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인디언 친구, 아밋
현재 나는 인도 델리에 살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NCR(수도권을 일컫는 약어)에서도 델리와 바로 붙어있는 중소 도시에서 일하며 지내고 있다. 작년 초 봄 까지만 하더라도 내가 ‘인도'에 살게 될 줄은 꿈에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인도는 언제나 나의 ‘꿈의 나라'였다. 죽기 전에 한 번 즘 꼭 가보고 싶지만 혼자 가기에는 겁이 나는, 나 또한 여타 다른 한국인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편견'을 이 나라에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인도에 해외 취업으로 간다고 지인들에게 말했을 때 돌아오는 말은 모두 예측 가능한 100% 한정된 범위 내로 정해져 있었다.
“야, 미쳤어? 거길 왜가.”
“여자 혼자서 인도를?”
“절. 대. 가. 지. 마, 위험해.”
“다시 생각해보지 그래?"
“너 거기가 여자에게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몰라?”
하나같이 부정적이며 뜯어말리는 식이었다. 물론 이런 말을 해 주는 그들은 단, 한 번도 인도에 직접 가본 적이 없다. 단지 뉴스에서 나오는 단편적인 이슈들로 인도를 평가하는 것이다. (사실 뉴스는 좋은 이야기보다는 불행한 이야기를 훨씬 크게, 많이 다룬다 - 그 편이 사람들에게 자극적이고 중독적이니까.) 그러나 나의 이런 편견은 나의 첫 인도인 친구 아밋을 만나면서 완전히 바뀌었다.
그는 첫인상부터 굉장히 다소곳하고 젠틀했다. 생각보다 마르고 큰 키에 직사각형 샌님 안경을 쓴 그는 공대생 체크무늬 남방을 애정 했다. 척 보면 꼭 학자 같은 인상을 풍기는데, 또 그게 사실이기도 하여 겉과 속이 매우 일치하는 사람이었다(웃음). 처음에는 내성적인 그의 성격으로 작게 이야기하는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기 위해 온 힘을 귀 기울여 들어야 했다. 그를 데리고 시끄러운 카페라도 가면 아주 힘들어, 그와의 만남은 조용하고 평화로운 곳들을 선택하게 되었다. 알면 알수록, 그는 진국이었다. 남들보다 더 따뜻한 마음과 맑은 영혼을 가졌다. 그렇게 우린 금세 친해졌고 서로에게 있어 인생 전반에 매우 훌륭한 멘토가 되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모르는 것을 가르쳐주는 선생님이었다. 그는 내가 모르는 영적, 내적인 명상 수련 등을 가르쳐주었고, 나는 그가 모르는 한국사회와 현대적인 삶에 대하여 가르쳐주었다. 지금도 그는 나에게 있어 ‘큰 선생님’이자 둘도 없는 ‘절친’이다.
그렇게 나는 아밋으로 인해 ‘인도'라는 곳에 대한 편견이 깨어지고, 180도 생각이 바뀌었다. 이 하늘에서 떨어진 것 같은 샌님이 온 나라는 어떤 곳일까? 라는 생각에 나는 인도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해달라며 아밋을 졸랐다. 들으면 들을수록 인도는 정말 흥미로운 나라였다.
인구 대국 세계 2위이며(그러나 실제적으로 인도인들은 정부가 공식적으로 세지 못하는 비공식적인 인구가 매우 많다며 1위를 주장한다), 땅덩어리가 너무 커서 ‘인도 아대륙'으로 따로 대륙 명칭까지 붙어있다. 그리고 실제로도 인도는 한반도 국토면적의 32.3배로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한다. 그래서인지 자국민 중 해외는 커녕 동쪽 끝 휴양도시 '고아'조차 가보지 못해 꿈만 꾸는 사람들이 천지다. 토지가 넓다는 것은 갈 곳이 그만큼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인도에서는 산부터 사막, 바다까지 모든 자연을 경험하고 즐길 수가 있다. 북쪽으로는 새하얀 히말라야 산맥이, 남쪽으로는 끝 없는 바다가 펼쳐져 있다. 그렇기에 만일 인도 여행을 계획 중이라면 당신의 입맛대로 인도내에서 원하는 여행지를 골라보는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가 있다.
두 번째로는, 다양한 문화와 음식이다. 크게 북쪽과 남쪽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북쪽 사람들은 좀 더 피부색이 밝고, 우리 동북아시아인처럼 생긴 이들도 많이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북쪽으로 중국과 티베트, 네팔 등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인도인들을 외모로만 판단하고, 반갑게 한국어로 "어머, 한국인이세요?"는 삼가주길 바란다. 돌아오는 대답은 힌디어나 영어일 가능성이 다분히 높기 때문이다. 또한 북인도 사람들은 쌀보다 밀을 사용한 짜파티나 난 등의 빵 종류를 주식으로 많이 만들어먹는다.
반면에 남인도 사람들은 확실히 피부색이 어둡고 성향도 좀 차분한 느낌이 있다. 게다가 우리와 비슷하게 쌀로 만든 음식을 주로 선호하여 이들리라 불리는 쌀 빵 등 종류도 많고 해안가라 다양한 해산물도 저렴한 가격에 먹을 수 있다. 심지어 케랄라를 가면 인도 전체에 금지인 소고기가 합법이라 당당하게 음식점에서 시켜먹을 수 도 있다. 개인적으로 쌀이 주식인 우리에게는 남인도 음식이 훨씬 입맛에 맞고 북인도의 강렬한 마살라(대표적인 인도 향신료) 냄새도 덜 하였다. 그래도 오해는 마시라. 대표적인 인도의 향신료 지역으로 하면 단연 1등인 곳이 인도 남부 지역이니 말이다.
음식이 이렇게 다르니 다른 문화적 요소들은 굳이 말 할 필요도 없이 다르다. 지방 언어는 물론 라이프스타일과 각 지역의 자연환경 구성까지 무엇 하나 같은 곳이 없다. 그래서 인도는 구석구석 여행하면 할수록, 같은 나라, 인도임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나라를 여행하는 느낌이 든다. 이 매력에 푹 빠진 여행자들은 인도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계획과 다른 장기여행을 하게 되기 일쑤이다.
세 번째, 서로 다른 종교와 그에 대한 상호존중이 깃들어있다. 인도에서 발생된 4개 종교인 힌두교, 불교, 자이나교, 시크교를 제외하고도 이슬람, 기독교, 조로아스터교, 유대교 등 다양한 외래 종교가 공존하고 있다. 인도의 대다수 사람들은 서로의 종교에 상관하지 않고 존중하며 평화롭게 살아간다. 크리스마스, 라마단(이슬람 최대 명절), 홀리 축제(인도의 대표적인 힌두교 축제)를 전부 쉬는 인도의 공휴일이 그 증명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렇게 다른 종교들이 함께 살아가는 만큼 가끔씩 갈등 또한 붉어진다.
최근에는 히잡을 쓰고 다니는 이슬람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히잡을 쓰지 말라는 둥의 학교 폭력이나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또 다른 지구 반대편에서는 히잡을 의무적으로 써야한다로 갈등을 벌이고 있는데, 그럴 때마다 어떤 관점과 사상을 중심으로 가지고 있느냐가 미치는 영향력에 놀라고, 우리가 사는 지구가 이렇게 넓구나를 다시 한 번 살갗으로 느낄 수 있다.
이 외에도 인도는 양파같이 까면 깔수록 매일 새로운 면모를 발견할 수 있는 곳이다. 그렇게 점차 인도에 대한 흥미가 커지던 찰나였다. 우연히 인도로 해외취업을 희망하는 자들을 모집하고 교육하는 공공기관의 공고를 보았다. 마침 영어공부도 열심히 하던 중이었고, 취업 관련 지원 부분도 상당히 흥미로워 단번에 마음이 사로잡혔다. 왜인지 지금 아니면 인도를 가 볼 일이 없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삶에 있어 크게 배울 점이 많을 듯했다. 인도 이전의 해외생활 경험상, 나는 나 스스로를 새로운 환경, 세계로 몰아넣으면 안팎으로 크게 성장하고 비전을 넓히게 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인도는 엄청난 땅덩어리에, 영어를 공용어로 쓰는 국가이니 영어실력 향상에는 물론, 또 다른 생활의 환경에 적응해나가면서 스스로를 더욱 단단하고 강하게 성장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무궁무진해 보였다.
"아밋, 나 인도에 갈 것 같아."
"정말? 넌 분명히 거기서도 잘 지낼 거야! 네가 인도를 경험하게 되어서 기뻐."
“나 그런데 사실, 조금은 무섭고 떨리기도 해.”
“걱정하지 마. 넌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강한 사람인걸?”
아밋은 전적으로 기뻐해 주고 나를 지원해주었다. 그렇게 결심이 섰다. 내가 경험할 국가 출신의 친구가 내 최고의 친구라는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
바로 해당 프로그램에 지원을 했고, 순조롭게 서류와 면접을 모두 통과해 최종 합격하였다. 그 후 우리나라에서 이름만 들으면 다들 알 만한 큰 대기업의 원하던 부서에까지 취직이 결정 나면서 생각보다 빠르게 모든 절차가 끝났다. 옆에서 함께 내 영어실력을 키워주고 지지해준 아밋이 아니었다면, 난 아마 지금쯤 인도와는 전혀 연관 없는 다른 삶을 살고 있었을 것이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결론적으로 현재 나의 인도 생활 결정에 큰 계기를 준 것은 아밋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