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우지 말고, 빈칸으로 두자.

'나'에 대하여.

by 아니아즈


나에 대해 설명해 보아라.


어쩌면, 정말 쉬운 일이다.

한 문장으로, 나는 '아니아즈'라는 별칭을 사용한다.

나는 브런치스토리에서 글을 연재 중이다.

나는 가끔 누군가의 말을 듣는 척을 하며 멍 때리는 사람이다.

나는 과묵한 사람처럼 행동하지만, 사실 소심해서 그렇다.

나는 걱정이 많다가도 순식간에 태평해진다.

등등으로 상대 안에 비어있는 <나>에 대한 빈칸을 채워줄 수 있다.


이렇듯, 우리는 흔히 누군가에게 자신을 소개할 때,

‘나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라는 말을 사용하곤 한다.

그 말에서 피어난 의문들이 머리에서 발발거리며 기어 다녀서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내 긴 인생이라는 시간이 한 문장으로 대체될 수 있을까.

내 인생이라는 시간이 한 문장으로 대체될 만한 값어치인가.

사람이란 한 문장으로 설명될 수 있는 빈칸인가.


사람은 말 그대로 <사람>이다.

무언가에 빗대서 표현할 필요도,

사람이란 말을 함축한다고 크기가 작은 상자에 낑낑거리며 몸을 끼워 넣으려고 할 필요도 없다.

세상엔 70억이 넘는 사람이 지금을 살아가고 있고, 그만큼의 <사람>이 있다.

그리고 한 사람 안에서도 무수한 <사람>이 존재한다.

지금 순간에도 한 사람 안에 있는 <사람>은 변하고 있다.

그런 사람을 단순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세상에 값어치가 고정된 것이 없는 빈칸이다.

값어치란 의미를 부여하는 존재에 따라서, 그 상황에 따라서 바람 앞의 갈대처럼 이리저리 흔들린다.

나라는 빈칸을 한 줄짜리 사람으로 채운다면, 한 줄의 사람이 되는 것이고,

나라는 빈칸을 한 장 짜리 사람으로 채운다면, 한 장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세상에 고정된 것은 없기에, 나는 변하지 못할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변하지 않는 무언가가 존재한다면, 그 이유는 변하고 싶지 않아 하는 마음 때문이다.

그 마음이 변화를 억누르고 있고, 자신이 억누른 존재에게 정답이란 의미를 부여한다.

정답이란 말은 달콤하지만, 폭력적인 단어이기도 하다.

정답은 자신을 제외한 모든 건 오답이라는 의미가 숨겨져 있다.


내가 이 글에서 <나>에 대해 설명하고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그것이 정답이 되고 사람들은 그렇게 받아들일 것이다.

그리고 나 또한 <나>를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나는 답을 말하는 게 아니라, 질문을 하고 싶다. 내게 세상은 질문이고, 빈칸이다.

세상은 우리에게 질문과 함께 빈칸을 주고, 우리는 그 질문에 답을 하며 자신의 답으로 빈칸을 채운다.

세상은 정답이 아니라, 자신의 답이 존재할 뿐이다.

그리고 언제든지 빈칸 안의 답은 변하고, 변할 수 있어야 한다.


글을 쓰다 보니, 주저리주저리 말도 많아지고,

너무 진지하게 글을 썼나 싶어서 나도 모르게 헉 소리가 나왔다.

걱정되는 마음에 썼던 걸 지울까 말까 고민하다가,

고민해서 바뀌는 건 없으니 그냥 처음 걸로 해야 후회가 덜하다는 생각에 넘어가기로 했다.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 글에서 사람들이 글을 작성 중인 사람이 생각하는 <글쓴이>가 아니라,

여러분만의 <글쓴이>를 그렸으면 하는 것이다.


이 글 안에서는 알 수 없는 빈칸이 있다면, 그 빈칸은 앞으로의 시간이 채워줄 것이다.

keyword
이전 10화별에게 마음을 빼앗길 수 있는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