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말이 아닌 나의 목소리로 사는 사람들 이야기
부르는 사람을 만났다.
부르는 사람은 오늘도, 교실의 한 친구의 뒤통수에 같은 말을 내뱉었다.
“야. 오타쿠.”
여기서 오타쿠란, 원래는 어떤 분야에 깊이 빠져드는 사람을 뜻하지만,
학교에서는 주로 애니메이션이나 만화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놀림받는 말이었다.
불리는 사람은 대답 대신 자신의 손에 들린 만화책의 페이지를 넘겼다.
부르는 사람은 이번엔 귓가에, 같은 말을 내뱉었다.
“야, 또 만화 보고 있네, 오타쿠.”
불리는 사람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는 내려다보던 만화책에서 옆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나 오타쿠 아니거든.”
불리는 사람은 두 눈을 가늘게 뜨고 부르는 사람을 째려봤다.
그 모습을 보고, 부르는 사람은 도리어 실실 웃었다.
“응. 오타쿠. 응. 오타쿠.”
불리는 사람의 얼굴은 서서히 달아올랐다.
그들의 모습은 장난 같으면서도 잔인했다. 내 눈에는 마치 고문 장면처럼 보였다.
불리는 사람은 전류가 흐르는 의자에 앉아있고, 그런 그의 앞에 부르는 사람이 서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서 네가 오타쿠라는 사실을 자백해.” 부르는 사람이 말한다.
불리는 사람은 비장한 태도로 대응한다.
“난 오타쿠가 아니야.”
그 말에, 고문관은 스위치의 on 버튼을 눌러 의자에 전류를 잔뜩 흘려보낸다.
불리는 사람은 얼굴이 달아오르며, 몸이 부르르 떨린다.
불리는 사람이 고통받는 모습에, 부르는 사람은 희열을 느낀다.
다시 한번 부르는 사람이 말한다. 불리는 사람은 같은 대답을 한다.
스위치의 버튼은 올라간다. 부르는 사람은, 불리는 사람이 학교에 만화책을 가져온 날부터, 매일 고문을 했다.
그 이후로 불리는 사람은, 만화책을 가져오지 않았다.
그 이후로도 부르는 사람은, 부르는 것을 그치지 않았다.
그러나 세상엔 그런 부르는 사람, 불리는 사람과는 다른 모습도 있었다.
어릴 적 나는 그런 사람을 본 적이 있다.
그 사람은, 남들에게 오타쿠라 불렸고, 본인 스스로도 본인을 오타쿠라고 말했다.
12살의 어느 명절, 나는 그 사람을 보았다.
시골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큰아버지의 집에 들르게 되었다.
모두가 거실에 모여 오순도순 얘기를 나눴다. 어린이와 어른 사이의 벽은 높고 험했다.
그들의 대화는 내겐 지루하기 짝이 없었기에, 나는 사촌 누나의 방문을 슬며시 열었다.
방에 들어간 순간, 내 눈에 한 서랍장이 들어왔다.
난 무언가에 홀린 듯, 마치 꿀을 찾는 벌처럼, 그대로 서랍장으로 빨려 들어갔다.
비밀의 서랍 안의 물건을 본 순간, 나는 두 눈이 번쩍 떠졌다.
고고학자가 유물을 발굴하듯, 조심스럽게 그 안에서 한 물건을 꺼내 들었다.
내가 발굴한 것은, 게임기였다.
나는 그것을 품에 안고, 거실로 나왔다. 그것이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
당시 사촌 누나의 나이는 27이었다. 사촌 누나는 게임을 좋아했다.
큰아버지는 그런 사촌 누나를 못마땅하게 바라보았다.
넌 아직도 그 나이에 애들이나 하는 게임을 하냐.
그 말에 사촌 누나는 내가 하고 싶은 걸 한다는데 뭘요,라고 답했다.
그때 사촌 누나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웃으며,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사랑한다고 당당히 말했다.
그 모습이 큰아버지에게는 탐탁지 않은 모양이었다. 거실에서 한참이나 그들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때 본 사촌 누나의 모습은 내게 오래 남았다.
나도 언젠가 남의 말이 아닌 내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그리고 이 이야기의 결말은, 게임기를 내가 가지게 되며 끝났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 친척에게 물건을 뺏겼다는 이야기의 악역 중 하나가 나였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아주 높은 확률로.
그 시절의 잘못은, 지금 떠오른 김에 조만간 갚아야겠다.
여하튼, 시간이 흘러 현재, 사촌 누나는 본인이 좋아했던 게임 관련 업종 디렉터 일을 하고 있다.
그녀는 누군가의 부르는 말에도, 전기 고문에도, 굴하지 않았다.
되려 자신은 오타쿠가 맞다 하였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사촌 누나처럼, 부르는 사람의 말에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고.
세상엔 세 부류가 있다.
첫째, 하고 싶은 일을 하지만 남의 말에 흔들리는 사람.
둘째, 남의 길을 방해하며 부르는 사람.
셋째, 자기 목소리를 지키며 끝내 자기 길을 걷는 사람.
그럼 나는 무엇인가. 불리는 사람, 부르는 사람, 둘 모두인 사람.
그것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단 하나만큼은 확신할 수 있다.
누군가 나를 오타쿠라 불러도 상관없다.
나는 그저 나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것이다.
남이 부르는 이름이 아닌, 내가 부르는 내 이름으로.
그 길을 끝까지 걸어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