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구단, 나만 몰랐던 주문

by 아니아즈





유치원 선생님의 시작 신호와 함께, 방 안의 모두가 주문을 외웠다.


이 일은 이.
이이 사.
이삼육.


그 이상한 소리들은 기계처럼, 박자에 맞춰 울려 퍼졌다.



유치원의 모두가 한 목소리로 그 주문을 읊었지만, 나만이 그 주문의 의미를 알 수 없었다.

나는 어리둥절한 상태로 주변을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의미불명의 그 말을 뱉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 나는 두려움을 느꼈다.

이 수십 명의 사람 속에서 나만이 모른다는 공포감.

세상은 나 없이도 돌아간다는 소외감.


그 감정들은 내게 강렬한 충격이 되었다.

그리고 강렬한 기억은 뇌리에 박히기 마련이다. 그것이 아주 오래된 기억일지라도.


7살 때의 기억은 아직도 지워지지 않는 낙인처럼, 내게 박혀있다.






내게는 아주 뛰어난 재능이 하나 있다.
어쩌면, 남들이 부러워 탐낼 정도의 재능이다.


아픈 척.



나는 다른 건 몰라도, 아픈 척 하나만큼은 일가견이 있었다.

그렇다고 이 놀라운 재능을 악용한 적은 그리 많지 않다. 주로, 학창 시절에나 사용했다.

이 재능은, 내가 어려서부터 사용해 온 생존방식 중 하나였다.


7살의 어느 날, 유독 유치원이 가기 싫은 금요일이었다. 이유는 딱히 없다.

굳이 이유를 덧붙이자면, 오늘 유치원을 가지 않으면 금토일까지 해서 총 3일을 쉴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일어나자마자 본격적인 계획을 실시하기로 했다.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눈을 반쯤 감는다. 입은 앙 다물고 있는 것이 포인트.

말할 때는, 목소리를 한층 낮추고 입을 다 열지 않고 말한다. 그러면, 힘없는 어투가 완성된다.

이렇게 행동하면, 영락없는 아파서 골골거리는 사람이 된다.


내 연기는 대성공이었다. 어머니께서 내 골골거리는 모습을 걱정하시더니, 오늘은 쉬라고 하셨다.

나는 속으로 '야호!'를 외쳤다.

그날, 나는 유치원에 가지 않고 집에서 푹 잤다. 말 그대로, 꿀잠이었다.

그렇게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이 지나고, 다시 월요일이 찾아왔다.


아픈 척을 할 때 중요한 점. 아픈 척은 남용해선 안된다. 정말 필요한 순간에만 사용해야 한다.

남용한다면 그 결과는 양치기 소년이 되는 것이다. 이후론 내 아픔을 남들이 믿지 않을 것이다.

7살의 어느 날, 그냥 유치원이 가기 싫은 월요일이었지만, 나는 유치원에 가야만 했다.

그렇게, 유치원에 등원했다. 유치원에서 나는 아픈 척으로 얻은 달콤함의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아픈 척 덕에 하루를 얻었지만, 그 하루가 곧 소외의 시작이었다.



수업이 시작되고, 선생님이 모두와 간단한 안부 인사를 했다.


"모두 주말 동안 시켜준 숙제는 잘 해왔나요?"

"네!" 모두가 해맑게 대답했다.


숙제? 나는 숙제가 무엇인지 몰랐다.

하지만 눈치가 보여, 일단 모두와 같이 큰 소리로 "네!"라고 외쳤다.


"그럼 숙제 잘 해왔나 확인해 볼까? 모두 시작~!"


선생님의 명령이 떨어지자, 모두가 일제히 주문을 읊었다.





이 일은 이.
이이 사.
이삼육.

모두가 주문과도 같은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나는 아픈 척 연기를 통해 단련된 잔머리로, 현 상황을 이해하고자 했다.

나는 눈동자를 오른쪽으로 굴려, 내 옆 친구의 표정을 보았다.

해맑게 웃으며, 정체 모를 주문을 읊고 있었다.

이번에는 왼쪽으로 굴렸다.

그쪽에 앉아 있는 친구도, 마찬가지로 헤헤 웃으며 정체불명의 주문을 뱉고 있었다.

모두가 하하 호호 웃고 있지만, 나는 웃지 못하는 그 상황이 나의 목을 옥죄어 왔다.


심장이 벌렁 뛰어오는 상황에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내렸다.


나는 립싱크를 했다.

모두의 입에 맞춰, 필사적으로 입을 뻥긋거렸다.

내가 뒤처져 있다는 사실을 다른 이들에게 걸릴까 싶어.





모두가 의미불명의 마법 주문을 외웠다.
그에 맞춰, 나도 필사적으로 립싱크로 그 주문을 외웠다.


모두가 웃었다.
나도 뒤처지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그들을 따라 웃었다.




나중에서야, 나는 그것이 구구단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것이 구구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처음엔 마법 주문 같았던 소리가, 이제는 따라잡아야 할 규칙처럼 다가왔다.


모든 것은 단 하루의 차이로 생겼다.

단 하루의 결석이 나를 다른 사람들로부터 멀리 보냈다.

나는 그 하루의 차이를 메꾸기 위해,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들여야 했다.

다음 주 월요일이 되어서야,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구구단을 주문처럼 외울 수 있게 되었다.



지금 돌아보면, 과연 내가 이상했던 것일까. 이런 생각을 해본다.

뒤쳐지면 안 되는 세상과, 빨리 달려가길 종용하는 세상.

그것을 나는 7살이란 여리고 여린 나이에 부딪쳤다.


구구단을 주말 동안 아이들에게 외우게 하고,

나는 다른 이들에게 뒤처질까 홀로 구구단을 외웠다.


우리는 너무 이른 나이에 달리기를 강요받는다.

그리고 멈추면, 다시 달리기 위해 몇 배의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는 언제쯤 멈춰도 괜찮은 달리기를 허락받을 수 있을까.

누가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저절로 출력되는 구구단을 머릿속에서 읊으며,

그 속에서 나는 아직도 달리고 있다.


이전 19화쓰디쓴 도덕의 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