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타샤 킴 Jun 03. 2022

파도를 타는 이유 2

우리는 자연을 정복할 수는 없다. 그러나 품을 수는 있다.

 

우리 살아있는 모든 생물은 자연에 속해 있다. 그럼으로써 자연과 떨어져 살 수 없고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받거나 힘든 일이 있을 때 자연을 찾는다. 그리고 우린 그걸 일명 '힐링'이라고 일컫는다. 자연이 가진 높은 고주파수 에너지로부터 치유와 정화의 에너지를 듬뿍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힐링'을 위해 이번에 찾은 곳이 인도에서도 유명한 남부 휴양도시로 손꼽히는 케랄라였다. 케랄라를 꼽은 이유는 사실 딱 하나였다.  


'바다'.

바다를 사랑하기도 하거니와 못 본지 너무 오래되어 '바다 앓이'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제일 중요한 여행의 목적은 심신의 정화로, 오롯한 '나 자신'을 깨우는 것이었다.


“케랄라에 가면 꼭 서핑을 해보세요. 정말 행복해서 델리로 돌아오고 싶지 않았어요.”


퇴사 전이던 직장동료에게 인도 여행지 추천을 받으며 들었던 곳, 케랄라. 심지어 서핑하기에 딱 좋은 바다를 가졌다니 이것 더할 나위 없이 내가 꼭 가야만 하는 곳이었다.


나는 ‘물’이면 사족을 못 쓴다. 어릴 적부터 무조건 산보다는 바다였다. 파도의 파형을 있는 그대로 감상하는 것, 특히 물 속에 몸을 완전하게 맡기고 부유하며 하늘을 바라보는 것은 유유자적 그 자체. 내가 가장 사랑하는 평화다. 바다든 수영장이든 파란 하늘을 마주 보고는 있는 상태로 하나의 연꽃처럼 둥둥 수면 위를 떠다니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지금 지구에 있는 것인지 우주에 있는 것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그 순간만큼은 그 어떠한 잡생각도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온전히 그 순간, 현재의 나에게 집중하게 된다.


그런 내게 다시 한 번 찾아온 수상스포츠, 서핑을 탈 기회였다.


바다!


 아! 행복에 겨운 탄식이 절로 나왔다. 이 얼마나 오랜만인가. 그토록 그리고 그리던 바다. 인도에 살기 시작하면서 제대로 된 바다를 한 번도 볼 수 없었다. 인도 아대륙에서도 북쪽 내륙 도시인 델리에 살고 있었으니 그럴 수밖에. 바다를 보려면 최소한 2~3시간은 비행기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가야 했다.



드디어 그 유명한 '바칼라' 해변에 도착했다.

철썩이며 모래사장을 때리는 파도소리. 연인들과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웃음소리. 평온한 표정으로 썬베드에 앉아 그런 바다를 바라보는 외국인 관광객들. 머리칼을 살랑살랑 간지럽히는 시원하면서도 짠맛이 느껴지는 그런 기분 좋은 바람, 우거진 야자나무 그늘 밑에서 마시는 자연산 코코넛 이 모든 것들이 너무나 완벽한 ‘천국’처럼 느껴졌다.


옹기종기 인도식 아이스케키 쿨피를 먹는 아이들

 케랄라에서의 서핑은 이번이 세 번째였다. 첫 번째는 강릉에서 제대로 기초인 패들링부터 배우면서 아주 잔잔한 파도 덕에 보드에까지 올라설 수 있었다. 그렇게 서핑에 대한 맛보기 대성공으로 용기가 충만해졌다.

두 번째는 발리에서였다. 생초짜 레벨에 가이드도 없이 패기 있게 무작정 보드를 빌려 중급자들이나 타는 파도가 넘실대는 곳에 몸을 던졌다.  그리고 그 당시 다시는 인생에 없을 듯한 정말 놀랍고 경이로운 자연의 신비를 맛봤다. 


케랄라의 유명 휴양지인 바칼라 바닷가는 그렇게 맑지도 더럽지도 않은 남해 바다였다.

파도는 조금 강한 편이었다. 멀리서 봤을 때는 잔잔해 보였으나 실제 가까이서 마주 보니 꽤나 억셌다. 뱃속까지 깊게 심호흡 후. 마지막 서핑을 한지 1년이 넘은 몸을 깨우기 위해 일단, 무작정 바다로 돌진했다. 이번에 만난 서핑 강사분들은 강릉에서 배우던 것과는 아주 딴판이었다. 강릉 강사분들은 아기 다루듯 아주 조심스럽게 알파벳 a부터 가르쳤다면, 여기 바칼라 서핑 강사분들은 얄짤이 없었다. 심지어 아예 서핑 경험이 전무한 생초보 동윤이에게 패들링조차 가르쳐주지 않고 나와 함께 무조건 보드에서 일어나는 법만 열댓 번 시켰다. 그게 바다에 입수하기 전 우리에게 가르쳐준 테크닉의 전부였다.


두 명의 강사는 우리에게 각각 한 명씩 붙었다. 동윤이의 강사는 '아꾸', 나의 강사는 '우찜'이었다. 그래서 나는 속으로 그들을 합해 장난스레 '아구찜'이라고 불렀다.

“적당한 파도를 잡을 수 있는 거리까지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겁니다. 그리고 파도가 올 때 내가 뒤에서 보드를 밀어줄 거예요. 내가 UP! 하고 외치면 바로 보드에서 일어나세요.”라고 우찜이 일러주었다.

“알겠어요.”

라고 자신 있게 대답했지만, 막상 철썩이는 성난 파도들을 정면으로 맞보고 있자니 덜컥 겁이 올라옴을 느꼈다. 그리고 다시 다독였다. ‘괜찮아, 괜찮아. 한두 번 파도와 대면해본 것도 아니잖아? 저 파도들은 너의 친구들이야. 너를 시원하고 멋진 곳으로 데려가 줄 자연이야.’ 침을 꿀꺽 삼켰다.


첫 번째 파도가 왔다. 보기 좋게 짠 물 아래 모래 속에서 뒹굴었다. 두 번째로 빠질 때는 물 안에서만  뒹굴도록 노력했다(모래 속에서 뒹굴면 다치고 까지고 멍들고 ㅡ 한 마디로 위험하다). 세 번째, 네 번째 떨리는 몸으로 보드에서 엉거주춤 일어섰으나 중심을 잃고 미끄러졌다.

“푸하!”

숨이 계속해서 가빠졌다.


얼마나 많은  싸대기를 맞았는지   조차 없었다. 다행히 나는 물속에서 굴러도, 파도가 정면으로  얼굴을 때려도 코에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이것은 어떤 수상스포츠를 하더라중요한 포인트였다. 사람은 코에 물이 들어가는  순간, 숨이 막혀 순간적으로 패닉에 빠지기 때문이다. 이건 피할  없는 수상스포츠의 숙명이기도 하다. 파도를 타기 위해서는 파도를 정면으로 맞이해야 했다. 당연히 물을 먹을 수밖에 없다! 극복하는 방법은 단순하다. 두려움을 느낄수록 파도를 더욱 가까이 마주하며  것으로,  품으로 만드는 것이다.


“여긴 너무 파도가 강하니, 옆 쪽으로 옮깁시다.”

바칼라 토박이로 25년간 서핑만 해 온 강사들이라 신뢰가 갔다. 그들의 새까맣게 탄 몸이 그들의 경력증명서였다. 200여 미터를 모래사장을 따라 걸었다. 그렇게 곱지도 거칠지도 않은 모래였다. 간간히 철분에 의해 생긴 검은 모래가 그림을 그려놓은 것이 아름다웠다. 넘실대는 새 파도들은 장소를 옮기기 전 보다 조오금은 더 차분해 보였다.

“어서 들어오세요! 고고고”

한 숨 돌리자마자 우찜은 서둘러 날 바다로 불렀다. 헉헉 숨이 찼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정해진 목표는 딱 하나였다. ‘딱 세 번, 보드에 올라서서 제대로 파도를 타기.' 어느새 나는 보드 위에서 자연에 대한 경이로움과 친근함, 그리고 도전의식을 강하게 느끼고 있었다. 파도가 내 품으로 끌어당겨지고 있었다. 이제는 어떤 파도가 크게 다가올지, 작게 다가올지 구분도 가능했다.


“좋은 파도가 오고 있어요, 준비!”

서둘러 보드를 뒤로 돌려 몸이 떨어질세라 두 손 꽉 보드를 잡는다. 파도와 나의 긴장감은 팽팽했다.


“UP~!!”

재빠르게 손과 다리를 뻗어 중심을 잡으며 일어섰다. 섰다! 드디어 보드 위에 두 다리로 지탱하고 선 것이다. 파도가 나를 밀어다 해안가로 데려다주는 것이 느껴졌다.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느껴졌다.

그 순간 다시 한 번, 자연이 나를 품어주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야호, 해냈어요!" 다 함께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강사들과 축하의 하이파이브를 했다. 한 번 성공하고 나니 다시 일어서는 것은 매우 쉬웠다. 그저 온 신경을 파도를 타는 데에만 집중했다. 점점 성공하는 확률이 높아지면서 언제즘 보드에서 내려야 하는지, 파도를 타는 타이밍은 언제인지를 몸소 배우게 되었다. '아구찜'의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몸으로 부딪혀라, 인생은 실전이다.'강습 법이 기가 막히게 내게 먹힌 것이다. 그렇게 나는 성공적이게 이 날의 목표 '세 번, 제대로 파도타기'를 달성했다.





한 번도 파도를 타 본 적 없는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파도를 타 본 사람은 없다.

한 번 파도를 타 본 사람만이 그 상쾌함과 짜릿함을 알고 계속 찾게 되기 때문이다. 서핑은 자연에 대항하는 스포츠가 아니다. 그런 마음을 가질수록 처참하게 파도에게 몰매를 맞을 것이다. 파도를 탄다는 것은 자연에게, 파도에게 몸의 흐름을 맡기는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굉장히 위험한 스포츠이다. 별다른 안전장치 없이 말 그대로, 내 몸 전체를 정체모를 파도에게 온전히 던져 맡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어떤 마음을 가지고 파도를 타느냐는 굉장히 중요하다. 파도에게 겁을 먹고 보드에서 떨어지면?, 실패하면 어떡하지?라는 부정적인 에너지를 내뿜는 순간 파도는 그 에너지 그대로 반응해 당신을 떨어트릴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파도에게 친근함을 가지고 우리 같이 즐겁게 어울려보자!라는 행복과 긍정이 가득한 에너지로 접근하면 파도 또한 당신을 포용으로 따뜻하게 맞아줄 것이다.  

또한 파도를 타면서 나는 용기와 끈기가 강해지는 것을 느낀다. 조용하고 고요하게, 때로는 강렬하게 파도는 나를 훈련시키고 성장시킨다. 그 순간마다 나는 온전하고 강인한 자연스러움을 느낀다.                              우리는 자연을 정복할 수는 없다. 그러나 품을 수는 있다. 이 모든 것이 나를 자꾸만 서핑보드를 찾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


이 단순하고 자연스러운 원리를 나는 파도를 타면서 배웠다. 여러분도 알게 되길 바란다. 커다란 파도와 한바탕 놀고 난 후 느껴지는 마음의 단단함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