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과 필연>
저 나름 까칠한 사람입니다.
영화도 귀신 나오는거 안좋아하고 (무서워요..),
맹목적인 유신론도 거부합니다.
세상의 우연따위 당연히 믿지 않죠.
그런데, "우연"하게도 제가 제일 좋아하는 단어가운데 하나는 "우연"입니다.
특히나 뭔가를 하면서 생기는 우연과 그 이어지는 연계의 합을 좋아한다고 할 수 있죠.
몸이 아파서 1주일 요양을 떠났는데 거기서 멋진 사람을 만났다... 뭐 이런 것도 될 수 있겠지만 아쉽게 제 인생에서 그런 건 없었구요, 대신 있는 것이 일이랑.. 뭐 그런 것들입니다.. 이번 출장도 이런 우연의 연속이었죠.
올해 목표로 잡았던 행사, 그리고 그 행사 즈음에 잡힌 전혀 다른 성격의, 하지만 관심이 있는 분야였던 행사, 두 행사를 예약하고 일정을 잡자 만들어진 중간의 일정, 그 일정을 컨펌하고 난 뒤에 발견한 역시 관심있던 다른 행사, 그리고 또 이어진, 또 이어진, 또 이어진.... 심지어 만나기로 한 사람의 집 근처에 방문지가 생기고, 다시 그 방문지를 기반으로한 다른 일정이 생기기도하고 말이죠. 그렇게 이어진 우연에 우연, 우연에 우연을 거쳐 이번 출장의 일정이 결정되었고, 다시 몇 번의 우연적인 일들이 겹치면서 3주가 조금 넘는 시간을 채울 수 있었습니다.
사실 우연은 그냥 해프닝일 수도 있습니다. 동전던지기에서 앞 면이 나오든 뒷 면이 나오든 그걸 우연이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그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까요. 제가 "우연이라는 단어(말)를 좋아한다"는 표현을 굳이 쓰는 것은 어쩌면 그 우연을 실제적인 무엇인가로 만들고자하는 생각이 담겨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습관에서 온 것이든, 사회문화적인 면에서 온 것이든, 혹은 말그대로 우연에 의한 것이든, 그 우연에 의미를 부여해서 의미있는 것으로 바꿔내기 위한 습관 같은 것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반복된 우연이 만든 여정과 그로부터 시작되는 다른 여정을 기대해보고 있습니다. 어떤 일이 앞으로 벌어질 지는 모르겠지만 우연으로 시작되어 나중에 필연이었다고 회상하게 되면 그건 그것대로 재미난 일이 아닐 수 없겠지요.
그나저나, "우연"이라는 키워드로 시작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바로 생각났던 것이 이 책 <우연과 필연>입니다. 학교다닐때 읽었던 책이기는 한데 기억나는게 없네요. 우연으로 시작해서 필연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 (실제 책 내용과는 상관없이, 지금 제 마음이 그렇다는 뜻입니다)으로 떠올린 것치곤 책에서 기억나는게 하나도 없다는게 좀 아쉽기도 합니다. 중간중간에까지 메모를 해둔 것을 보면 분명 절반이상은 읽은 듯 한데 기억나는게 없네요.
한편으론 제가 좋아하는 우연이 이렇게 끝날 수 있다는 경고가 아닐까도 생각을 해봅니다. 우연을 필연이라고 의미부여해봐야 결국 네 손에 잡아두지 못하면 기억에서조차 없어질 것이라는 과거로부터의 충고일 수도 있겠지요. 이 부분에서 제일 쉬운 건 아마도 책부터 다시 읽어보는 것일텐데, 뭐.......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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