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코

초단편소설

by 머속휘

새로운 밀레니엄의 시대가 시작된 해, 어느덧 일본에서의 생활도 적응이 되어 가고 있었다.

회사 근처에 첫 둥지를 틀었던 집은 원룸이었지만, 현대식의 인테리어에 구조도 잘 디자인된 그런 건물이었다. 하지만, 물가가 하늘을 찌르던 시절이었고 동경의 번화가의 집세는 나의 연봉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월세를 좀 낮추려 동경 외곽 지역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오래된 목조 건물에 바닥에는 다다미가 깔려 있는 작은 공간의 원룸이었다.

두드려 본 벽의 방음상태는 옆집사람의 숨소리조차 들릴 것 같을 정도로 형편없는 그런 목조 건물이었다.


이른 봄이라 그런지 해가 떨어지게 무섭게 이사 온 집 안은 순식간에 냉기로 가득 찼다. 전기장판을 켜 놓고 두꺼운 이불을 뒤집어써도 뼛속이 시려 왔다. 겨울이 오기 전에 대책을 마련해야겠다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도 집에서는 거의 잠만 자는 곳이니 뭐 어떤가 생각했다.


늦은 저녁, 귀가를 하면 으슬거리는 몸을 따뜻하게 덥혀주기 위해서 반신욕은 필수였다.

지치고 고단한 일본 생활의 위로가 되어주는 것 중 하나였다.

반신욕을 할 때마다 욕조가 작아서 의자에 쪼그려 앉아 있는 느낌이라 다리를 쭉 펼 수 없어 오래 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다. 씻고 난 후 마시는 따뜻한 녹차 한잔과 도시락 가게에서 사 온 가루비동(한국식 숯불 양념 갈빗살이 올려진 덮밥)을 먹으며 텔레비전을 보는 저녁시간이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다.


현관과 조그마한 부엌, 그리고 욕실이 있는 곳과 방을 나누어 주는 문이 하나 있는데 방안 옷장의 옷들에 음식 냄새가 베지 않도록 늘 닫아 두었다.

이사 온 지 얼마 후부터 저녁을 먹고 있으면 그 문이 삐이~익하며 열렸다. 처음엔 집이 낡아서 그런가 보다 했었다.

3층짜리 건물에 내 집은 2층에 안쪽에 위치해 있었고 창문을 열면 옆건물의 벽면이 손만 뻗으면 닿을 정도로 가까운 그런 곳이라 햇살이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 고개를 창문 밖으로 빼내면 집 앞 도로가 마치 살짝 열린 문틈으로 보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곳에 아래층 집에선 창문을 열고 향을 피웠다.

처음엔 그 향냄새가 싫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환기를 위해 열어둔 창문으로 향냄새와 섞인 담배냄새 같은 것이 올라오면 도저히 견디기가 힘이 들었다.



이사를 하고 이주 정도가 지난 어느 새벽녘, 침대가 없던 난 다다미 바닥에 요를 깔고 잠을 자고 있었다. 뭔지 모를 오싹한 냉기에 잠에서 깼다. 이불을 추슬러 덮고 다시 잠이 드려하는데 귓가를 스치고 지나가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머리카락이 모두 솟구쳐 오르는 느낌과 함께 온몸에 닭살이 돋아 났다. 너무 소름이 끼치고 무서웠다. 도둑이 들어왔나 생각했다. 가만히 누워 온 신경을 귀에 가져갔다. 그리고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 온 집안의 소리를 스캔했다. 하지만 낡은 목조 건물이 내는 삐걱거리는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이불을 박차고 일어서 전등불을 켰다. 그리고 집안 구석구석을 살폈다. 다행히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헛소리를 들었나 했다.


오랜 시간을 지나지 않아 아래 집에서 향냄새와 함께 담배냄새가 섞여 올라오는 밤이면 이 기분 나쁜 일이 어김없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저녁식사를 하면 저절로 열리는 방문에 신경이 쓰여 닫지 않고 열어두기 시작했다.


몇달이 지난 어느 밤.

저녁으로 사온 햄버거 세트를 먹으며 한참 프라이드 격투기 방송에 몰입하고 있었던 그때, 그 요상 야릇한 기분 나쁜 냄새가 살짝 열어둔 창문으로 기어 들어오는가 싶었다. 그리고 갑자기 방문이 ‘콰앙!’하며 부서질 듯 닫혔다.

너무 놀란 나는 입에서 씹고 있던 햄버거를 뿜어냈다.

돌아다본 문이 삐이익 음산한 소리를 내며 다시 열리고 있었다.

그 모습에 온몸에 닭살이 돋으며 머리카락이 전부 삐쭉 서는 느낌이 들었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며 놀란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며 자리에서 일어나 걸레를 가지려 닫힌 방문을 찜찜한 기분으로 열고 부엌으로 나갔다. 그때였다. 빌어먹을 문이 엄청난 소리를 내며 내 등 뒤에서 갑자기 다시 닫혔다. 너무 놀란 난 그 자리에서 펄쩍 뛰어올랐다, 마치 만화에 나오는 사람처럼. 갑작스런 커다란 소음과 현상에 온몸이 그대로 굳어 버린 것처럼 옴짝달싹을 할 수없게 되어버렸다. 그렇게 서있다 보니 갑자기 분노가 치솟아 올랐다. 입 밖으로 쌍욕을 내뱉으니 굳어버렸던 몸이 풀리기 시작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난 집 밖으로 나갔다. 집 앞 길가에 서서 좁디좁은 건물 사이로 내 방 아래 집의 불 꺼진 창문을 보았다. 그리고 내 방 창문을 올려다보았다. 불이 환하게 켜진 평범한 창문만이 보였다.

지진이 일어났는데 내가 너무 텔레비전에 집중해서 못 느낀 거라고 스스로 위안하며 편의점을 향해 걸었다. 놀란 가슴을 달래기 위해 맥주나 한 캔 마시고 잠을 청하려 했다.


맥주 캔들과 안주거리로 커다랗게 부풀어 오른 비닐봉지를 손에 들고 조심스레 현관문을 열고 안을 살폈다. 뭐 특별한 변화 같은 건 없어 보였다. 내 집에 내가 들어가는데 내가 왜 이렇게 조심스러워야 하나 생각을 하니 용기가 나는 것 같았다.

당당하게 집에 들어와 사온 맥주와 안주를 텔레비전 앞에 세팅을 하고 텔레비전의 볼륨을 조금 크게 올렸다 사실 많이 무서웠다. 그러자 곧바로 옆집에서 벽을 두드렸다.

다시 볼륨을 낮출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얇은 벽을 사이에 두고 옆집에 사람이 있다는 것에 안도감이 들었다. 난 사들고 온 맥주와 안주를 클리어하고 취기가 살짝 오른 상태에서 잠자리에 들었다.

얼마나 잠을 잤을까.., 그 이상한 냄새에 잠에서 깼다. 그리고 짜증이 났다.

지금이 몇 신데 향을 피우나 속으로 욕을 했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는 순간, 벽의 구석에서 무언가가 나왔다.

하얀색의 물체가 벽면에서 쑤욱하고 나와 나에게로 훨훨 날아왔다.

난 너무 놀라 눈도 깜박일 수 조차 없었다. 점점 뚜렷이 보이는 그 물체는 주름으로 가득 찬 창백한 할머니의 얼굴이었고 하얀 긴 머리카락을 위아래로 훨훨 날리며 나에게로 천천히 날아오고 있었다.

머리만 있는 주름으로 가득 찬 새하얀 할머니의 얼굴이 누워 있는 내 얼굴 위로 날아와 멈춰 섰다. 그리고 점점 아래로 내려와 내 코와 그 할머니의 코가 맞닿았다. 그 할머니의 코가 얼음장보다 더 차가웠다. 두려움 속에서 너무 차갑다고 느끼는데 할머니가 눈을 팍 떴다.

내 눈 바로 앞에서 그 머리만 있는 주름이 가득한 창백한 할머니의 코와 내 코가 맞닿은 상태에서 할머니의 눈과 내 눈이 마주 보고 있었다. 튀어나올 듯 커다란 눈알에는 깨알만 한 검은 눈동자가 있었고 아무것도 비치지 않았다. 온몸이 얼어붙은 것 처럼 움직일 수 없었다. 엄청난 냉기와 공포감에 압도당한 채로 간신히 숨만 쉴 수 있을 뿐이었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눈도 깜짝일 수 없이 부릅뜬 나의 시린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머리만 있는 새하얀 얼굴의 할머니가 입을 열고 숨을 내쉬었는데 그 요상한 향냄새가 났다. 그리고 점점 날아 올라 내 코에서부터 떨어져 나갔다. 그러더니 휘익 허공에서 괴상하게 요동을 치더니 다시 천천히 하얗고 기다란 머리카락을 훨훨 휘날리며 날아가 나왔던 벽면 구석 안으로 사라졌다.

한참을 그 차가운 코의 기운과 냄새를 느끼며 온 몸이 얼어붙은 채로 공포에 사로잡혔다. 손가락 하나 까딱 할 수 조차 없는 상태로 그대로 천정을 바라보고 누워있을 수밖에 없었다.


시계의 알람이 울리기 전까지..


그 일이 있은 후부터 이사를 가기 전까지 그 할머니는 나타나지 않았고 그 기분 나쁜 향냄새도 더 이상 나지 않았다. 가끔 발걸음 소리와 문은 열리고 닫혔지만 별로 신경에 거슬릴 정도는 아니게 되었다. 그날 밤에 보게 된 섬뜩한 할머니의 머리가 너무 강력하고 강렬한 경험을 나에게 주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럭저럭 적응하며 계약 만료 날까지 잘 버티어 냈다.



이사를 며칠 앞둔 어느 날 퇴근길.

내방 아래층에 젊은 여자가 이사를 오고 있었고 부동산 할아버지도 계셨다. 난 인사를 하고 1층 집이 언제 이사를 갔냐고 여쭤 보았다. 할아버지는 나를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시면서 보수공사를 하느라 아무도 살지 않았다고 했다. 당황한 나는 공사 소음을 들은 적이 없다고 했더니 모두가 출근하고 아무도 없는 시간에 공사를 했었다고 하셨다.

그렇게 기괴한 경험을 뒤로하고 낡고 허름한 오래된 목조건물의 나의 집과 작별을 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공포와 차가운 코의 감촉, 그리고 그 냄새는 이 글을 쓰는 내내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 일은 절대로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내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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