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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 | 열정과 집착 사이, 냉정과 포기 사이

[영화 속 에니어그램 #14] 3번과 5번 유형의 매트릭스

by 아닛짜

우리는 대체로 지금 사는 세상을 의심하지 않는다. 세상 속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일들에 대해서는 의심하지만 세상 자체에 대해서는 확신을 가진다.

그래서 <매트릭스>에서 세상이 한순간에 검은 바탕으로 전환되어 기계어들이 쏟아져 내리는 장면을 처음 보았을 때,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세상이 무너지는 체험은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내가 사는 이곳을 더 잘 이해하게 해 준다. 내가 속한 세상에서 일어나는 많은 문제는 그 세상 밖으로 빠져나와서 보면 의외로 쉽게 해결된다. 우리가 여행을 가서 낯선 문화를 체험하고 돌아오면 한층 성숙해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피트 닥터 감독의 2020년도 애니메이션 <소울(Soul)>에는 세 가지 서로 다른 세상이 나온다. 우리가 사는 현실인 지구 세상, 죽은 후에 가는 '머나먼 저세상(Great beyond)', 그리고 '태어나기 전 세상(Great before)'이다.


두 주인공, 조 가드너와 22는 세 가지 세상을 넘나들며 각자 자신에게 주어진 서로 다른 숙제를 풀어나간다.


조는 성취 지향적인 에니어그램 3번 유형이고, 22는 세상에 직면하는 것을 회피하는 5번 유형이다. 조가 열정적인 불과 같다면, 22는 냉정한 물과 같다. 매우 상반된 두 사람은 상대방을 통해 자신의 세상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얻게 된다.


버디 무비는 보통 서로 다른 개성과 나이대의 두 사람이 함께하며 일어나는 해프닝이 재미 요소인데, <소울>은 이 지점을 잘 살려낸다. 천상과 지상을 넘나드는 거대한(?) 스케일의 버디 로드 무비이자 성장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세 가지 세상은 인간 삶의 단계와 같다.


죽음이라는 연결 고리를 제거하면, 영화 속 세 가지 세상을 지금 현실에 바로 대입할 수 있다. 사실 머나먼 저세상이나 태어나기 전 세상을 진지하게 분석하면 여러 가지 설계적인 허점이 보인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세 가지 세상을 인간 삶의 단계별로 배치해 본다면 흥미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어나기 전 세상'은 사회에 나가기 전에 배우는 시기인 청소년기이다. 지구 세상은 학생들이 사회에 나와서 직면하는 현실적이고도 모순적인 삶의 현장이다. 이곳에서 학생들은 자신만의 숙제를 해내야 한다. 자신의 임무를 어떻게든 마치고 나면 '머나먼 저세상'으로 가게 되는데, 이곳은 은퇴 후의 고요한 삶이다.


영화에서 머나먼 저세상의 영혼들이 어떻게 사는지에 대한 구체적 묘사는 없다. 저세상으로 들어가는 검은 사각형 입구와 영혼을 관리하는 깐깐한 관리자(테리)와 거대한 파일 케비닛만 보여줄 뿐이다. 시나리오에서 머나먼 저세상은 주로 조와 22의 모험을 촉진하거나 제약하는 조건으로 작동한다.


본 리뷰에서는 조와 22가 주로 활동하는 곳인 태어나기 전 세상과 지구 세상의 관계성을 중심으로 이야기해 보겠다.


목차는 다음과 같다.

1. '냉정'과 '포기' 사이에서 길을 잃은 22
1-1> '유 세미나'는 이상적인 교육 시스템이다.
1-2> 몇억 년째 '준비 모드'에 갇혀 있는 22
2. '열정'과 '집착' 사이에서 길을 잃은 조 가드너
2-1> 삶을 꿈과 희망으로 교환한 대가
2-2> 열정과 몰입의 부작용
3. 조와 22의 성장
3-1> 조는 재즈의 즉흥성을 삶에 적용하는 법을 터득한다.
3-2> 22는 포기에서 열정으로 가는 길을 발견한다.




1. '냉정'과 '포기' 사이에서 길을 잃은 22


1-1> '유 세미나'는 이상적인 교육 시스템이다.


<소울>의 세계관에도 <인사이드 아웃>처럼 여러 가지 재미있는 개념이 등장한다.


태어나기 전 세상은 '유 세미나(You Seminar)'라고도 불리는데, 당신 자신과 관련된 모든 것을 탐구하는 학교의 역할을 한다.


유 세미나는 다양한 프로그램과 개인별 멘토의 도움으로 학생 영혼들의 성격과 적성을 찾아주는 곳이다. 에니어그램 식으로 말하자면, 아홉 가지 성격 유형 중 자신의 번호를 찾아내기 위한 시스템이다.


'전부의 광장(the Whole of Everything)'은 지구 가상 체험을 위한 실습장과 같다. 이곳에서 영혼들은 세상의 모든 가능성을 시도해 보고 자신의 '불꽃(spark)'을 찾는다. 불꽃을 찾으면 '통행권(earth pass)'이 완성되고, 학생들은 거대한 '지구 포털'을 통해 지구로 내려갈 수 있다.

06.지구포탈.png 졸업한 영혼들이 지구 포털을 통해 진짜 몸을 받아 태어나는 광경.


우주의 모든 양자장을 하나로 아우르는 존재들이 유 세미나를 관리한다. 이들은 양자화된 우주의 총체이며, 인간이 볼 수 있는 형태의 가장 단순한 선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개별 인격체가 아니기 때문에 모두 '제리'라는 똑같은 이름으로 불린다.


이곳은 경쟁도 시험도 없다. 등수를 매기거나 우열반도 없다. 사심 없고 친절한 제리는 엄마처럼 학생들을 양육한다. 22같은 악질적 유급생에게도 재촉함 없이 기다려준다.


죽어서 머나먼 저세상에 간 영혼 중 일부는 유 세미나의 멘토로 들어온다. 이들은 지구의 경험을 살려서, 소울메이트로 맺어진 학생 영혼들에게 불꽃을 일깨워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여기서는 영혼들에게 태어나는 순서대로 이름 대신 숫자를 붙여준다. 삶의 불꽃을 찾은 자들만이 이름과 진짜 몸을 가질 수 있다.

04.전세상 풍경.jpg 유 세미나의 관리자인 제리들은 학생 영혼들을 엄마처럼 보살펴준다.


얼마나 이상적인 교육 시스템인가? 우리가 꿈꾸는 파스텔 톤의 따뜻한 학교다. 그러나 이곳도 한계는 있다.


유 세미나의 학생들은 고정된 형태가 없는 영혼이므로, 어떤 모습, 어떤 목소리도 시험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순전히 정신세계이기 때문에 지구에서처럼 감각을 느낄 수는 없다. 피자 맛도 볼 수 없고, 건물에 깔려도 다치지 않으며, 따귀를 때려도 아픔을 느낄 수 없다.


지구에서 몸으로 직접 해보기 전에는 유 세미나에서 무슨 불꽃을 찾는다는 것은 사실 다 가짜이다. 그냥 학생에게 '넌 불꽃을 찾았으니 잘 해낼 거야'와 같이 안심시키기 위한 증표 같은 것이다. 우리가 대학 졸업장을 손에 쥐었다고 해서 사회생활에 무슨 도움이 되는가?



1-2> 몇억 년째 '준비 모드'에 갇혀 있는 22


22는 졸업하기를 거부하는 오래된 묵은 학생이다. 22는 때가 되면 성인의 역할을 해야 하지만, 현실에 부딪히기를 두려워하여 계속 학생기에 머무는 유형이다.


학생들의 번호가 천억 번째에 이르고 있으니, 22가 얼마나 오랫동안 머물렀는지 알 수 있다. 22는 겉은 순진한 아이 영혼이지만 속은 닳고 닳은 노인이 들어앉아 있다.


그동안 22는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도발하는 능력을 키워왔다. 22는 단지 사람들을 화나게 하려고 중년 백인 여성의 목소리를 즐긴다고 실토한다.


22는 그동안 간디, 에이브러햄 링컨, 코페르니쿠스, 심지어 마리 앙투아네트까지 저명한 멘토를 수도 없이 만났으나 자신의 불꽃을 찾을 수 없었다. 아니 찾는 것을 거부하고, 멘토들이 '죽은 걸 후회하게' 만들었다.


22는 지구에 대해 알 만큼 안다고 생각하며, 이곳 생활이 편하다고 고집한다. 22는 에니어그램 5번 유형의 전형적인 머리형의 함정에 빠져 있다.


인간의 머리는 신체 부위 중에 가장 땅과의 거리가 멀다. 머리형은 삶의 터전이며 안정감의 원천인 땅과 접촉 불량이므로, 장형이나 가슴형에 비해 본능적 생존력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머리형은 세상과의 직접 접촉을 두려워하며, 본능 대신 머리로 구축한 생존 전략에 기댄다.


머리형은 언제나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준비하며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특히 에너지가 안으로 향하는 5번 유형은 십 년째 전시회를 준비 중인 화가, 습작은 많지만 데뷔 작품을 내지 못하는 소설가처럼, 끝나지 않는 '준비 모드'에 갇혀 있다.


이들은 세상과 접촉하는 불안을 회피하기 위해 머리로 모든 것을 경험해 버린다. 이를테면 수영하는 법을 책으로 공부하고 수영을 마스터했다고 생각한다.


22 : "나는 지구의 모든 것을 빠삭하게 다 알고 있어. 난 여기서 편해."


이러한 5번의 장점은 초연함, 냉정함, 객관성이다. 이들은 어떤 현상의 근본을 알고자 하는 탐구심을 가지고 있다. 22는 그 많은 시간 동안 지구의 모든 것을 철저히 연구했을 것이다. 지구에 직접 뛰어들지 않을 이유를 마련하기 위해서.


이들은 초연함과 냉정함 뒤에서 자포자기와 회피를 위한 우회로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만회하기 위해서 5번이 쓰는 가면이 전문가 역할이다. 이들은 주로 특별한 기술자, 조언자, 현인 등을 가장하여 부족한 사회적인 스킬을 대신한다.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아는 전문가라고 자부하던 22는 조를 멘토로 만나고서 처음으로 의문이 생긴다.


22 : "조, 난 여기 아득히 오랫동안 있었어. 그 오랫동안 살아봐야 할 이유를 아무것도 찾지 못했단 말이야. 그러다 당신이 온 거야. 당신 삶은 슬프고 한심한데, 그걸 돌려받자고 그렇게 애쓰고 있잖아. 왜?"


22와는 정반대 인물인 조는 '냉정과 포기 사이'에서 길을 잃은 22를 열정의 세계로 이끈다.




2. '열정'과 '집착' 사이에서 길을 잃은 조 가드너


2-1> 삶을 꿈과 희망으로 교환한 대가


재즈 피아니스트인 조 가드너는 유명 연주자인 도로테아 윌리엄스의 팀에 합류하는 행운을 잡은 바로 그날, 맨홀에 빠져 죽게 된다. 인생의 절정을 맞은 순간 삶이 끝났다!


조는 죽은 후 원래는 '머나먼 저세상'으로 갔어야 했지만, 발버둥 치다가 우연히 '태어나기 전 세상'으로 떨어진다. 전 세상을 관리하는 제리는 조가 멘토로서 왔다고 착각하고, 조는 얼결에 22의 멘토가 된다.


유 세미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마다 '삶의 불꽃'을 찾는 것이다. 조만큼 자신의 불꽃을 잘 아는 사람이 있을까? 자나깨나 재즈밖에 모르는 조는 자신의 불꽃이 피아노라고 확신한다.


아마도 조는 지구의 삶 이전에 유 세미나에서 우등생이었을 것이다. 단번에 자기의 불꽃을 찾아내고 지구 포털로 순조롭게 내려왔을 것이다. 그러나 조는 불꽃에 대해 단단히 오해하게 된다.


지구 세상의 수많은 함정과 속임수로 인해, 불꽃은 이뤄내야 할 꿈과 희망으로 변모된다. 그리고 그는 꿈과 희망을 이루는 것이 인생의 목표이며 의미라고 믿는다.


조는 성공주의자인 3번 유형이다. 3번들은 타인과 사회가 인정하고 주목하는 일들을 성취하여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고자 한다. 사회가 확인해 준 목표와 의미에 도달하는 것이 3번의 성공이다. 성공으로 가는 길에 방해가 되는 것들은 시간 낭비이며 무의미한 것이다.


3번의 세계에서는 성공했을 때는 돈, 명예, 사람들의 인정과 환호 등의 화려한 보상이 주어지지만, 실패했을 때는 무가치한 삶이 남아있을 뿐이다. 그래서 3번들은 과도한 열정과 효율성을 보여주며, 일중독에 빠지기 쉽다.


조는 유 세미나에서 자신의 인생이 요약되어 있는 가상공간을 돌아보며, 자신의 인생이 철저히 실패했음을 알게 된다. 왜냐하면, 조의 삶은 자신의 기억 속에서 실패와 관련된 장면들만 뽑아서 편집한 호러 무비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07.조의 인생요약-실패자.png 영혼이 된 조는 자신의 실패한 인생을 요약한 공간에서 다시 한번 좌절한다.


이때 열정은 집착과 좌절로 변모한다. 이 과정을 영화에서는 '중간 지대'로 보여준다.


중간 지대는 육신과 영혼의 중간 지점이다. 이곳에는 '몰입한 영혼(those in the Zone)'과 '길 잃은 영혼(lost souls)'들이 모여 있다.


'몰입한 영혼'은 음악, 예술 등 어떤 일에 푹 빠진 사람들이며, 긍정적 몰입으로 즐긴다. 그러나 '길 잃은 영혼'은 열정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서 흑화한 사람들이다. 열정이 부정적 집착으로 변화된 것이다.


이곳에는 연주에 심취한 음악가, 결정적 골을 넣는 순간의 농구 선수와 같은 몰입한 영혼들이 있는 반면, "거래해. 거래해."라고 중얼거리는 헤지 펀드 매니저와 같은 길 잃은 영혼들이 암흑 덩어리로 변해서 굴러다닌다.

04-1.중간지대-몰입.png
04-2.중간지대-집착.png
중간 지대에는 몰입한 영혼들과 길 잃은 영혼들이 섞여 있다.


신비단 일원을 이끄는 문윈드는 이 광경을 보고 놀라는 조에게 말한다.


문윈드 : "길 잃은 영혼들과 몰입한 이들은 실상 별로 다를 것 없다는 거 아나? 몰입은 즐겁지. 하지만 그 즐거움이 집착이 되면 사람은 삶에서 일탈하는 거네."


열정과 집착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다. 조는 자신의 삶을 꿈과 희망으로 교환하여 받은 동전이 쉽게 뒤집혀 버리는 광경을 보게 된다. 열정에서 집착이란 괴물로.



2-2> 열정과 몰입의 부작용


우리는 열정과 몰입을 권장하고 추앙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열정과 몰입에 있어서는 조를 따를 사람이 없다. 조는 아이들에게 재즈가 무엇인지 알려주기 위해서 연주할 때, 도로테아 악단에서 처음 연주 테스트를 받을 때, 연주의 무아지경에 빠져서 중간 지대를 여러 번 경험했다.


그러나 열정과 몰입의 부작용은 시야를 좁게 하여, 삶의 다양한 면모를 감춘다. 조는 자신의 불꽃에 너무 몰입하여, 주변을 둘러보기는커녕 가장 가까운 사람들조차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불건강한 3번 유형은 겉으로는 사교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가족이나 친구들과도 깊은 관계를 맺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감정은 성가시고 비효율적인 것이어서 성공에 걸림돌이기 때문이다.


조는 엄마가 자신의 꿈을 전혀 이해해주지 않는다고 불평한다.


조 : (투덜거리며) "엄마가 말하는 성공은 프로뮤지션은 성공이 아니라고 생각해. 우리 엄마는 나를 평생 이해해 준 적이 없어. "


그러나 사실은 조 자신이 엄마를 전혀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엄마는 실패한 음악가인 아빠를 대신해 가족을 부양하며, 꿈과 희망의 고단함과 허망함을 직접 지켜봤다. 엄마는 자신의 경험에 바탕을 두고 조를 염려하고 사랑한 것이다.


오랫동안 알았던 이발사 데즈와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조는 데즈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재즈만을 일방적으로 이야기했을 뿐 데즈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조는 음악 교사 일도 프로뮤지션으로 성공하기 이전에 임시로 하는 일로 치부했다. 그러나 예전 제자는 조를 굉장한 멘토라고 여기며, 어린 제자 코니도 조를 무척 의지하는 것을 보면, 조는 선생으로서도 탁월했던 것 같다.


조는 음악 교사로서도 불꽃을 충분히 실현할 수 있었지만, 성공과 실패만 존재하는 3번의 이분법적 세계관에서 음악 교사는 간단하게 실패자가 된다.


온통 재즈, 피아노, 위대한 뮤지션에 꽂혀 있는 조에게는 삶의 다른 측면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만약 조가 도로테아 악단과 연주하기로 한 날 죽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영화는 여러 우여곡절 끝에 영혼 상태인 조가 자신의 몸으로 복귀해서 연주를 무사히 마치는 것을 보여준다.


조는 꿈에 그리던 재즈 공연을 성공리에 마치고, 공연장을 나와서 도로테아와 대화한다.


조 :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나서) "이제 다음은 뭐죠?"

도로테아 : "내일 돌아와서 또 모두 다시 하는 거죠. (조의 당황한 표정을 보며) 뭐가 문제죠?"

조 : "그게.. 나는 평생 오늘 하루를 기다렸는데,.. 뭔가 달라질 줄 알았어요."

도로테아 : "한 물고기 얘기가 있죠. 이 녀석이 나이 많은 물고기에게 가서 물어보길, '나는 바다라는 것을 찾고 있어요.' '바다라고?' 라며 늙은 물고기는 말하죠. '지금 있는 이곳이 바다잖아.' '여기가요? 이건 물이잖아요? 나는 바다를 찾고 있어요.'"


조는 자신이 이제 꿈을 이루었다고 생각했으나, 갑자기 아무런 특별한 느낌이 없음에 당황한다.


성공한 많은 사람들이 성공 후 우울증에 빠진다. 구름 위로 올라가기를 열망하였으나 실제로 구름 속에 들어가면 아무것도 없는 것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평생 바다를 찾은 물고기는 자신이 이미 바다에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평생 성공을 찾은 조도 도로테아의 이 말을 바로 이해하지 못한다. 그의 3번적 가치관이 해체되어야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3. 조와 22의 성장


3-1> 조는 재즈의 즉흥성을 삶에 적용하는 법을 터득한다.


조는 누구보다도 재즈를 사랑한다. 그는 연주할 때면 그 순간에 일어나는 즉흥적 흐름에 빠져들어 몰입할 수 있다. 재즈의 즉흥성은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머무르는 것을 상징한다.


그러나 조는 이러한 재즈의 즉흥성이 곧바로 삶에도 적용된다는 것을 몰랐다. 즉흥적 삶의 순간 그 자체가 의미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삶의 의미는 무언가 다른 것이어야 한다고 가정했다. 그는 이미 삶의 한복판에 있었으나, 스스로 그것에 눈을 감고 있었을 뿐이다.


조 : "잠깐만요. 저는 아직 22에게 목적을 찾아주지 못했어요. 불꽃이요.. 목적. 그게 음악인지, 생물학인지, 걷기인지.."

제리 : "뭐라고요? 우리는 영혼에게 목적 같은 것은 안 주는데?"

조 : "내 삶의 목적은 피아노인데.. 그게 내 불꽃이에요."

제리 : "불꽃은 목적 같은 게 아니에요. 하여간 멘토들은 그놈의 열정, 그놈의 삶의 의미. 정말 단순해… 쯧쯧…"


조는 불꽃을 삶의 의미나 목적이라고 생각했다. 의미나 목적을 위한 삶에서는 즉흥성이 사라진다. 지금은 미래의 목적을 위해 희생될 뿐이다.


오히려 22가 그 진실을 간파한다. 22가 삶의 즉흥성을 재즈에 비유하자 조는 말한다.


조 : "재즈는 그렇게 쓰는 단어가 아냐. 게다가 음악과 사회는 돌아가는 방식이 확연히 다르다고."


조는 그토록 바라던 공연을 마치고 나서, 수수께끼 같은 도로테아의 말을 듣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지하철을 타고, 불 꺼진 집으로 들어온다. 피아노 의자에 앉아, 주머니에서 22가 남기고 간 잡동사니를 꺼내서 물끄러미 바라본다. 먹다 남은 베이글, 이발사가 준 막대 사탕, 낙엽, 피자 가장자리, 엄마의 실패, 지하철 티켓.


그리고 조는 자신이 그동안 무의미하게 지나쳤던 인생의 모든 순간을 기억해 낸다.


불행하고 쓸모없다고 생각했던 인생의 모든 순간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맛있는 케이크를 음미하던 순간, 부모님과 폭죽을 구경하던 순간, 바닷물이 발가락을 적시던 순간, 눈부신 햇살 속에 자전거를 타던 기억들…


이 장면은 <시네마 천국>의 마지막 장면들만큼 아름답다. 영화에서 검열되어 잘려나간 수많은 키스신처럼, 조의 인생에서 삭제되었던 수많은 순간들.


조는 이제 불꽃의 의미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불꽃은 지금 이 순간이며, 꿈도 희망도 의미도 목적도 열정도 뭣도 아님을.


불꽃은 고양이의 햇볕이다.


*조는 일이 꼬여서 고양이 몸으로 잘못 들어갔을 때, 고양이의 본능과 감각을 경험하게 된다. 앞발로 불빛을 따라가며, 햇볕 가득한 마루에서 나른하게 누워버린다. 머리로는 오디션 준비가 급하다고 생각하지만 몸은 느긋하고 행복하다. 의미와 목적을 내려놓고 고양이로서 존재하는 것은 조에게 새로운 세상을 일깨운다.



3-2> 22는 포기에서 열정으로 가는 길을 발견한다.


22의 시니컬함의 뿌리에는 자신이 실제 삶에 뛰어들었을 때 상처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불안이 있다. 22가 관념의 세계에서 모든 것을 경험하고 결론지어 버리는 것은 5번의 방어기제이다.


그러나 22는 조의 몸으로 들어가서 세상을 직접 경험하고 나서 생각이 달라진다. 22가 유 세미나에서 먹는 시늉만 했던 피자와 지구에서 직접 먹는 피자는 너무나 달랐다. 머릿속의 개념과 몸의 감각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감각이 바뀌면 세계관도 바뀐다.

10-1.전세상에서 피자먹는척하는 22.png
10.처음 맛을 보는 22.png
유 세미나에서 먹는 시늉만 했던 것과 실제로 피자를 먹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22는 한번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을 처음으로 가지게 된다. 사실 22는 오랫동안 완벽한 준비를 거듭하며, 육체를 받는 모험을 하고 싶은 열망을 숨기고 있었던 것이다. 5번들은 준비를 과도하게 하는 편이라서 한번 용기를 내면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잘 해낸다.


유 세미나의 정신세계에서는 아무런 위험 부담 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다. 상처도 시련도 없다. 그냥 안전한 낙원과도 같다. 반면 지구 세상의 물질세계는 경쟁과 좌절, 성공과 실패, 위험과 상처로 가득 차 있다.


지구 세상에는 모든 사람이 다른 옷을 입고 다른 모습을 하고 있지만, 내면은 다 똑같이 불안하다. 유 세미나에는 모든 영혼이 옷 따위는 안 입고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내면은 다채롭다.


그러나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을 박차고 나왔듯이, 인간은 낙원만으로는 완성되지 못한다. 정신과 육체가 결합된 모순된 존재인 인간은 낙원을 견디지 못한다. 두 모순된 세상이 결합했을 때 영혼은 넓이와 깊이를 모두 갖게 되어 비로소 성장할 수 있다.


조와 22는 서로의 영혼에서 부족한 부분을 일깨워주는 가장 완벽한 멘토였다.


조는 22의 자포자기와 무의미에 열정과 목적이라는 불씨를 댕겨준다. 22의 초연과 냉정의 미덕은 조가 집착과 좌절에서 벗어나 세상을 넓은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해 준다.


이들은 자신의 견고한 세상이 무너지고, 상대방의 세상을 경험함으로써 자신의 세상을 더 풍요롭게 완성할 수 있게 되었다.




마지막에 제리가 사후 세계의 관리자인 테리를 속여서 조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장면은 사족처럼 보인다.


조는 이제 불꽃의 의미를 터득했다. 그는 의미 없음과 의미 있음이 모두 한 가지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지구에서의 숙제를 마쳤다. 그런데 인간 세상에 또다시 내려간다는 것은 지구의 삶이 최고라는 인간 중심적 착각과 함께 관객을 과도하게 배려하는 해피 엔딩인 것 같아서 아주 조금 아쉬웠다.



* 영화를 보며 곳곳에 깨알같이 숨어있는 한글을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 사후 세계로 들어가는 행렬 중에서 난데없이 들려오는 "내 바지 어디 갔어", "호호만두" 간판, 화면 중앙에 떡하니 놓인 한국어 이름표 등을 보며 뿌듯했다.

08.22의 비밀상자 속 네임텍.png
13.호호만두 간판.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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