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돌고, 내가 돌고.

by 아니아즈




세상이 핑 돌았다. 좌로 30도, 우로 30도.

세상이 핑 돌았다. 이번엔 좌로 60도, 우로 60도.


그 이유에 대해 내게 물었다. 왜 세상이 핑 돌까.

나는 분명 가만히 있는 것 같은데, 세상이 왜 돌아가고 있을까.

그 순간에도 세상은 좌우로 요동치며 돌아갔다. 이번엔 80도로.


물음이 물음을 낳고, 물음이 물음의 꼬리를 물고 계속 빙빙 돌았다.

내게 계속 물음을 던졌지만 답은 선뜻 나오지 않았고, 무언가 해결되지 않고 제자리를 돌기만 하는 이 상황처럼 세상은 계속 돌아갈 뿐이었다.


그래. 혼란. 혼란이라는 그 말로 그 상황을 설명할 수 있었다.

패닉에 빠지면 얼어붙는다고 말한다. 내 경우에는 무엇 하나 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마치 실에 묶여 누군가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였다.

다리에 힘이 풀려 행사장 스카이 댄서처럼 비틀거리는 몸.

눈을 분명히 뜨고 있지만 시야를 잠식해가는 어둠.

머리를 휘젓고 뛰어다니는 현기증. 혼란. 혼란. 그리고 또 혼란.

빙빙 돌아가는 세상이 조금씩 나를 사각사각 좀먹어갔다.

결국 세상에 내가 있지만, 내가 존재하지 않는 그 상황에 위가 빙빙 돌아 꼬인 것 같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아질 기색은 없고, 내 머리가 인식할 수 있는 것은 하나하나 사라져 빙빙 돌아가는 세상만이 남았다. 그리고 그 세상이 180도로 돌아간 순간, 나는 서 있던 자리에서 빙빙 도는 세상처럼 머리로 180도를 그리다가, 뒤로 픽 쓰러졌다.


이후로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잠시 빼앗겼던 내 몸의 지배권을 잠시 되찾고 제정신으로 돌아왔을 때, 수십의 눈들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고 수십의 입들이 뻐끔거리며 내 얼굴로 침을 튀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도 세상은 빙빙 돌았다. 다시 한번 내 정신은 뚝 끊겼다.


내 인생에서 긴장감과 압박감으로 인해 정신이 끊겼던 일은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앞의 내용만 보면 걱정하겠지만, 뒤의 내용까지 보면 어디서 쉬이 먼저 꺼낼 수 없는 흑역사이다.

모든 것은 앞면만 볼 것이 아니라, 뒷면 또한 보아야 한다.






이제부터 이 사건의 뒷면을 보여주도록 하겠다.





일단 내가 15살 때 종합학원을 다녔을 때의 일이다. 학원에서는 매번 쪽지 시험을 보았고, 쪽지 시험의 결과는 같은 반 학생과 바꿔서 채점했다. 때로는 앞뒤로, 때로는 옆으로.

그 쪽지 시험에서 일정 점수를 넘기지 못한 사람은 재시험이라는 명목하에 학원에 남아서 나머지 공부를 해야 했다. 그리고 당시의 내겐 나머지 공부가 입에 거품을 물고 싶을 정도로 질색이었다.


내게 나름 획기적인 계획이 생겼다. 미리 학원에서 쪽지 시험을 보는 수업을 듣기 전에 사전공로를 했다.

내 앞, 뒤, 옆 모두 내 친구들을 작전 위치에 배치했고, 서로의 것의 답을 고쳐주기로 했다.

이론상으론 완벽했다.




내가 생각한 것은, 이미 누군가가 생각했을 수 있다.

내 생각은 그렇게 획기적인 것이 아닐 수 있다.




그 사실을 내 마음 안의 공책에 밑줄을 긋고 쓰게 된 것은 그날이었다.

이론상으론 분명 완벽했지만, 내가 고려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바로, 필체였다.

결국 나는 부정행위를 채점하는 그 자리에서 걸렸고, 학원 선생님은 뿔이 나서 큰소리로 외쳤다.


“뒤로 나가서 서 있어! 이건 부모님께 연락할 거니깐 그렇게 알아.”


그 말을 듣고 자리에서 일어나 교실 맨 뒤로 나가는 동안, 내 머리는 온갖 생각들이 뒤엉켜 빙빙 돌았다.

부모님께 내 부정행위가 귀에 들어가는 것이 두려웠다.

사람에게 가장 큰 두려움을 주는 건 상상이다. 내 상상은 두려움이란 불에 장작을 던져주었고, 상상을 먹고 자란 두려움은 세상을 빙빙 돌아가게 만들었다. 상상은 최악의 상황을 그려냈고, 결국 혼란은 나를 빙빙 돌아 쓰러지게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그렇게 세상이 빙빙 돌고, 그 빙빙 도는 세상에서 나도 빙빙 돌 정도의 일이었나 싶다. 글을 쓰는 지금 부끄러움에 얼굴이 달아올라 있다.


한번 쓰러져 본 경험이 있기 때문일까. 내겐 내성이 생겼다. 이후로 혼절한 적이 없으며, 막막한 상황에 놓였을 때 항상 같은 생각을 한다. 지금 내 눈앞의 혼란은 나도 내 세상도 180도로 돌아가게 만들지 못하는 것이다. 어머니께 부정행위가 걸려 혼나는 것보다 두렵지도 않은 존재다. 그런 내성이 생겼다.


우리는 혼란에 빠지면 움직임이 얼어붙는데, 얼어붙은 상황에서 우리가 느끼는 혼란은 생각보다 별 게 아닐 수 있다.

세상을 빙빙 돌게 만드는 것은 우리의 상상이란 걱정 때문이다. 혼란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한다.


우리의 삶은 과거에 돌았고, 현재는 돌고 있고, 미래에도 돌 것이다.

이런 혼란은 세상을 빙빙 돌게 하고, 나를 빙빙 돌게 할 수 있다.

이처럼 세상이 빙빙 도는 것이 불행하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지구는 돈다. 그리고 지구는 돌아야만 한다. 지구가 도는 걸 멈추는 순간, 세상은 무너져버린다.

우리의 세상은 항상 돌고 있다.


이런 빙빙 돌아가는 세상에서 한번 돌아본 사람만이, 180도 뒤집힌 세상과 180도로 뒤집힌 나를 알 수 있다. 그리고 180도로 뒤집힌 세상도, 결국 세상이란 사실을 알 수 있다.


오늘도 세상은 돌고, 나도 돈다.


그리고 글의 마무리를 어떻게 지을지 고민하는 나는, 회전의자에서 빙빙 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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