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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봉수 Oct 06. 2023

숙제가 던져준 숙제, 대안교육은 학교를 구할 수 있을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10월호)


지난 주엔가, "내 돈주고 산 숙제"라고 사진을 올렸었습니다. 르 몽드 디플로마티크였죠. 옛날에 타블로이드 판 신문형태로 발행되었었는데 자꾸 밀려서 구독을 오래도록 쉬었더랬습니다. 읽어야하는데 제대로 읽지를 않으니 자꾸 숙제처럼 (숙제는 밀리는 맛이죠!) 밀려서 말이죠. 어쨌거나 그러다가 요즘들어 특히나 "이상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 주변 사람때문에 생각이 나서 다시 구독을 신청했더랍니다.



읽던 책이 있었다는 핑계로 아직 첫 페이지도 안열어봤는데 이런...  10월호가 도착했네요. 



으악... 또 밀린다....고 생각하는 순간... 제목이 또 .... "대안교육은 학교를 구할 수 있을까?"



음.... 저 유학원 사장입니다. 유학은 해외 교육기관이고, 저쪽나라에서 어떻게 부르든간에 한국에서 보면 "사교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 호를 열어보지는 않았으나, "대안교육은 학교를 구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사교육은 학교를 구할 수 있을까?" 혹은 "유학은 교육을 구할 수 있을까" 등으로 바꿔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의미들은 각각 다를 수 있겠지만 "대안교육"의 자리에 "사교육"이나 "유학"을 놓고, "학교"의 위치에 "공교육"이나 "(교육)"을 조금 더 나가면 "한국사회"를 놓을 수도 있겠죠.



답은.. (르몽드 결론은 모릅니다만)... No.가 아닐까 싶습니다. 학원 강의도 나름 오래했고, 유학원 원장이니 이런 표현을 쓰면 안될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깊게 생각할 필요도 없이, 사교육이나, 대안교육이나, 유학은 학교를 공교육을 사회를 구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유는 간단한데요, 사교육이나 대안교육이나 유학 등은 결국 개인이 공적 시스템이 아닌 사적 자원을 써서 사회적 지위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되게 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일부 과정 (공립 대안학교... )은 여전히 공적 시스템 안에서 기능할 수 있다고 하겠지만 전체 사회로 본다면 사교육은 여전히 "일부"에 해당하는, 일종의 "특혜"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영국은 참 특이한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사교육의 대표격이라고 할 수 있는 "사립학교" (자기들이 "공공"이라고 생각했는지 Public School 이라는 표현을 쓰죠)를 만들어두고, 여전히 극히 일부의 학교 출신들을 주축으로 옥스브릿지를 위시한 학교시스템을 만들고, 다시 극히 일부 학교 출신들이 총리를 도맡다시피하는 나라인데도 딱히 별 말이 없다는 것이 말입니다. 뭐, 영국은 몇 가지 특수성이 있다고 말할 수는 있습니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영국에서나 통하는 얘기일 뿐이겠지요. 



표지에서 보이는 대안교육의 이미지는 아마도 "자율성" "독자성" "독립성" 등등으로 표현되는 가치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공교육이 해결해주지 못하는 부분을 대안적인 방식을 통해 보좌한다는 얘기가 아닐까 (그냥 읽으면 되는데 왜 이런 추측을 하고 있을까요?) 싶기도 합니다. 



대안(교육)이 결코 (공식 학교의)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말을 했지만, 그건 단순히 이념적인 부분은 아닙니다. 현실적으로 개인이 전체를 대표할 수도 없기 때문이죠. 모든 개인이 자신의 자율성과 개성을 존중받으면서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현할 수 있는 개방적이면서도 정의로운 사회... 그런건 꿈속에서만 가능하니까요.



영국사회에서 사립학교가 가지고 있는 특수성도 아마 이 지점에 대한 역사적 해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공립시스템을 아무리 좋게 만들려고 하더라도 결국엔 실패할 수밖에 없으므로, 그 한계를 현실적으로 인정하고 공공성을 강화한 사립시스템을 함께 발전시켜 나가자. 그 과정에서 욕을 먹더라도 "스스로에게" 우리는 공공을 대표한다고 강조하면서 그 단점을 줄여나가자는 것이 제가 이해하고 있는 영국사회가 사립학교 시스템을 존속시키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결국엔 "개인" 그리고 "사회"가 되겠네요. "자유"와 "평등"이라고 말할 수도 있고, "개인"과 "전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참 쉽지 않은 주제입니다만, 개인적으로는 "공공성" 그리고 "공공선"이라는 표현이 한국사회에서 좀더 많이 들렸으면 좋겠다는 뜬금없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개인의 이익을 게걸스럽게 추구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대안교육 (참 여러가지 의미가 있을테니까요)이 다시 소수만을 위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방아쇠"만으로 기능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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