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 에니어그램 #1] 4번 유형의 인생 여행
이반 오소킨은 기차역에서 애인 지나이다와 작별하고 돌아와서 절망적인 기분에 빠진다. 지나이다는 오소킨과 함께 크림반도로 가기를 원했으나, 그는 자신의 마음과는 다르게 그녀를 떠나보낸다. 오소킨은 금전 등의 몇 가지 사소한 고민들 때문에 동행을 거절한다. 지나이다는 오소킨의 마음이 이미 다른 곳에 있다고 오해하며 떠난다. 그로부터 얼마 안 있어 오소킨은 그녀가 민스키 대령과 결혼한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절망에 빠진다.
오소킨은 연애뿐 아니라, 재정적 궁핍, 직업적 문제 등으로 앞날이 막막함을 느끼고 있다. 그는 자신이 '인생에서 제외되었다'는 기분에 사로잡힌 채, 얼마 전부터 알고 있던 마법사를 만나서 자신의 심정을 토로한다.
"이 불행한 몇 년의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인생이 주려고 했지만 내가 걷어차 버린 모든 기회들을 되찾을 수만 있다면!... 만약 내가 어떻게 될지 미리 알았더라면!...
페데르 우스펜스키, <이반 오소킨의 인생 여행>, 연금술사(2014), P27
마법사는 웃으며 말한다. "응, 그래도 그렇게 했을 거야. 그대는 미리 알고 있었어."
그러나 오소킨은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자신의 행동의 결과를 명확히 안다면 매사에 다르게, 새로운 방식으로 행동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결국 마법사는 오소킨을 현재의 모든 지식과 기억을 가지고 그가 원하는 12년 전 과거의 학생 시절로 보내준다.
22년도에 <재벌집 막내아들>이란 드라마가 꽤 인기를 끌었다. 재벌집 머슴으로 살다가 억울하게 이용만 당하고 죽은 주인공(윤현우)이 과거의 바로 그 재벌집의 막내아들(진도준)로 환생하는 이야기이다. 시청자의 바람대로, 과거로 돌아간 윤현우는 현재의 지식과 정보를 이용해 통쾌하게 복수하고 성공한다. 물론 오소킨과 달리 윤현우는 다른 사람의 과거로 돌아간 것이지만, 자신의 과거로 돌아갔다 해도 잘 해냈을 것이다.
인생을 리셋하고 싶은 욕망은 누구나 한 번쯤 느껴봤을 것이다. 게다가 현재의 모든 기억과 정보를 다 가져간다면 그야말로 천하무적이 아닌가? 아마 시험문제를 다 알고 시험 보는 느낌일 것이다. 과거로 가서 주식투자하려고 벼르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과연 그럴까? 하는 것이 <이반 오소킨의 인생 여행>의 모티브이다.
스포일러를 하자면, 오소킨은 그의 바람대로 성공하지 못한다.
왜 그는 절대적으로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도 성공하지 못한 것인가? 나는 다음 선수를 위해서라도 원인을 여러 차원에서 심도 있게 고찰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오소킨의 개인의 성격 문제일 가능성이 있다. 그의 특정한 성향이 걸림돌일 수도 있다.
불건강한 4번 유형의 특징
오소킨의 행태를 살펴보니 에니어그램 4번 유형의 특징이 보인다. 그것도 상당히 불건강한 상태의 4번이다.
감정형인 4번은 '나는 특별하다. 다르다. 독특하다.'와 같은 자아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특별한 정체성에 부합하는 특정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계속 확인하는 경향이 있다. 오소킨은 자신이 늘 남들과는 인생을 다르게 접근한다고 확신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자신의 내밀한 감정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짜증 낸다.
대체로 4번은 평범한 일을 거부하며, 자신의 일이 개인적으로 의미심장한 것이어야 한다는 믿음을 가진다. 오소킨은 평범한 사람들이나 다니는 평범한 직장 따위는 우습게 여긴다. 여러 가지 제안을 걷어차고 나니, 남들에게는 자연스러운 방법들도 그에게는 불가능하고 꽉 막혀있게 된다.
"나는 늘 모든 것을 비웃었고, 삶을 망치는 것을 즐기기까지 했어요.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강하다고 느꼈어요. 아무것도 나를 굴복시킬 수 없었어요. 아무것도 내가 패배를 인정하도록 만들지 못했어요." (P29)
4번은 일상의 루틴이나 나인 투 파이브의 반복되는 직업에 적응하기 힘들다. 그러나 아무리 새로운 것이라 해도 결국은 익숙해지게 마련이다. 그들은 익숙해질 만하면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일을 기웃거린다. 이러한 태도로 인해 평범한 4번들은 대체로 직업이나 경제적 자립에 관해 문제를 겪기 쉽다. 결국, 오소킨은 늪에 빠져서 꼼짝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오소킨은 자신이 있는 모든 곳에서 불편함을 느낀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양가감정을 가지고 있다. 막상 싫어서 떠날 때는 그곳이 조금 좋았던 듯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새로운 환경에 가게 되면 즐거운 마음이 들지만 그곳에서도 익숙해지면 또 불편한 마음이 반복된다.
이런 특성 때문에 오소킨은 인생의 많은 기회들을 놓쳤다. 학교, 숙부의 집, 군사학교, 해외유학, 숙모에게 받은 유산, 애인 지나이다까지.
그는 왜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하는가?
오소킨은 자신이 무엇을 선택하거나, 자유의지를 내야 할 순간에 늘 악수를 두고 만다. 학교에서는 퇴학 사유가 될 수 있는 쓸데없는 장난을 기어이 하고 만다. 숙부의 집에서는 숙부가 아끼는 하녀인 타네츠카와 연애를 하여 숙부의 눈밖에 난다.
그런데 오소킨은 일을 망치고 나서 그가 내심 두려워하며 예상했던 일이 일어나자, 오히려 침착해진다. 이제는 아무것도 그에게 달려 있지 않기 때문이다.
너무 잘하고 싶은 마음이 압박감이 되어 오히려 일을 망치는 심리가 있다. 자신이 잘 해낼 수 있으리라고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의식 중에 망쳐버려서 자신에게서 일의 주도권을 박탈해 버린다.
후회는 자기 합리화일 뿐이다.
오소킨은 일을 망쳐버린 후에, '~을 했더라면', '~을 안 했더라면'이라는 후회를 계속 반복한다. 그는 어떤 것을 안 했기 때문에, 그리고 다른 것을 했기 때문에 자신이 인생에서 제외되었다고 믿는다.
후회는 진정한 반성이 아니다. 후회하는 것은 다시 똑같은 것을 반복하겠다는 무의식이다. 한 번만 후회하는 사람은 없다. 마치 매년 새해 첫날의 결심을 못 지킨 것에 대해 후회하는 것처럼 반복된다.
그리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안 해서 생긴 불편한 감정을 남 탓으로 돌린다. 오소킨은 다른 사람들 - 어머니, 숙부, 학교 선생들 - 이 자신을 감시하고 기대하는 것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중압감이 자신이 일을 망치도록 몰아갔다고 생각하면 죄책감을 덜 수 있다. '결심-후회-자기 합리화'는 무한루프처럼 반복된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오소킨을 여러 번 쥐어박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정신 차려! 오소킨"
그가 정말 불건강한 특정한 성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실패한 것일까? <재벌집 막내아들>의 윤현우 같은 능력 캐릭터라면 달라졌을 것인가?
<재벌집 막내아들>이 판타지라면, <이반 오소킨의 인생 여행>은 현실 버전이다. 오소킨은 한 개인의 특별한 사례가 아니다. 나는 작가가 보다 보편적이고 근본적인 원인을 말하고자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휩쓸려 가고 있는 거대한 윤회의 수레바퀴에 대한 이야기이다.
오소킨은 마법사와 대화를 나누고 정신을 잃는다. 익숙한 냄새, 익숙한 소음에 눈을 떠보니 놀랍게도 자신이 학생 기숙사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막상 과거의 모습으로 깨어나고 보니 어느 것이 꿈인지 의심스러워진다. 그는 남아있는 미래의 기억을 되새기며, 예전의 실수와 게으름을 바로잡겠다고 결심한다.
그러나 학생 오소킨은 공부를 하려고 하지만, 너무 지겹다. 전에 왜 자신이 공부를 할 수 없었는지 이내 알게 된다.
오소킨 : "나는 공부하기로 마음먹었어."
친구 : "그 소리는 한 번만 더 들으면 백 번이야. 넌 두 달째 공부를 시작할 준비를 하는 중이야."
(P66)
오소킨은 기시감을 느끼면서도 예전과 똑같은 농담, 똑같은 태도, 똑같은 대응을 한다. 그러면서 '이 모든 일이 전에도 일어났었다는 느낌이 들어.'라고 생각한다.
오소킨은 학생 시절로 돌아가서도 예전과 똑같이 말썽을 부린다. 그 때문에 어머니의 병은 치명적으로 악화되어 결국 돌아가신다. 그리고 그는 후회하며 어머니가 죽기 전의 여름으로 되돌아가기를 바란다. 과거로 돌아가서 다시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 다시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거울 속의 거울에 섰을 때 반사되어 나타나는 무수한 대칭처럼. 무서운 일이다.
모든 것을 바꾸자고 돌아와 놓고서, 왜 예전과 똑같은 행동을 하는 것인가?
우리는 과거로 되돌아가면, 마치 '현재의 나'가 '과거의 나'를 꼭두각시처럼 조정할 수 있으리라 가정한다. 현재 나의 소망대로 모든 것을 바꾸고 과거를 조정할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재벌집 막내아들이 한 것처럼.
이 가정은 인과관계를 철저히 무시한 나의 바람일 뿐이다. 지금 오소킨이 가지고 있는 미래의 기억은 현재에서 보면 과거의 기억과 다를 바 없게 된다. 즉, 과거로 돌아간 삶에서는 미래를 과거처럼 보게 된다. 우리가 과거에 무수한 다짐을 하고 지금 후회하는 것과 똑같은 양상이 되는 것이다.
습(習)의 중력이 윤회를 이끈다.
우리는 자신이 어떤 상황에서 무엇을 할지 안 할지를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 이전에 내가 해왔던 것들이 조건이 되어서 그 결과가 지금 일어나는 것뿐이다.
예를 들어, 계속 도박을 해왔던 사람은 도박의 업력이 조건이 되어, 또 도박을 할 수밖에 없다. 행위뿐만 아니라, 자신의 성향도 과거의 업에 의해 형성된 것이다. 지금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다음에서 그 생각을 또 할 수밖에 없다. 지금 이런 느낌을 느끼는 사람은 다음에 그 느낌을 또 반복해서 느끼게 된다.
'사람은 고쳐 쓰지 못한다.'라는 말이 있다. 오소킨도 '오소킨 한 것'이고, <재벌집 막내아들>의 윤현우도 과거로 돌아가서 '윤현우 한 것'이다. 윤현우가 뭔가 해낸 것 같지만, 사실 그것은 사회적으로 본 표면의 성취일 뿐 그의 내면은 이전과 동일한 상태이다.
소설의 첫 장과 마지막 장은 정확히 똑같은 일이 반복된다. 이 일이 결코 한 번만 일어난 것이 아님을 암시한다. 거대한 기계 속의 부속품처럼, 혹은 태엽감은 시계가 자동적으로 작동하듯 우리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우리는 니체의 영겁회귀처럼 윤회의 수레바퀴 속으로 들어간다.
윤회의 수레바퀴 속에서 우리는 매우 쉽게 상황 속에 빠져든다. 오소킨은 학생의 몸으로 되돌아가자 다시 학생 때의 습(習)으로 돌아간다. 우리가 초등학교 동창회에 가면 일시적으로 초등학생이 되는 것과 비슷하다.
오소킨은 분명히 처음에는 미래의 기억이 있지만, 현재의 상황에 매몰되며 점점 기억이 희미해져 간다. 학생 오소킨의 현재의 욕망이 그를 지배하게 된다.
만약 우리가 고양이의 몸을 받아 다시 태어난다면, 아무리 지금의 인간이었던 기억을 가지고 간다 해도 고양이의 육체 속에 갇혀서 곧 고양이의 욕망으로 동화되어 갈 것이다. 머지않아 인간의 언어를 잃고 '야옹'만 하게 될 것이다.
욕망에 기반한 습(習)의 강력한 중력에 비해 의지는 솜털처럼 너무나 나약하다. 우리는 마법사의 말처럼 지금 행동이 앞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알고 있다. 알면서도 반대로 행동하면서, 그 행동을 해야 가져올 수 있는 것을 원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인생이 비극적이라고 한탄한다. 그러나 이것은 비극이 아니라 '광기'이다.
우리는 매번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한다.
이것이 바로 '광기'이다.
<Wall Street: Money Never Sleeps>, 올리버 스톤 감독, 2010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원하는 바를 위한 조건을 만드는 것뿐이다. 업(業)의 중력을 등에 지고서 조금씩 나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악마는 우리 등에 올라타서 우리가 조건을 짓는 것을 필사적으로 방해한다.
우리는 전체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부분이나 사소한 것에 집착하게 된다. 그 당시에는 그것이 사소한 것인지 중대한 것인지 알 수 없다. 시간이 많이 지나야만 알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악마의 속임수'다.
"넌 이게 어떤 종류의 악마의 기술인지 전혀 몰라. 이 기술의 속임수는, 어떤 것도 한꺼번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야. 모든 일이 조금씩 일어나. 그리고 사람은 어떤 일이든 조금씩밖에 할 수 없어." (P204)
인간은 어떤 순간에는, 전체를 볼 능력이 없으면서도 삶을 한 폭의 큰 그림으로 전망하며 현재를 지나쳐간다. 또 어떤 순간에는, 정반대로 그 순간의 중요성을 과장하며 순간의 감각적 자극에 몸을 내맡긴다. 그러면서 삶 전체의 그림에 그 순간의 의미를 자의적으로 끼워 넣으려고 한다. 그것이 바로 '자기 합리화'이다.
오소킨은 숙부의 집에서 타네츠카에게 연애 감정을 느끼며 생각한다. "나는 목이 잘린다 해도 똑같이 할 거야." 마치 타네츠카가 자신의 삶의 유일한 연인인 것처럼 확신한다. 그러나 숙부에 의해서 쫓겨나듯 떠나게 되자, 오소킨은 새로 만난 여자들에게 또 비슷한 연애 감정을 느끼며 타네츠카에 대한 감정은 점점 희미해진다.
우리는 삶 전체의 의미도 모르고, '지금 여기(here & now)'의 의미도 모른다는 것을 인정할 때, 악마의 속임수를 벗어날 수 있다.
'지금 여기'만큼 누구나 다 아주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면서, 아무도 머물지 않는 것도 없을 것이다. 지금 여기에 머문다는 것은 많은 함정을 내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에고가 가득한 채로 지금 여기에 머물 수 없다. 에고는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희망으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거와 미래를 뒤에 숨겨놓고, 지금의 순간적 느낌에 탐닉하는 것을 '지금 여기'에 머무는 것으로 착각하기 쉽다. 자본주의의 모든 광고가 '순간의 감각적 탐닉'을 부추기고 있다.
마법사가 알려주는 비밀
결국 마법사를 또 찾아간 오소킨은 문득 자신이 이렇게 몇 번이고 마법사에게 찾아와서 똑같은 부탁을 했던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마법사는 다시 찾아온 오소킨에게 말한다.
"그대가 모든 것을 기억한다고 해도 그럴 거야. 무엇보다 그대는 이 기억을 오래 간직하지 않을 거야. 그것이 너무 고통스럽고, 그래서 그대 스스로 기억을 지우고 잊어버리길 원하겠지. 그런 다음 잊어버릴 테고. 둘째로 그대가 기억한다고 해도 그것이 도움이 안 될 거야. 그대는 기억하면서도 여전히 같은 행동을 할 거야." (P290)
오소킨은 기억만 가지고 간다면 무엇이든 바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기억이라는 것은 그렇게 만능열쇠가 아니다. 기억은 과거의 것이 아니다. 기억이란 현재의 필요에 따라 계속 편집되고 삭제되어 재가공되는 현재의 것이다. 영화 <메멘토>에서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린 레너드가 자신의 기억을 계속 조작한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설사 편집 없이 기억한다고 해도 기억만으로 우리의 행동을 바꾸지 못한다. 지금의 행동은 인과관계에 의해 과거에 내가 수없이 한 행동의 결과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럼 우리는 운명의 꼭두각시인가? 마법사는 대답한다.
"나는 아무것도 바뀔 수 없다고 말한 적 없어. 그대가 아무것도 바꿀 수 없으며, 또 아무것도 저절로 바뀌지는 않는다고 말했지. 난 무엇이든 바꾸려면 먼저 그대 자신이 변해야만 한다고 이미 말했네. 그리고 이것은 그대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워. 자신이 바뀌려면 오랜 기간의 지속적인 노력과 많은 앎이 필요하지." (P298)
환경이 바뀌었다 해도, 나 자신이 바뀌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저 바꾸고 싶다는 욕망만 가지고는 부족하다. 오랜 기간의 지속적인 노력과 많은 앎이 필요하다. 인디언 기우제처럼 언제 비가 올지도 모르면서 비 올 때까지 정성을 들여야 한다.
우리는 확실하게 보장된 것에만 정성을 들인다. 우리가 돈을 좋아하는 것도 그것이 확실성을 주기 때문이다. 에고는 별것 아닌데도 확실하다는 것만으로 그것에 자신을 바칠 수 있다.
죽어야 산다.
마법사는 오소킨에게 방법을 말해준다.
"그대는 자신이 무엇을 얻게 될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자신이 처한 무력한 상황을 깨닫는다면 모르는 채로라도 희생하는 데 동의할 거야."
"그대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고 말하지. 꼭 그렇진 않아. 그대는 인생을 갖고 있어. 그러니까 인생을 희생하면 되는 것이지." (P304)
우리는 자기가 사용할 수 있는 것만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뭔가를 희생해야만 사용할 수 있게 된다. 희생이 원인이 되어서 결과를 획득할 수 있을 뿐이다. 온 우주는 등가교환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늘 깨닫고 통찰을 얻는다. 그러나 문제는 오늘 깨닫고 내일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마법사는 자신이 얻은 통찰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바로 '희생'이라고 말한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을 늘 잊지 않는 것, 이 순간을 알아차리는 것이 바로 '지금 여기'에 머무는 것이다. 지금 여기에 머물기 위해서는 확실함에 대한 갈망을 버리고, 과거와 미래로 가려는 에고를 내려놓는 희생이 필요하다. 이것은 내 삶의 모든 시간을 바치는 지속적인 희생이다.
<카라마조프씨네 형제들>의 첫 페이지는 다음의 유명한 성서 구절로 시작한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요한복음 12:24)
밀알은 에고다. 좁디 좁은 씨앗이라는 공간에 갇혀 있는 우주의 먼지.
한 알의 밀알은 씨앗이라는 경계 속에 갇혀서 평생을 안온하게 살 수 있다.
그러나 그 속에서 어떤 노력을 해도 변화는 없다.
경계가 터져서 내부가 흘러나오는 자기희생이 있어야만 진정한 변화가 가능하다.
# 다음 링크는 에니어그램 4번 유형에 대한 영화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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