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비가역적 변화
많은 사람들을 만나왔다.
그만큼 관계도 다양하게 또 넓게 알게 모르게 맺어가면서 마음도 많이 주었던 것 같다.
창문 사이로
따뜻한 햇빛과 꽃가루와 나른한 비가 왔다 나가고,
뜨거운 열기와 습한 공기, 비바람이 왔다 나가고,
선선한 바람과 파랗고 높은 하늘이 왔다 나가고,
건조한 공기와 포근한 눈이 내리다 왔다 나가고,
다시 따뜻한 햇빛이 들어오기를 얼마나 반복했을까
문을 처음 잠가버렸을 땐 걱정하는 듯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많은 전화와 편지가 와 있기도 했다. 잠시나마 용기를 내어 반쯤 문을 열어보았을 땐 진심으로 걱정해 주듯 이야기를 나누어준 사람도 있었다.
그 용기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기대하며 다시 노력해 봤지만 깊게 파인 흉터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듯 한 번 깨져버린 신뢰는 원래의 순수함을 찾아갈 수 없음을 깨닫고 이미 햇빛에 한 번 색이 바랜 사진처럼 나는 더 흐려져만 갔다.
한동안은 밀려왔던 잠을 청해 하루의 절반 이상 꿈속에서 보내버린 시간도 있었다. 마음으로는 나를 위해서라도 다시 열심히 살아봐야지 한 다짐이 무색하게 멍하게 있던 시간도 있었다.
때로는 문을 잠그지 않았다면 지금 난 하늘을 보고 있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2. 문을 닫기 전 그날
평일은 새벽 05시에 무거운 몸을 가누고 일어나 06시 10분에는 첫 번째 일을 위해 출근을 했다. 07시에는 교육을 듣고 끝나면 08시에 다시 지하철을 타고 09시부터 16시까지 두 번째 일을 시작하고, 끝나면 다시 한 시간을 이동해서 18시까지 밀려있던 첫 번째 일들을 처리하고 이후에는 회의하고 뛰어다니다 21시에는 마감을 하고 이후에 23시부터 추가 회의를 하다 24시가 넘어 터덜터덜 집에 오면 그때부터 밀려있던 일들을 다시 정리하고 자료를 만들다 지쳐 책상에서 잠들었던 날들도, 눌려있던 나에게 폭식을, 유튜브를 허락하다 02시 넘어 잠들었던 날들이 많았다. 그러다 다음날 아침에 늦게 일어나 10분 늦은 날들은 마음이 없는 사람, 게으르고 나태한 사람이 되는 날이었다.
주말에는 첫 번째 일들에만 몰두하며 마찬가지로 보통 09시부터 02시까지 일정을 보냈고, 365일 중 명절을 제외한 모든 날들은 일을 하는 날이었다.
그렇게 매일매일 하루 종일 일을 하는데 분명한 건 어제보다 오늘이 더 안 좋아지고 있는 현실 가운데 답이 없는 회의를 하는 날이면 당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창문을 깨고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이 들기도 했다. 위에서는 당장의 실적이 중요하지 않다고, 각자가 성장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하지만 그 의미조차 찾지 못한 날에는 그저 열심히 뛰지 못했다는 말로 포장해 버리고 겸손한 척 믿지 못했다는 것을 마주 보고 싶지 않았다.
이상하게 그럼에도 더 열심히 하는 사람들은 수두룩 빽빽했으니까, 동시에 모두가 이 고통에 대해 공감하고 누구나 술레가 될 수 있음을 알지만 도둑은 되기 싫으니 아량 넓은 경찰인 척, 불쌍한 척 서로 알게 모르게 등급을 매기며 바라보기를 반복하다 어느 날은 숨을 쉬는 것조차 허락받아야 함을 깨닫게 되었다.
3. 일렁
눈앞의 타일이 일렁이며 흔들리기를 반복하고 들어오는 숨은 많은데 나가는 숨은 적어질 때 나는 밝은 낮에도 밤을 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멀쩡한 척 사람들을 만나려고 노력했었다. 내 상태가 어떤지 본능적으로 알았지만 애써 무시한 흔적이자 속죄하고 싶었던 발버둥이었다. 밤이 찾아오기 전, 이제는 내가 술레가 되기 전 오만했던 나는 자라지 못하는 이들을 보며 똑같이 불쌍한 눈을 하며 속으로는 답답해했고, 그저 노력하지 않고 마음이 없는 것이라고 매도했었으니까.
내가 그러했듯 누군가는 나를 보며 그저 다른 사람들도 넘어져 있으니 똑같아지고 싶어 쇼하는 것이라고 치부하기도 했고, 지금 때가 어떤 때인데 359일이 성수기인 이곳에서 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너마저도 그러냐 불쌍한 척 답답해하며 언제까지 누워있을 거냐 다그치기도 했다.
아침에 못 일어나는 날들이 많아졌다. 10분 늦고 게으른 사람으로 불리는 것이 싫어서 아예 그 자리에 가고 싶지 않았다. 숨을 쉬기 위해 아예 문을 닫아버렸다. 그렇게 3시간, 8시간, 하루, 이틀, 일주일이 지나면서 문 안에 자물쇠를 채우고 열쇠는 쓰레기통 가장 밑바닥에 버려두었다.
그렇게 방 안에 있으면 마냥 편안하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자물쇠가 왜 채워졌는지 떠올리고 나면 다시 아늑하게 느껴기도 하면서 다시 불안하기를 반복했다.
4. 비수기에서 성수기까지
처음부터 359일을 성수기처럼 살았던 건 아니었다. 적어도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 전까지는 비수기였던 시간이 더 길었기에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마음을 쏟았던 만큼 인정받는 것은 숨겨진 내 가치를 드디어 알아주는 것 같아 너무 달콤했다.
인정받을수록 내가 마음이 있고 가치가 있다는 것을 더 증명하고 싶었다. 첫 번째 일에만 몰두하며 원래의 모습들을 죽여나갈수록 더 깊숙이 올라갈 수 있었고, 바람이 점점 세졌지만 버티다 보니 대리가 되었다.
같이 시작했던 동기들보다 비교적 빠른 시간에 아랫사람이 생기면서 책임이 따르기 시작했다. 늘 머리는 오버클럭이 되어 있었고 150% 이상의 노력을 하며 처음에는 내가 하는 일과 그들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앞서 언급했던 일정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집에 오면 무거운 가면이 벗어지면서 기절하는 날들이 늘어갔지만, 마음 한편에는 같이하는 이들도 노력해 주었고 같은 마음임을 믿었기에, 자라는 시기가 다른 것뿐이니까 기다려주는 마음으로 인내했다. 감사하게도 그 인내의 보답을 빠르게 받기도 했었다. 이때까지는 몸이 힘들어도 새롭게 배우는 것들이 더 많았으니 살아있다고 느꼈다.
5. 반려
그러면서 실적을 인정받아 다른 팀에 가기도 했었는데 그곳에서는 마음이 맞지 않아 따라주지 않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늘 아프다고 집에서 나오지 않는 사람을 만나 이해하고 설득해야 했고,
이제는 그만두겠다고 도망가겠다 하는 사람을 다시 붙잡아야 했고,
할 줄 아는 게 없어 울기만 하는 어린 사람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어야 했고,
이런 게 다 무슨 의미가 있냐고 시니컬한 사람에게 희망을 이야기해야 했고,
열심히 하는 척만 하고 늘 한 발 뒤에 있는 사람에게는 기다림과 믿어주는 것이 필요했다.
도와줄 사람 없이 팔다리가 모두 잘려나간 기분이었지만 그렇다고 목표가 하향되는 일은 없었기에 몸으로 기어서라도 뛰어다녀야만 했다.
위에서는 왜 시키는 일을 안 하냐고 아랫사람에게 맡기고 운영을 해야 한다 훈계를 주었다. 그러면서 자기 때는 어땠는지 지금의 목표는 목표도 아니라면서 더 힘들었던 이야기들을 해주는데 전혀 위로도, 귀감도 되지 않았다. 그리고 저게 내 미래인가 생각하니 일렁임이 심해지는 것 같았다.
위에서는 나오지 않는 실적에 대한 점검과 압박, 아래에서는 불만 어린 목소리들이 흘러나오면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있지만 늘 혼자 있는 기분이었다. 의미를 찾기 위해 시작했던 일에서 어느덧 나도 눈앞의 목표만 바라보고 있었다.
책임이 따르면서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부족함이 드러날수록 인정해 가는 연습을 해가야 했고, 점점 사랑했던 마음은 억울함으로 변해갔다.
첫 번째 일에 몰두하기 위해 모아두었던 돈도 점점 떨어져 갔고, 일렁임이 너무 심해져 고심 끝에 사직서를 냈지만 반려되었다. 내가 하는 일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는 이유였다. 3번의 면담 끝에 결국 다시 일을 했지만 어쩌면 나의 마음은 이때부터 계속 멀어져 가면서 나와 마음이 맞지 않았던 사람의 모습처럼 되어갔다. 솔직하게 억울했던 이유는 사실 나의 마음도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6. 좌천
그래도 일해왔던 실력을 인정받아서였는지, 아직은 내가 필요하다는 말과 함께 관리부서에서 기능부서로 이동하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바빴던 메인부서로 잠시 이동되었다가 다시 생긴 일렁임으로 사직서를 내고 반려되기를 반복했고 결국 사이드부서로 이동되어 필드에서 뛰기보다는 이제는 데이터를 분석하는 일들과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들을 했었다.
사이드부서에서 생활은 꽤 잘 맞았다. 암묵적으로 나와 같이 떨어진 사람들이 회복하는 곳이었기에 빡빡했던 조직 생활 중 그나마 인간미가 있는 곳이었다. 사람도 적게 만나는 만큼 랩실에서 혼자만의 시간이 보장되면서 다시 의미를 찾아갈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생긴 시간만큼 두 번째 일을 시작하면서 돈도 다시 모아갈 수 있었다.
사이드부서에서 어느 정도 회복이 되어 일렁임이 사라졌다 생각이 들 때쯤 하반기 프로젝트를 준비할 TF팀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동시에 다시 메인부서로 돌아와 겸직을 하게 되었다. 사실 그 프로젝트는 이윤보다도 사내 인재 양성의 주초점이 되어 있는 곳이었다. 나는 이 프로젝트가 끝나면 연구소로 갈 것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TF팀 프로젝트가 끝나고 나서 나는 세 번째 사직서를 던지고 방문을 굳게 닫아두었다.
7. 쉿
나의 속죄는 나의 망가짐으로 완성되었다. 마음이 완전히 떠나고 나서야 솔직했던 나의 마음을 온전히 마주하며, 그동안 지나갔던 사람들의 마음이 읽히기 시작했다.
세 번이나 반복된 탓인지 가끔 스팸처럼 오는 업무협조와 관련한 연락을 제외하고 더 이상 편지도, 전화도 오지 않았다. 돌아보니 진심이라 생각했던 것들마저도 사실은 업무적 관계였을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는데 내가 너무 많은 마음을 주었구나 싶었다. 우리 관계는 딱 그 정도였구나 실감하게 될수록 그동안 보내왔던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악몽에서 깨어나듯 잊혀갔다.
때로는 이렇게까지 평안해도 되는 걸까 어색함을 포함한 불안함이 반복되기도 했고, 누군가의 승진소식과 내 자리를 대체한 수많은 이야기들과 조직의 변동 소식들, 그리고 여전히 답이 없는 회의와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소식들이 들려온다. 드디어 사직서가 수리되었나 보다. 지금은 두 번째 일에만 몰두하고 있다. 그곳에서는 직급도 없이 조용히 숨만 붙이고 있다.
8. 의미
일상 속에서 잃어버렸던 것들에 대해 다시 하나씩 찾아가고 있다.
아침에 편히 일어나 출근해 본 게 얼마만인지
퇴근 이후 집에서 따뜻한 밥을 먹어본 게 얼마만인지
주말과 공휴일은 쉬는 날인 것을 알게 된 게 얼마만인지
다음날 걱정 없이 술 한 잔에 알딸딸한 몽롱함을 느껴본 게 얼마만인지
마음 편히 12시 전에 기절이 아닌 수면을 취한 게 얼마만인지
가족들과 대화를 해본 게 얼마만인지
당연했던 것들이 나에게는 모두 보상과 같이 느껴졌다. 퇴직금으로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다. 이제는 퇴직금을 바탕으로 의미를 찾아가고자 한다. 작은 소리에도 귀 기울일 때 비로소 숨소리를 들을 수 있음을 기억하자. "나는 여기 살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