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이 아니다.
보인다고 해서, 그것이 진정 옳은 것도 아니다.
우리의 삶은 보이지 않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는 그것을 잊고 살 때가 많다.
나에게 ‘보이지 않는 것’의 존재감을 처음 강렬하게 각인시킨 건,
어린 시절 과학 시간에 만난 한 물질이었다.
그 존재는 ‘이산화탄소’였다.
어린 시절의 과학 시간, 선생님이 드라이아이스를 꺼내셨다.
“이건 이산화탄소를 얼린 거야.”
드라이아이스는 신비의 존재였다. 기체가 고체가 된다니.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는 그것이, 눈앞에서 하얀 연기를 뿜으며 얼어붙어 있었다.
내가 지금까지 과학 시간에 배운, 머릿속의 고체-액체-기체 순서가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선생님은 드라이아이스에 대해 설명하며, 이산화탄소에 대한 얘기를 덧붙였다.
우리는 평소에 공기를 들이마시고, 이산화탄소를 내뱉는다.
우리는 공기 없이 살 수 없다. 공기는 보이지 않지만, 항상 우리의 곁에 있다.
세상이 이산화탄소로 가득 찬다면, 우리는 살 수 없다.
드라이아이스와 이산화탄소, 기체의 고체화에 대한 수업이 끝나고 본격적인 실험의 시간이 왔다.
본격적인 실험에 앞서, 선생님께서는 주의 또 주의를 하셨다.
절대 맨손으로 드라이아이스를 만지지 말 것.
드라이아이스는 굉장히 차갑기 때문에, 건들면 동상에 입는다.
절대 드라이아이스의 연기를 들이마시지 말 것.
사람은 공기 없이는 살 수 없다. 사람은 숨쉬기 위해서 공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연기가 있는 자리에는 공기가 아닌,
이산화탄소가 있을 경우가 크기에 공기를 마시지 못해 큰일 날 것이다.
다 함께 안전수칙을 크게 외치고, 기대하고 기대하던 실험에 들어갔다.
드라이아이스를 이용한 첫 실험으로, 드라이아이스 위에 동전을 두었다.
그러자, 동전으로부터 시끄러운 소리가 뿜어져 나왔다.
동전의 비명과 함께 터져 나온 학생들의 탄성으로 과학실이 울렸다.
나 또한 감탄을 내뱉었다. 하지만 곧 흥미를 잃었다. 동전으로부터 시끄러운 소리가 나오는 것이 끝이었으니.
하지만 다음 실험은 내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고도 넘쳐흘렀다.
다음 실험은, 드라이아이스를 물에 넣는 것이었다.
선생님께서는 드라이아이스를 물에 넣으면 안개가 만들어진다고 하셨다.
그리곤 큰 투명 대아에 물을 담고, 그 안에 드라이아이스를 퐁당 떨어뜨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아가 하얀 연기를 스멀스멀 토해냈다.
그 모습은 산신령이 나오는 연못과 같은 모습이었다.
이전 실험인 동전을 사용한 실험보다 더 높은 탄성이 모두의 입에서 쏟아졌다.
반의 모두가 먹이를 기다리는 아기 새처럼, 어서 드라이아이스를 물에 넣는 것을 기다렸다.
선생님은 각자 조의 탁자에 물을 담은 대아를 두고, 그 안에 드라이아이스를 넣어주셨다.
그러자 마녀가 마법을 부린 듯이 연기가 만들어졌다.
나는 탁자 위에서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연기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연기가 피어오를 때마다, 무언가에 홀린 듯이 나의 궁금증도 함께 피어올랐다.
궁금했다. 저 하얀 연기를 들이마시면 어떻게 될까.
나는 다르지 않을까?
나는 드라이아이스가 뿜어낸 이산화탄소 속에서 버틸 수 있지 않을까?
흐릿하게 피어오르던 의문이란 기체는, 이내 긍정이란 고체로 단단하게 바뀌었다.
'나'라면 가능하다.
나는 주변의 눈치를 쓱 둘러보았다.
선생님께서는 한참 달아오른 다른 친구들의 열기를 식히느라 바쁘셨다.
시선을 돌려 눈앞의 뿌연 연기를 바라보았다. 때마침 우리 조원들도 자리에 없었다.
침을 목구멍 너머로 꿀꺽 삼키고, 결심을 다졌다.
지금이다!
나는 드라이아이스의 안갯속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차가운 기운이 코끝을 스쳤다. 목 안쪽이 얼어붙는 듯했다.
나는 그 서늘한 감각 속에서 숨을 크게 들이셨다.
이 산신령의 연기를 모조리 빨아들이겠다는 기세로.
숨을 한껏 들이킨 후 고개를 들었지만, 선생님의 신신당부와는 달리 별일 없었다.
나 자신이 대견했다. 나는 이산화탄소를 들이마셔도 멀쩡한 사람이다.
나는 강인하다는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자신감이 들어차자,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이번엔, 연기 속에 얼굴을 넣은 채로 초를 세기로 했다.
누가 볼세라, 지체 없이 허리를 굽히고 얼굴을 대아 쪽으로 쏙 넣었다.
하나. 둘. 셋. 그렇게 삼십을 넘겼을 즘, 나는 깨달았다.
역시 나는 평범한 사람이 아닌, 특별하고 대단한 사람이다.
무려, 이산화탄소를 마시고 30초나 버틸 수 있는 사람.
나의 자질을 충분히 증명했으니, 이제는 그만두기로 했다.
숙였던 허리를 세우고 한걸음을 내딛는 순간, 엥 소리가 절로 나왔다.
갑자기 머리가 핑 돌더니, 옆으로 픽 쓰러졌다.
마치 바람이 빠져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는 스카이 댄서처럼, 나는 순식간에 무너졌다.
나는 깨달았다.
나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선생님께서 황급히 달려와서 나를 부축했다.
나는 눈을 꿈뻑이며, 잠시 꺼졌던 내 정신의 전원을 천천히 켰다.
내 상태가 서서히 돌아온 것을 확인한 선생님은 안도의 한숨을 내뱉으셨다.
내 정신의 전원이 완벽히 켜지자, 다른 전원도 켜졌다. 그 전원은 선생님의 분노라는 전원이었다.
네가 얼마나 무모한 짓을 했는지 아느냐, 최악의 경우엔 죽을 수도 있었다.
나는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선생님한테 된통 혼나고, 한동안 교실 청소를 전담해야 했다.
내 용감한 도전은, 그렇게 교실 청소 전담이란 결과로 마무리되었다.
그때 당시의 내가 하얀 연기를 들이마셔도 순간이나마 괜찮았던 이유는,
하얀 연기가 완벽한 이산화탄소는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하얀 연기의 정체는, 이산화탄소가 주위 공기를 차갑게 하여 수증기를 하얀 안개로 만든 것이었다.
내가 진정 쓰러진 원인은,
공기가 있어야 할 자리에 무색무취 상태로 대아에 맴돌고 있던 드라이아이스의 이산화탄소 탓이었다.
공기가 있어야 할 자리를 이산화탄소가 밀어낸 탓에, 나는 산소 결핍에 빠진 것이었다.
공기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는 그 속에서 숨을 쉰다.
사랑도, 우정도, 희망도 마찬가지다.
보이지 않기에 간과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숨을 붙잡고 있었다.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살아 숨 쉬고 있는, 그런 보이지 않는 것의 소중함을 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언젠가 또 잊어버리더라도, 나는 그날 드라이아이스 연기 속에서 쓰러진 순간을 기억할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나를 살게 한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