 하는 중이라는 의미니깐.


그들은 자신의 꿈속에서 꿈을 꾼다. 정확히는 꿈을 이루려고 하지 않고, 꿈만 꾼다.

꿈속의 자신을 생각하며 방 안에서 웃는다.

아무것도 할 필요 없고, 고통도 아픔도 없는, 무엇보다 달콤한 인생이다.

꿈을 꿀 때 우리에게 주어진 책임은 단 하나, 현실로 돌아가지 않게 꿈을 꾸는 것뿐이니.


그들은 꿈의 미로 정원 속에서 헤어 나오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은 출구를 안다.

하지만 출구 앞에서 계속 같은 자리를 맴돈다. 갖가지 핑계를 대며.

이 꽃이 정말 예쁘네. 많이 걸었더니 힘드네. 좀 더 둘러보다가 나가야지.

오늘도 그들은 도망치듯이 잠에 빠져든다.

누군가가 쓴소리 하면 그들은 버럭 화내며 목청을 키우며 ”내가 노력 좀만 하면 된다니깐? “라고 외친다.

그렇게 자신의 꿈을 피난처로 삼고, 밤이라는 현실의 시련으로부터 도망간다.


우리는 꿈을 향해 달려가는 중일까. 꿈을 향해 도망가는 중일까.


우리의 하루에 밤이 찾아오듯이, 우리의 인생에도 밤이라는 시련이 찾아온다.

인생에 밤이 찾아오면, 누군가는 꿈속의 미로 정원에서 스스로 길을 잃는다.

꿈이라는 미로 속에서 그들은 편안한 잠에 빠져든다. 안락하게 잠에 빠져든다. 이내, 혼수상태에 이른다.

지성의 죽음이란 깨지 않을 꿈 속으로 빠져든다. 그들은 더는 그 무엇에도 책임질 필요가 없어진다.


꿈은 도피의 장소가 아니다.

도피처가 된 꿈은 나 자신을 가두는 미로가 되어 꿈에 취해 모든 것을 망각하게 한다.


꿈은 취(醉취할 취)하는 존재가 아닌,

꿈은 취(取 가질 취) 해야 하는 존재다.

꿈을 꾸기 위해 꿈을 꾸는 것이 아닌,

꿈을 이루기 위해 꿈을 꾸는 것이 올바르게 꿈을 꾸는 자세이다.






꿈에서 깼다.

나는 현 상황이 바로 인식이 되지 않아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다.

고개를 돌려, 어둠으로 새까매진 창문 밖을 바라보며 눈을 꿈뻑였다.

한참을 꿈뻑이고 나서야, 내 느려터진 뇌가 정보들을 종합해 상황판단을 마쳤다.


평범히 과업을 하는 것마저, 꿈이었다. 현실과 꿈의 괴리가 눈앞에 놓였다.

과업은 손톱도 대지 않았다. 어째선지 눈물이 났다. 내 안 가득히 무언가 차올랐다.

무책임하게 다시 꿈으로 빠져들고 싶다는 꿈들이었다.


날 품어주는 따뜻한 온기의 이불속에서 몸을 꼬물거렸다. 달콤한 꿈들이 나를 유혹했다.

현실은 모두 잊고, 그대로 꿈으로 다이빙하자고 속삭였다. 그 꿈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

몽롱한 정신을 이끌고 자리에서 일어나야만 했다. 역시, 현실은 쓰다.


일단 자리엔 앉았지만, 정신이 몽롱한 탓인지, 기분 탓인지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꿈만 같다.

아니면, 꿈과 현실의 괴리를 받아들이지 못해서 꿈으로 받아들이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아, 그냥 꿈만 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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