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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봉수 Oct 05. 2023

[책] 내 안의 차별주의자, 2020 (2)

허약한 남성성과 폭력, 문제의 해결


[책] 내 안의 차별주의자, 2020 (2) - 허약한 남성성과 폭력, 문제의 해결



순전하게 "까먹어서" 빼먹은 내용인데 꿈에서 알려주네요. 안썼다고 말이죠.



며칠 전에 정리해서 올렸던 책 <내 안의 차별주의자>에 나왔던 내용입니다. 다만 제 느낌으론 책의 진단과 평가, 서술 등이 산만하고 중구난방이라 정리하면서도 빼먹었던 내용이기도 합니다. 그걸 "차별"이라는 주제로 묶을 수 (없진 않지만) 있을까 싶은 내용이기도 하죠. 





책에서 사용한 용어는 '허약한 남성성'입니다. (p.73) 네이버나 구글에서 한글로 검색해보면 아직 널리 쓰이는 용어는 아닌 것도 같네요. (개인적으로 나름 매력있는 용어다 싶기는 합니다만...)



저자는 미국에서의 총기 사건 등을 중심으로 논의를 펼쳐갑니다만, 한국의 경우도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당장 떠오르는 몇 가지 ("서현역 칼부림 사건 (2023년 8월) 혹은 "부산 돌려차기 사건" (2022년 5월)이나 너클을 사용했던 "신림동 공원 강간살인 사건" (2023년 8월))을 생각해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런 사건들은 여러가지 층위에서 설명을 하게 됩니다. 비정상적인 한 개인의 폭력성향에 대해서 주목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이젠 사회가 조금은 발전한 것인지 이런 사건에 대해서는 그러한 일이 일으킨 개인이 사회안에서 어떻게 자라왔으며 어떻게 방치되고 관리되지 못했는지, 사회적으로 그런 개인이 만들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등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죠.



처방역시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단순한 강력한 처벌외에도 사회적 교정, 그리고 그런 개인이 만들어지는 시스템을 바꾸기 위한 여러 처방들이 함께 하게 됩니다. (실제로 그게 작동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어쨌거나) 그리고 최종적으로 심리상담이나 정신치료 등으로 갈무리되는 경우가 많죠. 그리고 저자는 여기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저자는 살짝 생뚱맞게(?) 여기에 젠더 개념을 가져옵니다. 



"질문을 거꾸로 해보면 어떨까? 정말로 정신 질환이 총기 난사 사건의 원인이라면 왜 여학생들은 그런 짓을 저지르지 않을까? 왜 하필 백인 남학생들만 범행을 저지를까? (p.69) - ("학생"이라는 표현이 여러번 등장하는 걸로 봐서 학교내 총기난사였던 듯 합니다. 학교내 총기난사만 97건이라니... 진짜라면...)



1982년에서 2018년 2월까지 97건의 총기난사 사건 가운데 94건을 만약 여성이 저질렀다면 (실제로는 남성) 세상이 어떻게 반응했을까하고 묻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세상은 이렇게 조용하지 않았을 것이지만, 남성이었기 때문에 범죄의 초점이 "범인의 정신질환"으로 향했다고 말이죠. "남성이 폭력 사건의 범인인 경우 사람들은 성별과 그 뒤에 숨은 사회 규범의 중요성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p.69)고 말이죠. 정신질환과 그 치료를 기준으로 생각한다면 정신질환이 있더라도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은 집단 (가난한 소수 인종이나 여성들)에서의 사건발생 비율이 더 높아야하는데 현실은 반대라는 것이죠. 



그래서 저자는 묻습니다. "왜 그는 심리 치료를 받지 못했는가"라고 물을 것이 아니라 백인 남성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라고 물어야 한다고 말이죠. (p.70)



"여기서 중요한 문제는 폭력이 특정 목적을 이루기 위한 남성 특유의 길이라는 점이다. 폭력의 한 종류는 내적 고통의 외적 표현이다. 가령 소속되고 싶은 갈망이 채워지지 못해 절망하고 분노하다가 폭력을 휘두르게 되는 것이다" (p.70) "폭력을 이용해 이 사회가 남성에 거는 기대를 충족하고자 하는 것이다" (p.71)







정말 한 대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굳이 따로 떼어내서 정리해보는 이유이기도하죠. 



<내 안의 차별주의자>에 나온 목차를 따라 가본다면 '허약한 남성성'은 책의 2부인 "성 gender"의 후반부 "남자다움의 신화"에서 나옵니다. 성별구분 교육 ('젠더 라벨링'. p.65)에 따라 전통적인 가치관을 지닌 남성은 기존의 성역할을 버리리가 힘든데, 현대사회로 갈수록 그 발현의 시공간이 줄어들고, 그로인해 남성성을 과시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은 남자들에게 문제(?)가 생긴다는 내용입니다. 



"폭력은 남성성을 재생산한다" (p.69). 


이 논리를 따라가면 결국 폭력은 충족되지 못한 것을 채우기 위한 심리적 충동 혹은 사회적 인정의 수단이 된다는 것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조금 비약하자면 충족되지 못한 남성성이 공격성을 띄고 폭력적으로 발현되어 해소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폭력성의 발현을 통해 사회적 인정을 받고자 한다는 것이죠.


여기서 중요한 것은 폭력이 갈등의 해소 혹은 목적이 아니라, 그것이 사회적 인정의 수단이 된다는 것일 것입니다. 폭력을 통한 결과를 얻기 위함이 아니라 근본적으로는 폭력 자체가 목적이 된다는 것. 즉 폭력성의 발현을 통해 사회적으로 도태되지 않았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면 현재의 폭력성은 낮추고 긴장을 낮추고 갈등을 조율하려는 입장에서의 처방이 달라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닿게 됩니다. 



=-=-=-=-=-=-=



저자는 "우는 남자를 위하여"라는 소제목을 통해 ("폭력은 남성성을 재생산한다"도 소제목입니다) 결국 "남성성이란 문화와 역사에 따라 변하는 사회적 구조물"(p.74)일 뿐이며, "우리 사회가 어떤 특성과 품성을 남성성과 결부하는지, 혹시라도 여성성을 폄하하지는 않는지 살피고 책임질 의무가 있다"(p.75)라고 말합니다. 쉽게 말하면 남성성도 여성성도 결국 원래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주어진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연약한 남성성'에 괴로워할 필요가 없다라고, 혹은 연약함과 공감은 여성의 특성이 아니라 인간의 특성이니 걱정할 필요 없다고 말하는 듯 합니다. 결과적으로 남성성 여성성 모두 사회적인 "상징"일 뿐이니 너무 그런 것에 연연해하지 말아라. 뭐 그런 얘기가 되겠지요. 



극단적으로 단순화해서 말한다면 남성의 폭력성 (공격성)은 남성으로서 교육받아왔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죠. 충족되지 못한 사회적 인정의 결핍이, 사회 문화 역사적으로 주입(혹은 강요)된 남성성의 발현이라 할 수 있는 공격성으로 드러난다는 얘기. (과거의) 남성중심 사회에서 점차적으로 여성의 몫이 커져감에 따라, 기존  불안함을 느끼는 기존 사회 시스템에 머물러있는 남성들의 자위적인 활동으로 설명할 수 있을 듯 합니다. 



다른 차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성 gender에 기인한 차별은 불안을 토대로 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새로운 이민자에 대한 기존 이민자의 공격성이, 이주 노동자에 대한 하급 노동자의 공격성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겠죠. 사회적 계급으로서의 여성 권익의 신장에 대한 남성의 공격성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공격성의 발현 (적극적인 사람대 소극적인 사람이든, 지배층대 피지배층이든, 원주민대 이주민이든, 남성대 여성이든)을 통해 자기가 속하고자 하는 집단(기득권층)에 포함된다는 것을 선포하고자 한다는 것도 비슷하게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책의 논리를 따라가면서 Gender 영역에서 뭔가 좀 개운찮았던 이유는 다른 차별과 젠더 영역에서의 차별, 그리고 그 해결방안에는 뭔가 분명하지 않은 부분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선 기본적인 차이점이라면 두 가지 정도로 생각해볼 수 있을텐데요, 어느 정도 후천적 구별/차별이라고 할 수 있을 다른 차별의 요소 (정치계급, 인종, 경제 등)과 달리 선천적 차이가 있는 분야 (남녀의 구분)라는 점과, 책에서 다루고 있는 폭력성의 발현이 비단 상대 계층 (여기서는 여성)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책은 남성의 공격성을 다루면서 단순히 남성의 여성에 대한 공격성이 아니라, 공격성(폭력성) 자체를 남성의 사회적 인정 수단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폭력성(공격성) 자체가 사회적 인식 안에서의 남성성 발현 모습의 하나이기 때문이죠. 



때문에 젠더 영역에서의 해결점은 다른 차별에서와는 다르게 제시되었습니다. 즉 상호이해를 통한 폭력성을 낮추는 방식 (서로간의 이해와 토론, 계급간 계층간 혹은 인종간 접촉증대 등등)이 아니라 책의 표현을 빌면 "눈물을 흘릴 줄 아는 남성" 혹은 "공감할 수 있는 남성"(p.75)으로 교육하는 것이죠. 이른바 gender free education 라고 부를 수도 있을 듯 한데요, 단순히 책의 내용을 기준으로 조금 험하게 말한다면 전통적인 사회에서 남성성으로 인정되는 폭력성을 없애는 방식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지점에서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남성성의 약화가 해답인가 하는 물음이 생기게 됩니다. 실제로 책에서도 약간의 충돌이 일어나는데, 바로 앞에서 "남성성이 튼튼하다면 분홍색 외투를 입고 컵케이크를 굽"고, "남들이 뭐라고하건 화장을 하고 다"닐 것이다 (p.74)라고 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한편에서는 '(다른 사람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는) 튼튼한 (건강한) 남성성'을 말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사회적으로 용인되어온 폭력성에 기반한) 남성성의 거세'를 말하고 있는 것이죠. 남성성의 제거가 곧 건강한 남성성이라는 뜻이 아니라면 말이죠. 



약간은 감상적인 해결책인 듯 해보이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책의 논리를 따라가본다면, 사회문화역사적으로 잘못 형성된 남성성 교육 -> 과거 남성들이 당연하게 가져왔던 지위 하락으로 인한 불안 -> (잘못 형성된 남성성의 발현으로서의) 폭력성 표출이 문제이고, 대안은 잘못 형성된 남성성 교육을 무마하는 교육 (눈물 흘릴 줄 아는 남성, 혹은 공감할 수 있는 남성) 정도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 카테고리가 기본적으로 상징적인 차원에서의 불안이라면 젠더 영역에서의 차별과 폭력성은 보다 근본적인 영역에서의 차이에 기반하기 때문에, 차이/구분의 경계선을 모호하게 만드는 장치, "눈물을 흘릴 줄 아는 남성" 혹은 "공감할 수 있는 남성"으로 교육한다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책에서 지적한대로 폭력성이 비단 상대 성(남성 -> 여성)에게만 가해지지 않는다는 점과, "폭력"(그리고 "차별")은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점을 생각해봐도 조금은 감상적인 해결책이지 않을까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이른바 gender free education 이 사회문제의 만병통치약 정도로 들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다만 엄정하다 할 수는 없을 것 같지만 책 속의 한 챕터안에서 제시된 대안 정도로 생각해보면 넘어갈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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