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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ibooks Feb 11. 2018

스마제니 시르

Smažený sýr

Smažený sýr : 한국어로 치즈 튀김 정도로 부르면 되겠다.



체코에서 전통음식으로 내세우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굴라쉬, 스비츠꼬바, 끄네들리끼, 꼴레노 같은 것들. 이 음식들은 기회가 닿으면 언젠가 소개하겠다. 앞에 열거한 음식들은 체코 이름의 체코 음식이지만, 헝가리와 독일 등지에서 먼저 시작했거나, 인접국 간에 공유되는 전통음식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스마제니 시르 같은 경우는, 아마 폴란드나 슬로바키아 등 근방 어느 나라에서 '이것은 우리의 전통 음식이다' 주장하는 경우도 있을 듯 하지만, 본 적은 없다.

 

아니면, 위에서 예를 든 음식들의 경우는 주로 레스토랑에 가서 자리를 잡고 앉아서 웨이터가 오길 기다렸다가 주문하면 나오는, 그럴듯한 외식이나 정통 식사의 개념으로 먹곤 했었다. 그곳이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식당이든, 가장 서민적인 식당이든 간에, 조금은 "우리, 오늘 저녁 칼질하러 갑시다"의 느낌으로 갔을 때 먹는 약간은 우아한 음식이었다.

   


스마제니 시르는 좀 달랐다. 치즈 튀김을 물론 그럴듯한 레스토랑에서도 팔곤 했다. 그리고 각 식당마다 자신들만의 레시피나 플레이팅을 뽐내기도 했다. "이 서민적이고 전통적인 스마제니 시르를 우리는 이렇게 고급지고 정갈하게 내놓습니다."라고 하듯, 어떤 집은 작고 동그란 까망베르 치즈를 튀김옷에 묻혀 여러 개 튀겨낸 뒤, 꼬치에 꽂아 샐러드와 담아냈고, 어떤 집은 에이담을 두툼하고 넙적하게 썰어 튀긴 다음 넉넉하고 먹음직스럽게 두 덩이 담아냈으며, 다른 곳은 모짜렐라를 사용했다. 학생 식당에서도 단골 메뉴였고, 체코 이케아의 식당에서도 현지식으로 선정한 메뉴였다. 스마제니 시르는 항상 타르타르 소스 tatarská omáčka를 곁들여 먹는데, 이 소스도 각 식당 주방장의 레시피대로 조금씩 다른 맛을 갖고 있었다. 어느 식당이든 나이프로 스마제니 시르를 썰면, 뜨겁게 녹은 치즈가 쏟아져 나왔다.


다른 사람들은 외식을 하러 가면, 그 식당의 가장 잘 나가는 요리나 특선요리를 시키기도 했고, 이런 기회 아니면 자주 못 먹는 요리를 먹었지만, 나는 자주 스마제니 시르를 사 먹었다. 치즈와 튀김을 모두 좋아했고, 이 음식이 저렴한 편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한 번에 먹는 양이 많지 않은 편인데, 사실 어떤 체코 음식들은 한 번에 먹어치우기 부담스러울 만큼 양이 많다. 게다가 체코인들은 다른 사람과 요리를 나누어 먹는 습성이 없는 편이다. 저렴하고 맛있고 혼자 다 먹기 어렵지 않은 음식으로, 스마제니 시르는 나에게 안성맞춤이었다. 스마제니 시르가 양이 많은 경우도 있었지만, 워낙 좋아하는 음식이다 보니 거의 다 먹을 수 있었다. 체코 친구들은 스마제니 시르를 주문하는 나에게, "응, 그건 좋은 체코 전통 음식이지! 맛을 아는구나"라고 말했지만, 어느 정도는 '굳이 이걸 왜 식당에서..'라는 뉘앙스를 풍기기도 했다. 간혹 한국에서 온 분들은, 그걸 느끼하고 짜서 어떻게 먹냐고 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체코는 워낙 저렴하고 맛있는 맥주의 나라이기 때문에 맥주와 함께라면 그런 느끼함 정도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게다가 더 짜고 느끼한 음식은 사실 따로 있었다. 이 또한 나중에 기회가 되면 소개하겠다. 어쨌든 스마제니 시르는, 현지인에게도 타지인에게도 건강한 인상을 주는 음식은 아니었다.



그렇게 여러 번 먹다 보니, 다양한 종류의 스마제니 시르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내가 들고 싶은 스마제니 시르의 큰 장점은, 스트리트 푸드라는 점이었다.


체코의 겨울은 으슬으슬 춥다. 길거리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은 대개 고열량의 따끈한 것이 많다. 요즘 한국에서도 판매되는 굴뚝빵/뜨르들로trdlo라는 것도 있지만, 이 빵이 길거리나 크리스마스 장터 등에서 팔리는 것을 본 것은 체코에 간 뒤 몇 년이나 지나서였다. 길거리에서 주로 파는 것은, 뜨겁게 굽거나 데쳐낸 소시지와 빵이었고, 겨자와 케첩을 발라먹는다. 그리고 싸구려 햄버거나 이 스마제니 시르를 햄버거 빵에 끼워 파는 가판대가 몇 군데 있었다.


길거리에서 파는 스마제니 시르는 더욱 기름에 절어있다. 치즈나 튀김옷의 질도 그닥 좋지 않을뿐더러 한 번 튀긴 것을 또 데워내거나 튀긴 지 한참 된 것이라 눅눅할 때도 있다. 치즈와 빵과 기름과 타르타르 소스가 어우러진 맛. 그래도 그렇게 가끔 사 먹는 맛이 좋았다. 가끔 갓 튀긴 스마제니 시르를 먹게 되면 특별한 행운이라도 깃든 듯한 기분이 들었다.



프라하 시내에 Tesco 앞에 스마제니 시르 등을 파는 가판대가 있었는데, 다니던 학교에서 가까웠다. 마침 꽤 많은 트램/뜨람/뜨람바이tramvaj가 오가는 정거장이기도 해서 장을 보고 집에 가기 전에 들러 사 먹거나, 어딘가 이동하다 지쳤을 때, 비 오고 짐도 많고 추운 날 잠시 비를 그으며 서있을 때 사 먹곤 했다.


마트 앞인 데다 비를 피할만한 지붕이 있고 저렴한 음식을 파는 곳이다 보니 노숙하는 분이나 부랑자들도 근처에 모여 있었다. 하루는 그 앞에서 친구와 스마제니 시르를 들고 먹던 중, 내가 소스를 옷에 흘린 것을 본 어떤 부랑자 분이 나에게 다가와 냅킨을 건네주기도 했다. 몇 마디 그렇게 이야기 나누던 일이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이제 체코에서 Tesco가 철수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은데, 어떤 마트가 들어서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 한국에도 스마제니 시르에 대적할 만한 버거가 등장했다.



모짜렐라 버거에 프라하 있다.


한국의 패스트푸드 점에서 만난 체코의 맛 : 모짜렐라 인더버거 더블


패스트푸드를 그렇게 좋아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모짜렐라 시리즈를 먹어보고 나서는 종종 찾게 되었다. 최근에 먹어 본 모짜렐라 인 더 버거 더블은 얇은 고기 패티와 해시브라운이 들어 있어서 뭔가 감자전과 고기산적 등 한식의 느낌이 났는데, 그보단 모짜렐라 새우버거가 더 스마제니 시르의 식감과 느낌에 비슷했다. 이렇게 의외의 장소에서 스마제니 시르와 비슷한 맛을 마주함에 감사하며, 가끔씩 모짜 새우버거를 애용하고 있다. 먹을 때마다 프라하의 생활을 떠올리게 된다. 그저 예전의 라이스버거처럼 사라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내가 알던 맛, 자주 찾던 맛을 더이상 자주 맛볼 수 없다는 것은 거의 불행에 가까운 일이다.

어떻게든 비슷하게 만들어서라도 먹어보겠다 마음먹어도, 튀김요리를 집에서 하기란 번거롭다. 덩어리 치즈를 구하기조차 쉽지 않고, 요리를 위해 몇 시간을 내기도 어렵다. 마트에서 파는 타르타르 소스란 기억 속의 그 맛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그 익숙하던 맛은 아무래도 전처럼 쉽게 만나 지지 않는다.


충족되지 않는 미각은 사람에게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까? 

 

겨울 프라하의 오묘한 하늘빛

어느 겨울, 프라하 뜨람 전선이 얽힌 하늘 아래 스마제니 시르를 먹던 기억을 떠올리며, 오늘의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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