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은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

by 아니아즈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 말인가요.



점원은 당황해서 다시 물어봤다.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한번, 네.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 말이에요, 라고 답했다. 점원은 애써 웃어 보였지만, 당황한 기색이 눈에 훤히 보였다. 서로 간에 정적이 흘렀다. 그 순간에도 점원의 눈동자는 바쁘게 구르고 있었다. 점원의 두뇌는 결과를 도출한 듯 눈동자가 멈춰 섰다. 점원은 자신에게 있는 최선의 대답을 했다.


저희 매장에는, 그런 메뉴는 없습니다. 손님.

메뉴얼 같은, 의례적인 말이 오갔다. 한번 안된다 했는데, 다시 한번 안 되나요, 라고 묻기에는 찜찜해서 나지막하게 죄송합니다, 하고 나왔다.



내가 진짜 시켰다는 게 아니다. 단지, 직접 두 발로, 매장에 찾아가서 실천해보기 전에, 내 두뇌 속 시뮬레이터를 돌려본 결과다. 그 시뮬레이션의 결과를 토대로,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 주문은 이론상 불가능하다는 결과를 도출해냈다.


그런 결과가 내 의문을 해결해주진 않았다. 왜 아메리카노는 핫 아니면 아이스뿐 일까. 어째서 양자택일일까. 왜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없을까.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머리가 띵할 때도 있고, 이가 시릴 때도 있다. 뜨거운 아메리카노는 혀를 데일 때도 있으니, 충분히 식혀서 먹는다.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핫을 넣으면, 머리가 띵할 일도, 이가 시릴 일도 없다. 뜨거운 아메리카노에 아이스를 넣으면, 혀를 데일 일도, 식혀 먹어야 할 일도 없다. 이런 고민을 하는 누군가에게 명료한 답인데, 왜 안 될까. 이론상 그런 존재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일까.



씻을 때도 그렇다. 살짝만 돌려도 뜨거운 물이 줄줄 흘러서 화들짝 물에서 몸을 뺀다. 그래서 이번엔 오른쪽으로 톡톡 밀고 몸을 물에 가져다가 대면 얼음장 같은 물에 몸을 떨며 샤워 호스를 치운다.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중간이 가장 쉽다고.

하지만 오히려, 정중앙이 가장 힘들다. 누군가에게도 적당한 온도. 누군가의 이를 시리게 하지도, 혀를 데지도 않는 온도. 모두를 포근하게 안아줄 수 있는 존재. 조금만 돌려도 홱홱 변심해버리는 수도꼭지만 보더라도, 지극히 알 수 있는 사실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아메리카노는, 우리의 두 가지 이면이기도 하다.

뜨거운 아메리카노는 감성이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이성이다.



감성은 감정의 영역이다. 사람들이 모두 감성에 치우친다면, 자신만의 행복을 위해 타인의 행복을 손쉽게 짓밟아 버릴 것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논리는 없고, 감정만을 우선시할 것이다. 그런 세상 속에서 약자와 소수들은 하나의 폭도가 된다.


이성은 논리의 영역이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이성에 치우친다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말 앞에서, 소수는 철저히 배제될 것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감정은 없고, 논리만을 우선시할 것이다. 그런 세상 속에서 약자와 소수들은 자신들의 의견을 표출할 수 없게 된다.



세상을 향해 무조건적 감성만을 외쳐 분란을 조장할 게 아니라, 이성을 겸비해서 다른 이들도 이해할 수 있게 호소해야 한다. ‘강요’가 아닌, ‘강조’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세상은 점점 감성에 물들어 가고 있다. 뜨거워져 가는 세상에 자신들의 온도를 억지로 맞추고 있다. 편을 가르고, 자기의 말만이 옳고, 자기의 편만이 나를 지켜주고, 내 편 이외의 모두는 적이다. 이런 쳐다보기만 해도, 안경에 김이 서리는 세상은 내 혀를 데다 못해, 진물이 나오게 한다.



우리가 뜨거운 물만으로 혹은 차가운 물만으로 살 수 없듯이, 세상은 감성만으로, 혹은 이성만으로 살아갈 수 없다. 감성과 이성 그 둘이 공존하고, 화합을 이뤄야 한다. 감성과 이성의 사이. 정중앙. 그것이 평등의 시작이다.

그러기에 다시 한번 말해본다.




주문은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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