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지 못한 꽃.

by 아니아즈



피지 못한 꽃.



피지 못할 꽃은 없다.



피지 못한 꽃이 있다면, 그건 사람 손에서 자란 꽃뿐이다.







피지 못할 꽃.jpg



비옥한 흙이 한톨도 없는 자리에 꽃 한 송이가 위태로이 피어있었다. 금방이라도 꺾일 듯한 얇은 가지는, 때마침 불어온 산들 바람에도 고개가 세차게 뒤흔들렸다.


바람이 잦아들자, 한 송이 꽃은 언제 그랬냐는듯이 목을 뻣뻣이 세우고 그 자리에 우뚝 섰다.


누군가는 인식조차 못할 정도로 작은 변화에도 시시각각 흔들리는 여린 존재.

그 한없이 미약한 존재가 메마른 돌무더기 사이에서 꽃을 피워냈다.


나는 나약함 속에서 피어난 강인함에 온 신경을 빼앗겼다.


꽃과 나 사이의 은밀하고도 긴밀한 교류의 장이 쌓여가고 있던 중, 뒷편에서 부산스런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예초기로부터 흘러나오고 있었다.


근처 화단에서 예초기를 든 사람들이 예초기에 시동을 걸고 있었다. 이내 시동이 걸린 예초기에서는 예사롭고도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각자의 손에 예초기를 들고 화단을 누비기 시작했다. 그들이 다니는 곳에는 항상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뒤따랐다. 날선 소리가 휩쓸고 지나친 곳은 예외없이 날카롭게 다듬어졌다.


예초기가 비명을 내지르며 지나가면, 풀꽃들의 목은 허망하게 베어졌다.

그들은 어떠한 소리도 뱉어내지 못한 채 침묵 속에 죽어갔다.

바닥은 풀꽃들의 한줄기 목으로 가득 메워졌다.



사람의 손길을 받은 화단 안의 꽃은 사람들의 보살핌에 길들여진다.

사람의 손길에 길들여진 꽃은, 스스로 꽃을 피우는 방법을 잊어버린다.

결국, 사람의 도움 속에서만 꽃을 이뤄낼 수 있게 된다.


사람의 손길은 그들의 목을 꺾어버린다.

사람이 자신의 목을 꺾어가는 상황 속에서, 풀꽃은 어떠한 소리도 외치지 못한다.

위를 향해 피어나던 그들의 목은 꺾인 채 바닥에 옆으로 뉘인다.




꽃의 아름다움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꽃의 본연의 모습은 무엇일까.

예초기에 목이 베어져 날아가는 풀꽃들을 보며 되물었다.

그리곤 내 옆으로 눈을 돌렸다.



내 앞엔 자신만의 꽃을 피워낸 이가 조용히 서있었다. 산들바람에 맞춰 몸을 흔들며.



그저 내 눈앞의 꽃이, 꽃으로서 살아갈 수 있길.

사람들의 손길을 타지 않고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길.


그런 작은 소망을 기도한 후, 발걸음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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