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액자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서면 졸업복을 입고 수줍게 웃고 있는 꼬마 시절의 내가 맞이해준다. 본가에서 일기장을 찾다가 액자를 발견하고는 부모님께 여쭤보지도 않고 냉큼 가져왔는데 막상 방 안에는 둘 곳이 없어 신발장 위에 올려두었다. 열쇠를 앞에 두고 있어서 출근할 때 한 번, 퇴근할 때 한 번 최소 하루 두 번은 시선이 지나치는 곳인데, 막상 다시 보니 사진 속 내 얼굴이 참 낯설다. 엄마도 스윽 보시더니 "울었나 본데?"라고 하실 정도로 눈이 부어 있다. 내 사진이라는 걸 인지하고 있으니 꼼꼼히 보지는 않았겠지만 거의 두 달 동안 부은 얼굴이라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니 절망적인 관찰력이다.
사진 이야기를 하다 보니 추석 때 본 전시가 떠올랐다. 어떤 전시인지도 모르고 셰익스피어와 J.K. 롤링이라는 이름만 보고 무작정 향한 부산박물관의 <거장의 비밀: 셰익스피어부터 500년의 문학과 예술> 전이다. 두 작가를 어떻게 묶어서 풀어낸 걸까 궁금증에 가득 차 있던 내 앞에 나타난 건 처음 보는 어느 영국 신사들의 초상화였다. 전시 서문을 다시 읽어보니 시대를 초월해 사랑받는 영국 문학 거장의 초상화와 친필 원고, 편지, 초판본 등을 선보이는 영국 국립'초상화미술관'과의 교류 기획전이었다. 아는 작가나 작품이 나올 때는 "우와~" 하면서 구경했지만, 사실 90%는 모르는 인물이라 간단한 설명을 읽는 것조차 지치는 느낌이었다.
마지막 챕터의 한 작가의 설명에서 '초상화를 그린다는 것'에 관한 내용이 잠깐 나온다. 옛 인물은 그림으로만 만나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사진이 없던 시절 자신의 얼굴을 남긴다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가 얼굴을 알고 있는 사람은 역사책에 실릴 만큼 이름을 날렸기에 초상화를 그릴 수 있었고 수백 년이 지나도 그 모습이 선명하게 기억되고 있다. 초상화를 그리지 못한다면 그 사람을 표현하는 여러 문장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조금씩 달라져 가겠지.
인물화는 참 재미없는 그림이고 소설 속 섬세한 서술은 지루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이런 생각에 닿으니 다르게 느껴진다. 순간을 기록하는 도구로 사진이 당연하고, 등장인물을 그린 일러스트가 있는 책이 익숙한 세상에서 어떤 것을 '묘사'한다는 행위 자체가 낯설다. 사진이나 그림을 스마트폰에 저장하고 찾아보면 되니 큰 형체만 인지하고 자세한 부분은 기억하지 않게 된다.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뇌를 사용하는 것일 뿐이니 그 자체를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문득 매일 스쳐 지나치는 어린 시절의 모습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데, 소중한 사람들이 멀리 떠나게 되었을 때 사진 없이 스스로는 얼굴조차 떠올리지 못할 거라 생각하니 꽤 슬프다.
어쩌면 문제는 제대로 바라본 적이 없다는 사실인지도 모르겠다. 스마트폰 속 사진을 넘기듯 스쳐보기만 해서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사진이 초상화를 대체한 시대이지만 묘사하려 애쓰는 순간만큼은 여전히 그림에 가깝다. 내 앞의 얼굴들을 기억될 만큼 바라보는 연습을 해보려 한다. 적어도 가까운 얼굴만큼은 조금 더 오래, 조금 더 천천히 들여다보는 사람이 되고 싶다. 완벽하게 기억하지 못해도 바라본 시간은 결국 내 곁에 남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