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루리부스 | '유년기의 끝'에 도달한 인류의 모습

아서 C. 클라크의 소설 <유년기의 끝>과 애플TV 드라마 <플루리부스>

by 아닛짜

애플 TV+의 드라마 <플루리부스(Pluribus)>는 최근에 본 SF 중 가장 흥미롭고 생각할 거리가 풍성한 작품이다. 아직 시즌 1만 공개된 상태인데도, 이 드라마가 던지는 화두는 그 자체로 완결성을 가질 만큼 묵직하다.


<플루리부스>는 마치 아서 C. 클라크의 걸작 『유년기의 끝』에 대한 현대적 외전처럼 보이기도 한다.

『유년기의 끝』이 외계 존재에 의해 인류가 개조되는 과정을 거쳐 신인류가 탄생하는 지점에서 막을 내린다면, <플루리부스>는 바로 그 신인류의 탄생 이후에서 이야기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두 작품이 그리는 신인류의 모습은 유사하다. 개미나 꿀벌의 사회처럼 인류 전체가 정신적으로 융합되어,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로 거듭난다는 상상력에서 나온다.


목차는 다음과 같다.

1. 인류의 역사가 끝장나는 아주 평화로운 과정
2. 신인류의 탄생, 혹은 집단적 바이러스 감염
3. 진화의 역설과 '무아(無我)'의 깨달음


1. 인류의 역사가 끝장나는 아주 평화로운 과정


『유년기의 끝』은 어느 날 지구의 주요 도시 상공을 뒤덮은 거대한 우주선들의 등장으로 시작된다. 이 압도적인 장면은 영화 <인디펜던스 데이>에 그대로 차용되었다.

인디펜던스데이_상공의 우주선.jpg <인디펜던스 데이>의 거대 우주선 장면은 <유년기의 끝>에서 가져온 것이다.


압도적인 과학 기술과 심오한 지식을 지닌 이들은 자신을 인류의 감독관이라 소개한다. 인류는 저항의 의지조차 상실한 채, 운명의 결정권을 그들의 손에 맡기게 된다. 사람들은 이들을 '오버로드(Overlords)'라고 불렀다.


대중의 예상과 달리 오버로드들은 자비로운 통치자였다. 그들은 강제적 억압 대신 지극히 합리적인 지시를 내린다.


"당신들이 원한다면 서로 죽여도 좋소. 그리고 그것은 당신들과 당신들 자신의 법의 문제요. 하지만 당신들이 음식이나 자기 방어를 위한 것 이외의 목적으로 당신들과 함께 살고 있는 동물을 죽인다면 내가 당신들한테 책임을 물을 거요."

아서 C. 클라크,『유년기의 끝』, 시공사, P79


일례로 스페인의 투우 경기에서 오버로드들은 관객들이 황소가 느끼는 통증을 똑같이 체험하게 함으로써, 지구상에서 투우를 영원히 종식시킨다.


오버로드 통치 50년 만에 지구는 인류가 꿈꾸던 유토피아가 되었다.


전쟁, 기아, 질병, 범죄가 사라지고 생산성이 극대화되어 누구도 생계를 위해 일할 필요가 없는 시대가 도래한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이 시대에는 누구나 자기가 좋아하지 않는 일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카메론의 '터미네이터' 같은 미래가 아니라, '스타트렉'의 미래가 실현된 것이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사회나 문화 현상이 변하는 속도가 늦추어졌다는 점이다.


과학과 스포츠, 예술 등 모든 분야에서 누구나 자기가 원하는 것을 연구할 수 있게 되며, 뛰어난 아마추어들이 범람했다. 그러나 온갖 갈등과 결핍이 사라진 곳에서는 창조적 예술의 종말과 과학의 쇠퇴가 동반되었다.

고도의 AI가 바둑을 평정하자 인간 바둑이 쇠퇴하듯, 누구도 오버로드들이 이미 발견해 놓은 것들을 찾기 위해 평생을 소비하려 하지 않았다.


인류의 지난 투쟁의 역사가 '유년기'였다면, 인류는 이제 '유년기의 끝'에 도달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2. 신인류의 탄생, 혹은 집단적 바이러스 감염


대다수는 유토피아에 만족했으나, 예민한 소수는 뭔지 모를 불안감을 느낀다. 오버로드들의 장기계획이 무엇인지 아무도 몰랐기 때문이다.


오버로드들은 개체로서 진화의 정점에 도달했으나 더 이상의 도약이 불가능해진 종족이었고, 그들은 지구의 아이들을 통해 자신들은 도달할 수 없는 ‘정신 통합체’를 배양하고자 했다.


유토피아의 건설은 신인류를 배양하기 위한 토대일 뿐이며, 구인류는 자연스럽게 멸종될 운명이다.


완벽한 환경에서 태어난 지구의 아이들 중 몇몇은 텔레파시 능력을 가진 돌연변이가 된다. 그 능력은 점차 번져나가며 새로운 아이들은 그들의 부모가 이해할 수 없는 완전히 낯선 존재가 된다.


드라마 <플루리부스>는 신인류의 탄생으로 끝나는 『유년기의 끝』을 이어받아서, 외계 RNA 바이러스로 인해 전 인류의 정신이 하나로 묶인 세상을 그린다.


전 세계에서 단 12명을 제외한 모든 인류는 '하이브 마인드(Hive Mind)'가 된다. 육체는 따로 존재하나 정신은 하나의 거대한 네트워크로 연결된 이 상태를 그들은 '함께함(The Joining)'이라 부른다.

이제 전 세계에는 실질적으로 13명만 존재한다고도 할 수 있다.


하이브 마인드는 단일한 자아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을 '우리(us)'라고 지칭하며, 자신의 독립된 육체를 말할 때는 '이 개체(this individual)'라고 부른다.


주인공 캐럴 스터카(레아 시혼)는 융합되지 못한 12명 중 한 명이다. 염세주의자인 그녀의 눈에 하이브 마인드는 '세뇌된 괴물'이나 '정신 도둑'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부처의 마음처럼 자애롭고 온순하다.


'우리'는 소외된 12명을 진심으로 측은히 여기며, 그들이 친밀감을 느낄 수 있는 개체를 보내 결합을 권유한다. 동성애자인 캐럴에게는 죽은 전 애인과 비슷한 조시아라는 개체가 찾아온다.


조시아는 "우린 캐럴의 경험을 겪어 봤지만, 캐럴은 우리를 겪어보지 못했다."라고 하며, 캐럴이 '우리'에 합류한다면 얼마나 행복할 것인지를 말해준다.


'우리'는 고립된 개체로서 겪었던 불행과 좌절, 두려움은 사라지고, 지극한 행복과 만족감을 느낀다. '행복의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우리'의 세계에서는 '나'와 '너'의 경계가 없기에 범죄와 폭력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내 주먹으로 나를 때릴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우리'는 각 개체가 따로 집을 가질 필요를 느끼지 못하여 커다란 체육관에 모여서 잔다. 전력을 절약할 수도 있으며, 오히려 그 속에서 행복감을 느낀다. 물자는 가장 필요한 곳에 효율적으로 즉시 공급된다.


피부색, 직업, 나이는 무의미해진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비행기를 조종하고, 일곱 살 어린이가 산부인과 전문 지식을 공유한다. 캐럴은 세상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조시아와 대화하면서 구글과 이야기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자아의 소멸이 가져온 이 완벽한 효율과 평화 앞에서, 개체성을 고수하는 캐럴과 마누소스는 오히려 세상의 조화를 깨뜨리는 빌런처럼 보이기도 한다.


고집불통인 캐럴에게 더 폭력적이고 극단적인 까칠이 마누소스 오비에라는 인물이 찾아오면서 다음 시즌의 대결이 예고된다. 그러나 흥미로운 시즌1에 비해 시즌2는 왠지 전형적인 흐름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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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럴은 불안하고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지만, '우리' 중 하나인 조시아는 늘 평온하고 친절하다.




3. 진화의 역설과 '무아(無我)'의 깨달음


인간은 늘 자신을 세상의 중심에 놓고 사유하는 고질병이 있다.


인간과 비교할 수 없는 초월적 능력과 수명을 가지고 있는 신이 인간(특히 여자)을 사랑하고, 인간이 되기를 바란다는 이야기들을 볼 때마다 나는 의문이 생긴다. "아니, 왜?"

뱀파이어, 늑대인간, 구미호 같은 존재들도 진짜 인간이 되고 싶어 할까?


우리가 그토록 강조하는 '인간성', '인간다움'이라는 것이 사실은 진화가 덜 된 미숙함을 포장하는 미사여구는 아닐까?


인류가 무의식의 심연에서 퍼올린 문화, 예술이 하이브 마인드에게 어떤 감흥이 있겠는가.

비교, 경쟁, 그로 인한 시기, 질투가 사라지고, 폭력적 본능이 제거된 마음에서 똑같은 감동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빈부격차가 사라지고 모두가 행복한 사회에서 영화 <기생충>은 결코 탄생할 수 없다.


이 지점에서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멀티 우주가 존재하는 불교의 우주관을 떠올려 본다.


불교의 우주관인 '삼계(三界)'는 인간과 신을 포함한 모든 중생이 사는 곳을 욕계, 색계, 무색계의 세 영역으로 구분한다.


인간이 속한 '욕계(欲界)'는 몸(身)도 다르고 의식(想)도 다른 '신이상이(身異想異)'의 세계다. 반면, '색계 초선천(色界 初禪天)'은 몸은 다르나 의식은 하나인 '신이상일(身異想一)'의 존재들이 사는 곳이다. 하이브 마인드는 바로 이 신이상일의 경지에 해당한다.


신이상이의 존재는 육체와 정신이 모두 칸막이로 구별된 개체들이다. 신이상일의 존재는 서로 다른 아바타를 입고 있지만 모두 같은 정신 환경에 완벽히 몰입해 있는 상태와 비슷하다.


신이상이의 인간이 '거친 욕망'과 '두려움'을 동력으로 문명을 세웠다면, 신이상일의 존재들은 '희열'과 '만족'을 먹고 산다.


하지만 불교적 관점에서 이들 역시 자아(거대 자아)의 굴레에 갇힌 중생일 뿐이다. 고기압이 저기압으로 흐르듯, 이들의 평화 또한 업이 다하면 다시 욕계의 소용돌이로 추락할 운명이다.


<플루리부스>의 하이브 마인드도 여러 가지 한계점이 드러나고 있다.


분노와 폭력은 사라졌지만 동시에 '우리'의 세상은 취약해졌다. 캐럴이 화를 폭발할 때마다 전 세계에서 수억 명의 '우리'가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죽는 어이없는 사태가 일어난다. 그리고 식물을 포함한 모든 것의 살생을 거부하기에 역설적으로 식량 위기가 예견된다.


동물적 본능과 욕구가 그대로 남아있는 몸과 고귀한 정신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작은 나'를 고집하는 캐럴이나, '거대한 우리'로 묶인 하이브 마인드나 자아에 집착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오직 '무아(無我)'의 깨달음만이 이 굴레를 벗어나게 한다.




인간은 끊임없이 진화와 연결을 지향하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유일무이한 '개인성'을 상실할까 봐 전전긍긍한다. AI를 만들며 그 효율을 찬양하면서도, AI가 가져올 '인간 없는 세상'을 두려워한다.


물질적 분배는 기술과 정치로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개체로서의 고통스러운 자유를 누릴 것인가, 전체로서의 평화로운 결합을 택할 것인가"라는 정신적 딜레마는 앞으로도 인류에게 가장 뜨거운 감자로 남을 것이다.


<플루리부스>가 보여준 하이브 마인드의 자비로운 미소는, 어쩌면 인류가 마주할 가장 우아한 종말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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