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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봉수 Oct 09. 2022

<1984> 지식인과 노동자, 희망과 좌절

<1984> 조지 오웰, 청목, 1999


1. 대형 (Big Brother)



<1984>의 주인공 윈스턴은 각종 기록속에 나오는 기록들을 “현재”의 시각에서 수정하는 역할을 하는 하급 관리다. 윈스턴은 같은 “진리성”에 근무하는 젊은 여자인 줄리아와 사랑에 빠진다. 줄리아와 윈스턴은 둘 사이의 사랑을 통해 오세아니아 (현재 국가)를 지배하는 영국사회주의당 (INGSOC)의 강령이나 정책을 거부하다 발각되어 고문을 당하며, 최종적으로는 자신들의 사랑마저 배신한다. 그리고 공포와 고문에 굴복한 주인공은 마음속까지 “순결”해진 상태로 “대형(Big Brother)을 완전히 사랑하게” 된 상태에서 죽음을 맞는다.







"세계 3대 디스토피아 소설" (네이버 선정?)이라고 불리는 <1984>에서 흔히 주목되는 것은 아무래도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의 보고”라고 불리는 여러가지 아이디어들일 것이다. 인간의 감정을 완전히 거세하고, 인간성이 소멸해나가는 과정은 이후 수많은 영화 등에서 그대로 반복된다. 사실 텔레스코프, 헬리콥터, 감시체계 등 여러가지 장치들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이들이 인간과 세계를 완전한 감시상태에 몰아넣고, 인간성이 완전히 사라지는데까지 이르게 한다는 상상력이 충격을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라는 표현으로 집약되는 집단적 과거의 조작, 그리고 신어 (新語 NewSpeak), 이중사고 (Double Think)로 이어지는 세계관은 그 구성이나 작동 원리면에서 인간의 사고가 어떻게 조작되는지 상세하게 보여주고 있으며, 현재까지도 미디어를 통한 조작과 동원 등에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진실인가"를 넘어"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사실인가" 혹은 "그 사실이 존재하기는 했었는가"라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 것도 믿을 수 없고 아무 것도 확신할 수 없는 상태.




2. 줄리아 - 육체



다시 <1984>을 읽으면서 새롭게 눈에 띄인 부분은 “줄리아”였다. 줄리아는 나이들고 병약한 육체의 윈스턴과 대별되는 젊고 건강한 육체를 가진 주인공 윈스턴의 연인으로, 당에게 심정적 육체적으로 반항하지만 결국엔 당에게 굴복하고 윈스턴을 배반하는 인물 (윈스턴도 배반한다).






글로 생각으로 당에 대한 의구심과 부당함에 대한 반대를 발전시켜나가는 윈스턴과 달리, 육체적이고 감정적인 부분을 제외한 면에서의 줄리아는 당이 의도하는대로 끌려가고 있을 뿐이다. 사실에 대한 왜곡과 날조를 통한 기억의 조작에도 정의나 정치체제에 대한 비판에도 거의 무관심한 듯 보이는 줄리아는 눈앞의 삶에 집중할 수 밖에 없는 노동자 계급을 표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용당하고 착취당하고 세뇌당하고 있면서도 그 작동원리나 근본 시스템에 대한 저항을 생각하지 못하는 줄리아. 윈스턴은 자신이 발견한 사실과 선언문 등을 통해 불합리함과 시스템의 문제에 대해 설명하지만 줄리아는 그에 대해선 관심을 보이기지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저 코를 골며 잘 뿐이다.



주인공 윈스턴이 줄리아를 보는 시각은 어느 정도 이중적이라 할 수 있는데, 전체적으로 윈스턴은 줄리아 속에서 "희망”을 느끼지만, 동시에 줄리아의 무지성적 태도에 한계를 느끼기도 한다. 줄리아는 “어떤 점에서 윈스턴보다 훨씬 예민하고 당의 선전에 세뇌되지 않는 편”(p.170)이지만, “지혜롭지 않으”며 그녀가 당에 대해 반대하는 것은 논리적이지도 체계적이지도 본질적이지도 않다. 아이러니하게도 윈스턴은 그런 그녀를 사랑한다. 윈스턴은 줄리아와 관계를 이어나가면서 "활력"을 얻게되고, 건강을 회복해나간다. 그리고 최후의 순간, 줄리아에 대한 사랑은 윈스턴에게 남는 마지막 저항의 보루가 된다.




“그는 혁명의 세계 속에서 성장하여 토끼가 개를 미워하듯 그저 회피하기만 하면서 그 권력에 반항할 기색은 조금도 없이 당을 하늘처럼 딴 생각없이 믿기만 하는, 그녀와 같은 사람들이 젊은 세대에 얼마나 많을까 생각해 보았다. (p.146)




한편으로 줄리아를 노동자 계급을 대표하는 인물로 생각해본다면 (작품안에서 줄리아는 프롤레타리아 (Proletarier 무산계급)의 줄임말이 분명할 “프롤”(Prole)”이라는 용어로 혹은 "노동자"로 불리는 계급이 아니다), 윈스턴이 줄리아에게 사랑에 빠지는 장면은, 소설에서 자주 반복되었던 "노동자가 희망이다"라는 문구와 연결이 된다. 윈스턴처럼 논리적으로 사실적으로 판단하지는 못하지만 분명 줄리아도 현재의 세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고" 그에 대해 "반대"를 하고 있다. 실제로 “노동자가 희망”이라는 표현은 <1984>에서 가장 자주 반복된 문구 중 하나로, 아마도 노동자의 "육체적인 힘", "정열" 등을 표상하는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인간의 사랑뿐 아니라 동물적인 본능, 무차별적인 단순한 욕망, 이것이 당을 파괴해 버릴 수 있는 힘이다” (p.140)



“오늘날엔 순수한 사랑도, 순수한 욕망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무엇이든 공포와 증오로 뒤섞이기 때문에 어떤 감정이든 순수할 수가 없다. 포옹은 전쟁이었고 절정은 승리다. 그것은 당에 일격을 가하는 것이요, 정치적 행위인 것이다.” (p.141)




3. 마지막 인간



혁명적인 육체. 생명과 역동성이 느껴지는 힘. 하지만 동시에 주인공 윈스턴은 노동자의 혁명은 불가능하다라고 여러 번 반복해 말한다. 그저 잠재적인 힘으로서의 역동성은 언젠가 생명을 되찾아 세계를 재생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지만, 딱 거기까지일 뿐이다.



노동자들은 아직은 이런 상태 속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당이나 나라, 사상에 충성할 필요가 없고 서로의 인간에 충성한다. 그는 비로소 노동자를 경멸할 수 없고 언젠가 생명을 되찾아 세계를 재생시킬 수 있는 잠재적인 힘으로 보기에 이르렀다. 노동자들도 인간이다. 내부까지 굳어 있지는 않다.”(p.183)



“노동자들을 두려워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들 멋대로 놔두어라. 그러면 그들은 세대에서 세대로, 세기에서 세기에로 쉬지않고 일하고 먹고 죽을 것이며, 반란을 일으킬 충동은 물론, 세상이 개혁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식할 능력도 없다. 산업기술의 발달로 그들을 더욱 교육시켜야 할 필요가 있을 때만이 그들은 위험하다.” (p.229)







줄리아 (노동자)는 육체적이다. 그녀는 젊고, 억세고, 부드러운 허리를 가지고 있고, 섹스를 하고, 전복을 기대하고, 삶을 기대한다. 그에 반해 윈스턴은 죽음을 생각하고 글을 쓰고 과거를 기억을 하고 인간성을 기대한다. 삶은 육체에 놓여있다. 육체는 노동자의 것이며, 노동자는 힘을 갖고 있다. 믿을 것은 육체 뿐이고, 그래서 노동자는 희망이다. 하지만 육체는 언제나 배반하며, 노동자의 혁명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그리고, 그렇게 윈스턴은 결국 패배한다. 윈스턴은 노동자로 태어나 노동자로 자각을 했고, 삶에서 태어나 죽음을 함께 생각하던 “마지막 인간”이다. 인간이었다. 줄리아와 함께 하던 시기에 윈스턴은 살이 붙는다. 육체는 삶이고 삶은 살이다. 하지만 마지막 인간으로서의 윈스턴은 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오물과도 같은 모습이다.



때문에 윈스턴은 “순결”하게 정화되어야 했다. 그는 노동자였고 (줄리아도 노동자다) “산업기술의 발달로” 교육을 받아야 했기 때문에 위험한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빅브라더 (대형)은 훨씬더 교묘하기 진화했다. “옛날 전제군주의 명령은 <너희들은 이걸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고 전제주의의 명령은 <너희들은 이걸 하라>는 것이었지만 우리의 명령은 <너희들은 이렇게 돼 있다>"(p.281)는 것이다. 이제 사회는 인간의 존재를 증명한다.



윈스턴은 결국 육체에 굴복한다. 두려움과 공포에, 고문에 굴복한다. 노동자는 이번에도 역시 실패했다. 줄리아의 허리는 더 이상 부드럽지 않고 딱딱하다. 윈스턴 역시 “순결”하게 정화되었다. 그는 텅 비었고, 당의 것으로 채워졌다.



“모든 것은 끝났다. 투쟁은 끝났다. 그는 자신에 대한 승리를 얻은 것이다. 그는 대형을 사랑했다.” (p.330)




4. 희망




조지 오웰은 인도에서 태어난 영국인으로 식민지와 제국주의, 그리고 파시즘과 공산주의, 자본주의 등의 극단적인 면이 표출되어 인간이 사라져가는 세상을 말그대로 “살아가다” 스러져간 지식인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다. 왕립 장학생으로 뽑혀 최고의 명문이라 불리는 이튼 컬리지에서 공부를 하기까지 했던 저자. 식민지 인도에서 태어나, 다시 식민지 인도의 제국 경찰로 복무했고, 제국주의에 맞서 스페인 내전에 참전해 공산주의자로서의 삶을 살았던, 그리고 다시 제국주의의 본산이자 자본주의의 극단, 전체주의 (나치즘)과 싸우면서도 여전히 다른 전체주의 (스탈린주의)와 전쟁 당사자로서의 전체주의적인 분위기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세계의 모습 속에서 저자는 어떤 꿈을 꾸고 어떻게 좌절해나갔던가.



줄리아 (노동자)는 육체적이다. 그녀는 젊고, 억세고, 부드러운 허리를 가지고 있고, 섹스를 하고, 전복을 기대하고, 삶을 기대한다. 삶은 육체에 놓여있다. 육체는 노동자의 것이며, 노동자는 세계를 재생시킬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믿을 것은 육체 뿐이고, 그래서 노동자는 희망이다. 하지만 육체는 언제나 배반하며, 노동자의 혁명은 결코 성공한 적이 없다. 모든 투쟁은 끝났고, 그는 대형을 사랑하며 패배했다. 노동자는 언젠가 생명을 되찾아 세계를 재생시킬 수 있는 잠재적인 힘이며 인간이다. 그래서 여전히 노동자는 희망이다.




"우리들이 오늘을 무어라 부르든 간에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사라져야 할 것들은 오늘의 어둠에 절망하지만,


보다 찬란한 내일을 사는 사람들은 오늘의 어둠을 희망이라 부른다"



- 영화 <그들도 우리처럼>의 마지막 자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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