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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봉수 Jul 12. 2020

[코로나19] 자유에 대하여 2. 왜곡과 변형


#1. 코로나 대응과 사회적 컨센서스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해 가장 관심을 갖게된 분야는 뭐니뭐니해도 의학, 약학, 그리고 IT 가 아닐까? 정책적 결단이 어떻게 진행되든, 사회적 컨센서스가 어느 수준에서 어느 범위에서 만들어지든간에 현실적인 처치와 관리가 이루어지는 층위가 이들 전공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정치와 사회적 합의가 가야할 길의 로드맵을 만들 때, 현실적 분야들은 그 지도(로드맵)이 길이 되도록 만든다.



전세계에 던져진 질문이 같음에도 불구하고 그 대응이 다른 것은 전적으로 각각이 처한 상황과 다르고 조건과 정도, 사회적 합의, 현실적 기반이 모두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대응할 수 있는 기술적 수준이 비슷한 나라들" (예를 들면 OECD 국가들) 안에서의 차이가 나는 것을 비교해보면 그 사회가 중시하는 가치를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코로나19는 직간접적으로 "자유"를 호출해왔다. "Free America"를 외치는 트럼프 지지자들이 외치는 자유란 아마도 "뭐가 됐든 간섭하지 말라"는 의미일 것이다. 복지나 의료체제의 활용 등에서 볼 때 미국과 유럽의 차이는 극명하다. 한 쪽은 여전히 무상의료 (유럽), 다른 한 쪽은 치료는 곧 파산 (미국)이라는 명제, 미국의 경우 "나름" 적극적인 대처를 통해 코로나19 치료와 관련된 경제적 부담이 조금은 경감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불안정한 상황이니 따로 말할 필요도 없겠다.



미국과 유럽만이 아니라 다른 지역도 비교해볼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19 방역과 관련해서는 좀더 뿌듯함을 느끼고 있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대만, 싱가포르 등이 있고, 적도를 건너 뉴질랜드, 호주 등이 있으며, 중국, 일본 등도 있다. 특히나 자유와 관련해서는 홍콩과 대만, 중국의 자유와 관련된 이슈가 녹록치 않고 일본과 한국, 중국이 대비되는 점도 적지 않다.



#2. 각국의 대응수준 비교 - 국가란 무엇인가



위 그래프는 현 코로나19 상황과 관련해 나라들의 대응 정도를 나타내본 것이다. 쐐기 형태로 된 표기는 각국이 설정한 방역지침의 엄밀성 (가로축)과 해외 유입을 차단하는 정도 (세로축)을 나타낸다. 또한 주로 왼쪽으로 길게 표기된 띠 모양의 왼쪽 끝은 해당 국가안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의 자유를 나타낸다.



한국을 예로 든다면 상호주의에 입각한 입국금지를 제외하면 입국금지 국가가 없으며 그래서 가장 낮은 쪽에 위치한다. 또한 IT 기술을 포함한 확진자 추적 및 진단 등의 면에서는 가장 급진적인 편에 속한다. 한국보다 더 급진적이라고 볼 수 있는 곳은 싱가포르나 대만 등 작은 나라 혹은 공산국가이자 새로운 전제국가의 형태인 중국 정도라고 할 수 있다. 동시에 자국내에서의 활동의 자유 (파란색 실선)라면 아직까지 공식적인 록다운 (자가 격리 등)이 일어난 적도, 몇몇 위험 시설 등에 대한 집합금지 명령을 제외하면 제약이 가장 낮은 수준이라는 점에서 가장 왼쪽에 외치하고 있기도 하다.



특이한 것은 일본과 미국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과 미국은 중앙정부가 설정한 방역지침은 낮은 수준인데 반해 그렇다고 무제한적으로 자유로운 활동을 영위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각 주 (state)가, 일본의 경우 지방 정부에서 오히려 방역 지침을 강하게 적용하거나, 국가가 설정한 지침 이하의 수준에서 움직이고자 하는 움직임이 눈에 띄인다는 점에서 쐐기점 (정부의 방역기준)보다 오히려 왼쪽으로 이동한다.



유럽과 미국의 대응차이를 비롯해, 아시아 국가들안에서의 대응차이도 "국가"라는 테마로 풀어볼 수 있을 듯하다. 투박하게 보자면 미국은 국가라는 공적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큰 경우라면, 유럽은 국가는 의심해야하는 대상이지만 (권위주의 측정에 흔히 사용되는 지표이기도 하다) 개인을 지탱하는 울타리, 아시아에서는 국가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도가 높아 개개인을 선도하는 차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래저래 위험한 표현이기는 하지만, 전쟁이 난다면 미국은 "내 총을 꺼낸다"라면, 유럽은 국가에 "군대를 소집하라"고 주문하고, 아시아는 국가가 "모두 모이세요"라고 한다고 표현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3. 마스크와 이기심



사실 코로나19가 확산되는 상황에서 유럽과 미국의 차이만큼이나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바로 "마스크 착용"이라 할 수 있. 그간 유럽이든 미국에서든 "마스크는 병자에게나 필요하다"고 말해왔기 때문. 확진자가 갑자기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한 3월에서 4월을 생각하면 마스크의 재고 자체가 부족했다는 변명이 가능하지만, 지금까지도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은 어떻게 생각해야할까? 마스크가 범죄를 연상시킨다거나, 복면 착용을 금지한 시위법이 있다거나, 종교적인 이유로 혹은 정치적인 이유로 마스크 착용을 꺼리게 된다는 답변도 있지만 사실은 아닌 것같다. 중세부터 페스트가 만연했던 유럽에서, 그리고 스페인 독감으로 수없이 죽어간 유럽과 미국에서 이미 마스크는 필수품이었으니까. 심지어 고양이에게까지 마스크를 씌워준 사람들이 갑자기 마스크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납득하기 어렵다.











지난주 포스팅한 영국 사립학교 교장들의 이야기 속에서 등장했던 "예전에도 있었고, 얼마 전에도 있었으며, 안타깝지만 앞으로도 있을" 재앙의 하나일 뿐이라고 말하는 건조한 객관성은 현재 유럽이나 미국에서의 대응과는 거리가 있다. 심지어 재난의 근원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도 착용하던 마스크를 굳이 거부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정말 뭐라도 있어야하지 않을까? 코로나19가 전세계를 강타할 때의 미국 대통령이 트럼프라는 점이나, 길고 지리한 논쟁끝에 확정된 브랙시트가 영국의 유럽에 대한 자국 우선주의의 정점이고, 브랙시트 찬성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사람이 "코로나에 걸린 최초의 정부 수반"이라는 타이틀을 갖게된 보리스 존슨이라는 것은 단순한 우연일까?



최근 십수년간 내부적으로 편협해지고 우경화되어가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기도 하지만, 전통적으로 많은 한국사람들은 성공에 대한 믿음이라는 점에서는 미국을, 인권과 복지국가라는 점에서는 유럽을 롤모델로 삼으면서 살아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새로운 미래를 주장하면서 새롭지 않고, 이전 세계로의 회귀를 주장하면서도 이전 시대에서 배울 점은 인정하지 않는 고루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고작 얼굴을 가리는 정도의 마스크 착용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헤프닝은 서글프기 그지없다.






#4. 코로나19는 전환점이 될 수 있을까



IMF로 시작한 한국사회는 사회연대라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통합성은 점차 약화되었다. 다같이 잘 살 수 있다는 이상은 환상이 되어버렸고, 상승을 위한 가장 직접적인 방법인 부동산과 교육은 전 세대에 걸쳐 전 정권에 걸쳐 불신과 불만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서로를 믿을 수 없어서 모든 것을 의심하는 현상. 눈 앞에서 수장되는 아이들을 보면서도 아무 것도 하지 않았던 정부나, 매번 똑같이 희생되는 노동자들앞에서 똑같이 제대로 미안하다고 말조차 못하는 정부나 부족하고 실망스러운 것도 마찬가지다.



한국인의 자부심을 세계에 드날리게 된 계기가 된 소위 K 방역은 끝까지 성공할 수 있을까? 급작스럽고 불가피한 부분이었지만, 개인의 자유와 권리, 노동에 관한 논의가 충분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한국의 상황에서 "국가의 부름"에 응한 사람들의 말그대로 "목숨을 건" 노력과 희생을 강요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것도 사실이 아닐까?



다행인 점은 연대와 타협, 양보와 균형의 논의가 조금씩 조금씩 더 자주 보인다는 점이다. 전반적으로는 여전히 각자도생에 폭탄돌리기 같은 삶이지만, 최소한 사회의 문제점은 인식하고 있고, 방법이야 어쨌든 이대로는 안된다는 공감대도 충분한 것같다. 무상급식에서 시작한 여러가지 복지 논의와 주택문제, 교육문제, 사회 타협과 공존의 문제들, 의료보험과 국민소득 등과 관련된 여러 시도와 논의는 코로나가 없었다면 결코 쉽게 보지 못했을 부분이기도 하다.



우리가 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코로나 상황은 우리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거울이 되고 있다. 지금은 총력전으로 맞서지만 언젠가 코로나는 끝날 것이고, 그 끝난 후의 대한민국이 어디에 서게 될 지는 지금 우리의 선택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이렇게 저렇게,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그 최선을 다한 노력이 사회로부터 지지와 존중을 받을 수 있다면, 그 때 우리는 "코로나는 도약의 발판이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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