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하얀 세상에 숨겨진, 붉은 고통.

by 아니아즈

이 새하얀 눈으로 뒤덮인 세상은 이상향 같다.

이 세상은 아름답다.

눈앞의 눈부신 세계는, 잠시나마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의 손에 두 귀를 붙잡혀 고통스럽게 몸부림치는 흰 토끼를 보기 전까지는.

토끼의 상처 입은 귀에서 흘러내리는 붉은 피를 보기 전까지는.


토끼의 귀에서 흘러내린 피는,

눈부시도록 하얀 세상을 천천히,

그러나 선명하게 붉게 물들이고 있었습니다.





제 생각과는 반대로,
세상은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았습니다.





8살의 겨울방학, 가족들과 함께 겨울 축제를 갔습니다.

그 축제에서의 기억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여러모로.


겨울 축제가 열리는 장소로 가는 것은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습니다.

차를 타고 굽이굽이 늘어진 길을 따라 4시간이 넘는 시간을 나아가는 여정.

어린 제게는 그 지루하고 고독한 여정이 마치, 어딘가의 숨겨진 세계를 향해 떠나는 여정으로 느껴졌습니다.

긴 여정 끝에 도착한 세상은, 마치 동화 속 세상이었습니다.



제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처음으로 본 광경은, 온 세상이 눈으로 덮여 있는 새하얀 세계였습니다.

그다음으로는 썰매, 팽이치기, 얼음낚시, 축제를 장식하는 얼음 장식들이 가득한 세계를 보았고,

모두가 웃고 있으며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는 행복한 세계를 보았습니다.

그곳은, 긴긴 여정 끝에 도착한 숨겨진 세계는, 제게 이상향이었습니다.


하지만 곧 이내 깨달았습니다.





현실에 이상향은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새하얀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죠.





누나와 어머니는 썰매를 타러 갔고, 저와 아버지는 얼음낚시를 하고 있었습니다.

낚시의 기다림이 어린 제게는 하품이 나올 정도로 지루했습니다.

그러기에 움직일 기미가 없는 낚싯대를 멍하니 바라보는 것이 아닌, 주변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습니다.

때마침, 한 아버지와 아이의 대화가 제 귀로 대화가 흘러들어왔습니다.

저 너머로 가면 토끼가 있다는, 제 마음을 순식간에 강탈해 갈 정도로 흥미로운 이야기였습니다.

그 솔깃한 말에 제 귀가 쫑긋 세워졌고,

옆에서 얼음낚시를 하고 있던 아버지에게 토끼를 보고 오겠다고 말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금방 돌아와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했습니다.

저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신나는 발걸음으로 토끼들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눈으로 덮인 세상에서 깡충 뛰어다닐 흰 토끼를 생각하니, 두 다리가 가벼웠습니다.

그런 가벼웠던 발걸음은 토끼가 있는 곳에 도착하자마자, 얼어붙은 채로 멈춰 섰습니다.

겨울바람의 차가움에 얼어붙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마주한 광경이 제 두 발목을 꽉 붙들었습니다.

하얀 세상에 존재하는 이질적 존재 탓이었습니다.


색 하나 없이, 결점 없이 깨끗해야 할 세상에, 색을 가진 존재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새하얀 눈 위에, 붉은 자국들이 선처럼 이어져 있었습니다.

새하얀 세상에서 마주친 붉은 자국의 정체는,

그 붉은 자국은, 토끼의 귀에 생긴 상처에서 흘러내린 피였습니다.





저는 세상이 새하얗고, 아름답기만 한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눈이 닿지 않는 어딘가에선 붉은 고통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제가 도착한 장소에 있던 토끼는, 마음속에서 꿈꿔 왔던 사뿐사뿐 뛰어다니는 토끼가 아니었습니다.

눈앞의 흰 토끼는 자신의 뒤를 쫓아오는 누군가를 피해 필사적으로 달리고 있었습니다.

토끼가 피해 다니던 누군가는, 바로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은 토끼를 잡기 위해, 토끼를 쫓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토끼의 뒤를 쫓았고, 그런 사람들을 피해 토끼는 다시 뛰어다녔습니다.

그런 토끼의 필사의 발놀림은, 토끼의 운명을 바꾸어주진 못했습니다.

도망의 과정은, 항상 붙잡힘이라는 결말로 끝났습니다.

저는 토끼가 붙잡히고 난 후에야, 모든 토끼들의 귀에 상처가 있었던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토끼의 두 귀를 잡고 들어 올리며 웃고 있는 아이.

그 아이를 촬영하고 있는 아이의 아버지.

그리고, 아이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는 토끼.

토끼가 발버둥 칠수록 귀의 상처가 벌어졌고, 새하얀 세계에 붉은 피가 새겨졌습니다.


이곳저곳에서 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토끼를 잡은 사람이 토끼의 귀를 붙잡고 들어 올리고, 그 모습을 촬영했습니다.

붙잡힌 토끼는 발버둥 치다 귀에 상처가 생겼습니다.

귀에 상처가 생긴 토끼들이 도망치며, 하얀 세상을 붉게 물들였습니다.


바닥에 새겨지고 있는 붉은 자국들에 심장이 울렁거렸습니다.

토끼를 붙들기 위해 쫓는 사람들을 보니, 기묘한 감정이 저를 휩싸았습니다.




그 상황 속에서 저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도망.

그것이 제가 내린 결론이었습니다.



저는 도망쳤습니다. 그 순간 저는 너무 작았고, 내 작은 외침이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믿었습니다.

아니, 외칠 용기조차 없었습니다.


그 장소에서 벗어나, 가족들이 있는 곳으로 바쁘게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토끼들을 향해 달려갔던 속도보다, 더 빠른 속도로 토끼들로부터 달아났습니다.

그러자 제 눈앞에 다시 새하얀 세계가 나타났습니다.

모두가 행복하게 웃고 즐거운 세계.

썰매, 팽이치기, 얼음낚시, 축제를 장식하는 얼음 장식들이 가득한 세계

붉은 자국 없이 티 없이 하얀 세계.


나는 이렇게 쉽게 그 장소를 벗어날 수 있는데, 토끼들은 그럴 수 없었습니다.

그런 생각이 스쳤지만, 나는 그 모든 기억을 마음속에 묻기로 했습니다.

그 모든 것을 잊고, 썰매를 타고, 얼음낚시를 하고, 팽이 치기를 즐겼습니다.

당시에는, 모든 기억을 눈밭 어딘가에 묻어버렸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어째선지, 시간이 약이라는 말과는 다르게, 시간이 흐를수록 기억은 선명해져만 갔습니다.

발버둥 치는 토끼와 그런 토끼의 귀에서 흘러내리던 붉은 피.

상처 난 귀에서 뚝뚝 떨어지던 고통의 흔적은, 하얀 눈 위에 깊은 상처처럼 남았습니다.

제 새하얀 겨울 축제는, 붉은빛으로 물들어 있습니다.


그 당시에 저는 어렸습니다. 어렸기에 그 상황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어렸으니, 어쩔 수 없다 말해봅니다. 변명해 봅니다.

하지만 그것이 정당화될 수 없다는 사실은, 누구보다 제 자신이 잘 알고 있습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기억이 선명해질수록, 그날에 대한 의문 또한 선명해지고 있습니다.


그 토끼들은 눈 속에서 살아가는 토끼였을까요, 아니면 그냥, 추위에 던져진 평범한 토끼였을까요.

눈 속에서 살아가는 설토끼였다면 겨울의 추위를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었겠지만,

평범한 토끼였다면 겨울의 추위를 버틸 수 없었을 겁니다.

그럼에도 토끼는 살기 위해 벌판을 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토끼들이 고통받고 있는 그 자리에서, 제가 큰 소리로 문제를 외쳤다면 무언가 바뀌었을까요.

.

.

.

.

모든 것은 알 수 없습니다.

왜냐면, 제가 그 자리에서 도망쳤기 때문에 말이죠.

바뀔지, 바뀌지 않을지. 그 모든 것은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도망쳤기에, 어느 하나 바뀐 것이 없습니다.


제 작은 목소리가 세상을 바뀌지는 못했을 겁니다. 제 외침이 이 세상을 바꾸지는 못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외쳤더라면, 적어도 '토끼의 세상'은 바뀌었을 겁니다.


저는 이제 문제를 피하지 않습니다. 마주하고, 말합니다.

그게 세상을 바꾸는 첫걸음이라는 걸 이제는 압니다.


그것을 깨닫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문제를 인식하는 시간도, 문제를 정면으로 받아들이기까지도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제는 외치려고 합니다.




새하얗기만 한 세상은 없습니다.

붉은 고통은, 눈 속에 감춰진 채, 조용히 번지고 있었습니다.

나는 이제, 그 눈밭을 가만히 지나치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 글은 제가 본 세상에 대한 외침입니다.

이 모든 글은, 어딘가에서 고통받고 있을 이를 위해 적습니다.

그리고, 누군가의 기억에서 고통받고 있을 이를 위해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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