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모든 것을 탈탈 털어보자
대학생 때까지도 자기소개는 괜스레 부끄러웠다. 대학원을 다니고 해설사로 활동하며 점차 "안녕하세요. OOO입니다."를 입 밖으로 낼 일이 많아졌고, 일을 시작하면서부터는 메일 쓰기와 동시에 반사적으로 입력하는 문구가 되었다. 하지만 오늘의 인사말은 조금 다르다. 새로운 이름을 붙여 보았다. 사실 나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이 이름에 관한 얘기로 첫 글을 시작해 본다.
어느 날 유튜브에서 '이메일 아이디를 왜 그렇게 만들었나요'라는 면접 질문을 보았다. ‘초등학생 때 쥬니어네이버 게임하려고 멋모르고 만든 네이버 아이디가 지금까지도 모든 계정에 남아있는 건데?’ 철없던 기억에 웃음이 나왔지만 한편으로는 아이디에 얽힌 내 이야기를 한번 정리해 두는 것도 개인적으로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사용할 아이디를 입력하라는 빈칸에 당황한 초딩 시절의 나는, 책에 나온 여자아이 이름을 나름 알파벳으로 적어냈다. anica에 관한 첫 기억이다. 메일주소를 불러줄 때 종종 '애니카'로 읽는 분들이 있었는데 사실 '아니카'다. '아니카예요'라고 말하지 못하고 웃어넘겼던 기억들이 이 글을 쓰는데 아주 작은 영향을 주었을지도 모르겠다.
당시의 나는 '아니카'라는 이름이 꽤 마음에 들었나 본데, 서른 살의 나는 도대체 그 책이 무엇인지 기억나지 않았다. 아니카라는 여자아이와 그보다는 나이가 많은 남자아이가 같이 나왔다는 것만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막막하긴 해도 나에겐 구글이 있으니 걱정은 없지. 일단 '아니카 동화'를 검색해 보았다. 주로 나오는 건 아니카라는 작가의 작품이거나 제목에 아니카가 들어가는 동화였다. 넘기다 보니 『삐삐 롱스타킹』등장인물에 아니카가 있었다. 아니카의 오빠로 토미라는 남자아이도 나왔다. 이거다!라는 확신이 확 들지는 않지만 어릴 때 살던 집에 삐삐 롱스타킹 책이 있긴 했으니 거의 맞지 않을까?하고 마무리했다.
정확히 어떤 점에서 아니카라는 캐릭터에 꽂혔는지 알기 위해서 작년 9월,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를 다시 펼쳐보았다. 아니카와 토미 남매는 삐삐의 옆집에 살면서 함께 노는 아이들이었다. 보통의 아이들을 배치해 삐삐의 말괄량이 특징을 더욱 부각하면서, 삐삐와 놀면 재밌겠다고 생각할 어린 독자를 대변하는 역할로 보였다. 결국 책을 다 읽고도 딱 떨어지는 이유는 찾지 못했다. 남동생이 있는 나에게 오빠가 있는 예쁜 여자 아이가 좋아 보였던 게 아닐지 추측해 볼 뿐이다. 열심히 읽던 책도 아니었을 텐데 도대체 어떤 점이 그때의 나를 끌었을까?
책꽂이에 꽂혀 있던 동화책의 작은 등장인물이 내 평생의 아이디가 된 것처럼, 돌이켜보니 일상 속 소소한 선택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anica의 근원 찾기로 시작한 이곳은 내가 꽂혔던 무언가를 생각하고 풀어보는 자리가 될 듯하다.
사실 글이라고는 하루일과를 시간 순서대로 나열할 줄밖에 모르는 S형 인간의 쓰기 도전이라, 앞으로 어떤 글이 쌓여갈 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다. 5개월째 미루고 있던 2025년 새해 목표 '일단 시작하기'와 '내 경험 콘텐츠화 하기'가, 블로그를 다시 시작했다는 E 님에게 자극받아 첫 단추를 끼웠다. 밤중에 갑자기 계정을 만들고 쓰고 있는 거라 거창한 계획도 없다. 그런 점에서 이번 글은 무계획의 카오스를 잘 보여주는 것 같아 마음에 든다.
2년 전 독립과 함께 시작된 나에 대한 탐구를 시작으로, 5년 된 본캐와 10년 된 부캐로 쌓인 필드 이야기를 써보려 한다. 한동안은 두서 없는 글이 이어질 텐데 1년 뒤에 싹 정리해서 다시 보여드리리다!
#anica #아니카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