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이란 것은 무엇일까요?"
내 손에 쥐어진 술잔에서 빛나는 빛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교수님께 말했다.
교수님과의 술자리에서 그런 뜬금없는 질문을 하게 된 까닭은, 취기 탓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내 무례할지도 모르는 질문을 들은 교수님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왜 도덕에 대한 의문을 가졌니?"라고 되물으셨다.
그 물음에, 나는 오늘 하루 동안 내 마음속에 걸린 일에 대해 운을 뗐다.
모든 의문의 시작은, 만원 열차에서 벌어졌다.
그날은, 1교시 수업이 있었던 날이기에, 부지런하게 움직여야 했다.
가시지 않은 졸음을 하품으로 내뱉으며, 열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열차를 기다리며, 나는 작은 바람을 품었다.
오늘만큼은 앉아서 갈수만 있더라면 얼마나 편할까,라는 아주 소박한 소원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한 학기의 절반이 지나갔지만, 이루어질 수 없었던 슬픈 꿈이었다.
내가 열차를 타는 역은, 열차 역들 중에서 중간 지점이기에, 매번 내가 열차에 들어선 순간은 이미 만석이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열차에 발을 들였지만, 역시나 오늘도 열차는 만석이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고 손잡이를 붙든 채, 열차의 흔들림에 몸을 맡겼다.
거기까지는 평소와 같은 등굣길이었다.
전쟁의 서막은, 한 인물의 등장으로 막이 열렸다.
노인이 열차 안으로 들어왔다.
노인은 성큼 들어오더니,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는 그 행동이, 빈자리를 찾는 행동이었을 것이라 추측했다.
목표를 찾지 못한 노인은, 열차에 들어올 때처럼 성큼 걸어와서 내 옆에 섰다.
노인이 선 자리의 앞에는, 출근 중인 회사원으로 짐작 가는 젊은 여성이 앉아있었다.
열차 안으로 들어올 때는 우직하게 들어왔던 노인이, 갑작스레 다리를 덜덜 떨기 시작했다.
온몸을 휘청거리면서 앞에 앉아 있는 여성을 노려보았다.
그 행동의 의미는 다분했다.
자리를 비켜달라. 그런 의미였을 것이다.
하지만 여성은 손 앞의 핸드폰만을 바라보며, 끝내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눈앞의 사람이 본인에게 관심을 주지 않자, 노인은 더욱 심하게 몸을 흔들었다.
휘청거리며, 여성에게 몸을 부딪치기까지 하였다.
여성은 노인이 일부러 몸을 부딪치고 있음을 분명히 깨달았다.
모른다면 오히려 더 이상했을 것이다.
여성은 눈가를 찡그리며, 차가운 벽처럼 노인의 시선을 받아냈다. 그리고 다시 핸드폰을 내려다보았다.
그 태도에 노인은 더욱더 세차게 몸을 휘청이며, 여성에게 무언의 수신호를 쏘았다.
여성은 침묵과 무관심으로 일괄하며, 노인의 수신호를 방어했다.
그 둘은 서로를 노려보며 신경전을 벌였다.
폭력도 폭음도 없었지만, 누구보다 치열한 전쟁이 그 자리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그런 투닥거림에서 항복의 깃발을 든 사람은, 옆에 앉아있던 중년의 남성이었다.
중년 남성분이 한숨을 토해내고 일어나며 말했다.
"여기 앉으세요."
그 말을 듣고 노인은 한마디의 대답도 하지 않고, 남성이 양보한 자리에 쏙 앉았다.
자리에 앉은 노인은,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팔짱을 꼈다.
노인은 자신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은 여성을 한번 노려보았다.
여성 또한 그런 노인을 노려보았다.
둘은 서로를 한번 째려보고, 각자의 일에 몰두했다.
여성 회사원은 본인의 핸드폰에 집중했고, 노인은 허리를 바짝 세우고 팔짱을 낀 채로 두 눈을 감았다.
그렇게 전쟁은 끝이 나고, 휴전을 맞이했다.
그 치열한 침묵의 전쟁이 이어지는 사이, 열차는 어느새 내 목적지에 닿아 있었다.
나는 열차에 내리기 전에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 그 둘을 바라보았다.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는 여성.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팔짱을 낀 채 눈을 감고 있는 노인.
자리를 양보해야 하는가. 자리를 양보해 줄 의무는 없는가.
자리를 양보해 주길 강요해도 되는가. 자리를 양보해 주길 강요하지 말아야 하는가.
누구의 잘못인가.
그리고, 도덕이란 무엇인가.
풀리지 않는 난제를 마주친 수학자의 기분을 십분 이해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나는 좀처럼 풀리지 않는 의문만을 가진 채로, 열차에서 내렸다.
그날, 나는 수업에 좀체 집중할 수가 없었다.
내 머리에 지우개라도 있는지 그날 수업에 대한 내용은 통째로 까먹었다.
머릿속에서는 수업의 내용이 아니라, 끝나지 않은 질문만이 맴돌았다.
결국, 저녁에 교수님 앞에서 그 질문을 꺼내고 말았다.
"누가 옳았던 걸까요." 나는 난제의 정답을 알고 싶었다. 그러기에 교수님께 정답을 갈구했다.
교수님은 술을 한 잔 마시고, 조용히 술잔을 내려놓으시며 말하셨다.
"도덕은 마음의 법이란다. 법전 속의 법이 아니지.
그리고 사람의 마음이란 모두 다른 법이란다.
옳고 그름에 대해서는 그들 마음에 달려있는 거다."
"하지만, 누군가는 각자의 도덕을 강요했는걸요?"
"적어도 도덕은 강요가 아닌, 앞으로 서로가 맞추어 가야 할 일이지."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 조용히 술잔을 내려다보았다.
과연, 우리가 서로에게 맞추어 갈 수 있을까.
아니면, 도덕이란 애초에 강요 속에서만 살아남는 것일까.
가게의 조명이 쏘아내는 빛이 술 안에서 은은히 빛나고 있었다.
나는 술에 비친 빛을 목구멍 너머로 들이부었다.
그날따라, 술맛이 유난히 쓰게 느껴졌다.
도덕의 무게가 술잔 속에 녹아든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