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E.R.O

초단편소설 [Zone: Energy Reap Orbit]

by 머속휘

후덥지근한 날씨에 더해 작업실 주변에선 공사가 한창이었다. 사격할 때 쓰는 귀보호 헤드셋(Ear Protection)을 써보아도 소용없는 소음과 진동으로 오전 작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가까운 장소로 하이킹이나 하러 집을 나섰다.

여름방학과 여름휴가들로 인한 인파를 피하고 싶지만 시간상 어쩔 수 없이 관광객들이 북적이는 장소로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도착한 곳의 주차장에는 주차 공간마저 없어서 길가에 차들이 빼곡히 주차되어있었다.

대충 챙겨 온 백팩을 메고 줄지어 오르는 사람들을 따라 잘 정돈된 산길을 올랐다.


시끌벅적한 사람들의 소음과 더딘 속도에 내가 왜 작업실을 뛰쳐나왔는지 모르게 되어 버렸다.

난 코스를 벗어나 사람들이 없는 길로 가기로 했다.


산세도 험하지 않은 곳이기도 하고 어차피 GPS 지도로 목적지에만 도착하면 되니까...

그렇게 숲 속으로 향해 걸어 들어갔다.


한참을 우거진 풀숲을 헤치며 걸어 오르자 탁 트인 풍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휴식을 취하며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의자도 설치되어 있었다. 역시 사람들이 많이 찾는 관광지는 다르구나 생각하며 의자에 앉아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감상하며 가져온 샌드위치를 맛있게 먹었다.





샌드위치를 먹는 동안 주변은 너무나도 평온했고 고요했다. 멀리서 들려오던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한 사람도 지나가지도 않았다. 난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작업할 때 마시려고 얼려두었던 커피를 시원하게 들이켰다.


자리를 정리하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새파랗던 하늘에 구름이 빠르게 몰려들었다.

소나기라도 쏟아질 기세였다.

비가 내리면 얼른 입을 수 있도록 백팩 안에서 레인 쉘을 꺼내 백팩 바깥에 달아 두었다.


GPS에는 나오지 않는 길을 따라 얼마나 걸었을까, 길이 낭떠러지로 끊기고 없어졌다.

걸어온 길을 다시 돌아가기 싫었던 난 주변을 둘러보았다.

물이 말라버린 계곡 같은 곳으로 길이 보였다.

GPS를 보았다. 길은 아니었지만 계곡으로 보이는 지형이었고 계곡의 끝은 목적지와 가까웠다.

난 그 길을 따라 오르기로 결정하고 발길을 옮겼다.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던 구름들은 어느새 사라지고 작렬하는 태양의 열기가 지면에서 후끈거렸다.

다행히도 완만한 경사에 힘들이지 않고 하이킹을 할 수 있었다.


주변은 완전히 고요했다. 바람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내가 걸을 때 밟는 자갈들이 내는 소리만이 낮은 계곡에 울렸을 뿐이었다.


십여분을 더 계곡을 따라 오르자 높다란 성벽처럼 보이는 협곡이 나왔다.

심지어 한여름인데도 바닥에는 두꺼운 눈얼음이 그대로 쌓여 있었다.

그 어두운 협곡 안 깊은 곳에서 냉기가 뿜어져 나왔다.




난 망설이며 서있었다. 음습한 알 수 없는 협곡을 따라 계속 걸어 들어갈 것인지 아니면 이쯤에서 집으로 돌아갈 것인지...

GPS를 들여다보았다. 이 길을 따라가면 원래 가려던 목적지 근처의 작은 호수에 갈 수 있을 것 같아 보였다. 기왕 여기까지 온 김에 끝까지 가보기로 했다.


7월 중순, 한 여름 낮 1시임에도 협곡 안은 어둑어둑했다. 처음엔 시원하게 생각이 들던 냉기도 점점 춥게 느껴졌다.

난 레인 쉘을 챙겨 입었다. 눈얼음으로 뒤덮인 미끄러운 바닥은 여름용 부츠의 밑창이 감당하기 어려웠다.

몇 번을 넘어질 뻔하며 조심조심 걸음을 재촉했다.




막다른 길처럼 보이는 곳에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캐나다가 추운 나라라 하지만 30도 가까이 기온이 오르는 7월의 한 여름에 폭포가 꽁꽁 얼어 있다는 것이 믿을 수 없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너무나도 신기했다.


미끄러운 얼음을 조심스레 올랐다. 너무나도 신기한 7월의 꽁꽁 얼어버린 폭포를 사진에 담고 싶었다.


어느 한 지점에 다다르자 자꾸만 미끄러져 넘어지길 반복했다. 마치 오픈월드 게임 속에서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을 때처럼 몇 번을 넘어지다 결국 최대한 접근할 수 있는 곳에서 카메라에 담았다.





폭포가 이렇게 얼어있어서 협곡에 흐르는 물이 없었나 보다 싶었다.

얼음 폭포 반대 편으로 협곡 길이 이어져 있었다.

얼음을 타고 미끄러져 내려왔다.


누군가 쌓아 놓은 무수히 많은 돌탑들이 그래도 사람들이 다니는 길이구나 안심이 되었다.




끝없이 펼쳐진 돌탑들을 따라 걷다 보니 조금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많은 돌탑들이 쌓아져 있는데 왜 아무도 없는 것인지 그리고 왜 이토록 고요한 것인지 기괴한 느낌이 들었다.

난 그런 기분들을 애써 무시하고 말라버린 협곡 길을 따라 걸어 올랐다.


가파른 언덕을 넘자 반질반질한 협곡의 절벽이 나타났다.

유독 반질거리는 암벽 쪽으로 다가갔다.

희미하게 붉은 문양 같은 것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 들여다보았다.


고대인들이 그려 놓은 벽화 같았다.

세월에 지워진 벽화가 반질반질한 바위벽에 남아 있었다.

마치 내가 고대 원시부족들의 성스러운 길 위에 서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 순간 두려움에 사로 잡혔다. 살아 움직이는 그 어떤 생명체도 없는 그런 고요한 공간에 나 홀로 서 있다는 것이 엄청난 공포감을 주었다. 심지어 그 많은 모기와 파리조차 없는 공간이었다. 나무와 식물을 제외한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는 오직 나 혼자 뿐인 공간에서 언제 적인지도 알 수 없는 고대 원시부족의 그림을 마주 하고 있자니 겁이 덜컥 났다.





두려움을 떨쳐내고자 카메라의 셔터를 연신 눌렀다. 그러는 동안 서늘한 협곡의 바람이 나의 귀를 스치고 지나갔다. 바람이 간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협곡은 사라지고 돌길이 보였다. 그리고 그 돌길 옆에 지형과는 어울리지 않는 흙 언덕이 보였다. 그 방향으로 몸을 돌려 계속 올랐다.


가깝게 보였던 그 흙 언덕은 걸어도 걸어도 가까워지지 않았다.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고 고개를 숙일 때마다 모자챙을 따라 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지쳐가는 나는, 카멜백의 바이트 밸브를 연신 빨아 댔다.

카멜백의 물이 많이 줄어들었는지 백팩의 무게가 가벼워졌다.

내 몸도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내 앞에 그 흙 언덕이 우뚝 서있었다.

올려다본 흙 언덕에는 동굴로 보이는 커다란 구멍이 나있었다.


겁이 났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상황을 파악할 수 없었다.

강한 두려움이 나를 억누르고 있었다.

그 커다란 검은 동굴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엄청난 위화감에도 그 동굴 안이 궁금했다.


그 안에는 무엇이 있을까...

정신을 차렸을 땐 난 그 흙 언덕을 기어오르고 있었다.





블랙홀처럼 깜깜한 동굴 앞에 다다르자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무서웠다.

미지에 대한 막연한 공포감 같은 것 일까...


들어갈까 말까 고민하다 한 발짝 검은 동굴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찰나의 순간 난 성벽처럼 산으로 둘러 쌓인 곳의 정중앙에 서있었다.




아무리 사방을 둘러봐도 길은 보이지 않았다.

GPS를 황급히 들여다보았다.

GPS의 위치표시는 아직 계곡 안에 위치해 있었다.

무슨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무엇이 되었던 난 하산할 길을 찾아야만 했다.

둥그런 원형의 지형에는 돌무더기 바닥과 성벽처럼 둘러쳐진 암벽의 산들만이 있을 뿐 길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이게 말로만 듣던 다른 차원의 이동 뭐 그런 건가 생각했다.


"아무도 없어요!" 크게 소리쳤다. 암벽의 산들에 부딪친 내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살려주세요!" 다시 소리쳤다. 다시 원형의 콜로세움 같은 곳에 소리가 울렸다.


"사람 살려!" 다시 있는 힘을 다해 소리쳤다. 내 목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울리고 울리고 울렸다.

그리고 괴이한 소리가 되어 되돌아왔다.

온몸에 소름이 돋고 머리카락과 온몸의 털이 쭈볐하며 일어섰다.


"무슨 소리지?" 여태껏 아무 소리도 없던 공간에서 기괴한 음성이 들렸던 것이다.


내 발걸음 소리 외에는 무음의 공간의 두려움보다 훨씬 더 강력한 공포가 몰아쳤다.

"아... 씨발! 이대로 죽는 건가?" 혼자 중얼거렸다.


긴장한 난 주변을 빠르게 휘익 둘러보았다.


힐끔 보인 주변 나무 사이의 어둠 속에서 무언가와 눈이 마주친 것 같았다.

그대로 얼어버린 내 몸뚱이에 정신이 혼미했다.

죽을힘을 다해 소리쳤다.


"뭐... 뭐.. 야!" 하지만 소리는 개미 기어가는 소리보다 작았다.

"뭐야!" 악을 써서 다시 간신히 입을 떼어 소리쳤다.

그러자 얼어붙었던 몸의 긴장이 풀리며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씨발! 뭐야!"

발악을 하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귓가에 들리는 바람소리, 나뭇잎 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의식적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렇게나 많던 자동차들이 한 대도 없는 텅 빈 주차장에 서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커다란 주차장에 홀로 주차되어 있는 내 차에 서둘러 올라 시동을 걸자 황당하면서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주차장을 황급히 빠져나왔다.

이질감이 드는 텅 빈 도로 위를 집을 향해 달렸다.

차창 넘어 호수 뒤쪽 산 위에서 뿌연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 산 뒤로 뜨거웠던 한 여름의 태양이 넘어가고 있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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