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단편 소설
사무실 창밖은 어두워졌고 퇴근 시간은 한참을 지났지만 누구 하나 섣불리 자리에서 일어서는 사람은 없다. 다른 회사는 워라벨이라며 칼퇴근하는 요즘이 아닌가..
하지만 여기선 아직도 지루한 눈치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나도 어쩔 수 없이 자리를 지키며 아까운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다.
멍하니 앉아 있다 보니 근래 들어 나한테 일어난 일들이 자꾸 떠오른다.
췌장암으로 6개월 전에 돌아가신 엄마의 임종도 이 거지 같은 회사 눈치를 보다 홀로 보내드릴 뻔했었고, 작년 연봉 재협상 때는 고압적인 분위기로 고작 30만 원 오른 것이 전부였다. 이 놈의 회사는 내가 입사해서부터 지금까지 어렵지 않았던 적이 없고 위기가 없었던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원들은 명품에 프리미엄급 자동차를 몰고 다닌다.
그리고 입사 첫 회식 때부터 줄곧 내 옆자리에 와서 역겨운 야한 농담을 하는 저 삐쩍 꼴은 부장도 내 영혼을 갉아먹는 것 중 하나다. 성추행 신고도 해 볼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계약직 사원의 말로가 보였다.
심지어 내 옆자리의 대리도 같은 여자면서 내 월차 전날이 되면 없던 일도 어디서 그렇게 잘도 찾아오시는지.. 또 저 부장보다 나이 많은 과장은 어떠하리, 먹고 싸는 일이 전부인 것 같은데 어떻게 저 자리에서 버티고 있는지도 신기할 따름이다.
아.. 부장이 자리에서 일어선다.
드디어 퇴근인가..
‘띠리리릭’
갑자기 부장의 전화기가 불길하게 울린다.
부장이 다시 자리에 앉는다.
묵직한 침묵이 사무실 내부를 감싸 짓누른다.
부장의 자리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내 귀에도 들리는 쩌렁쩌렁한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무언가 단단히 잘못된 것 같다.
부장이 수화기를 내려놓고 크게 한 숨을 쉰다.
잠시 후, 부장이 일어서 소리친다.
“이번에 유럽 신제품 세일즈 가이드북 담당이 누구였지?”
내 옆자리의 대리가 망설이며 손을 든다.
부장의 서슬 퍼런 시선에서 불이 뿜어져 나올 것 같다.
들었던 손을 내린 대리가 사무실 전체가 다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그 건은 하루 씨가 전적으로 책임지면서 진행한 거 아니에요?” 라며 밉상인 얼굴로 나를 빤히 쳐다본다.
“네? 제가요?” 난 당황해서 말문이 막혔다.
“그래! 하루 씨 그거 가지고 이리 와 봐요!” 부장이 다그치며 자리에 앉는다.
쇼핑몰 사이트에서 어느새 엑셀 화면으로 바뀌어진 모니터를 보고 있는 대리의 뒤통수를 보며 부장에게로 걸어갔다.
“여기 있습니다.” 부장의 책상 위로 가이드 북을 올려놓았다.
가이드 북을 여기저기 들춰 포스트잇을 붙인다.
그리고 나를 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올려다보며 비아냥 섞인 목소리로 말한다.
“이거 어떻게 할 거야?”
“네? 무슨 말씀이신지..”
“여기! 여기! 여기! 아니! 한두 군데도 아니고 이거 제품 주문번호 바뀐 걸로 제작했어야지!”
부장이 미친 듯 소리치며 두꺼운 하드보드 커버로 제작된 묵직한 가이드북을 책상 위로 내던진다.
그 바람에 부장의 책상 위에 있던 사무용품들과 함께 그 무거운 가이드 북이 내 허벅지로 날아들었다. 너무 아파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고 자리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이거! 제작비가 얼마였고 선적비 얼마였는지 알아 몰라!”
부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소리친다.
“어쩔 거야! 어쩔꺼냐거!”
과장이 다가와 부장을 진정시킨다.
허벅지의 통증을 참으며 간신히 일어섰다.
고개를 떨군 내 뒤통수 위에서 부장은 한 마리 미친개가 되어 있었다.
눈물이 나도 모르게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질끈 감았던 눈을 떴을 때 파티션 넘어 눈은 슬픔과 걱정으로 가득 차 있지만 입은 웃고 있는 대리년의 기괴한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그동안 당했던 수모와 억울함이 터져 나왔다.
“내가 때려칠께 이 좆같은 회사! 그래~, 2년 차 계약직 사원이 책임자네! 이 미친 거지 같은 회사는!”
그리고 자리로 돌아가 재킷과 가방을 들고 사무실을 나왔다.
부장의 쌍욕과 함께 “너 회사 그만둬도 최소 10억 은 반드시 배상해야 할꺼야!” 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다른 허접한 이들의 웅성거림을 뒤로하고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너무나도 힘겹고 역겨운 하루가 끝이 났다. 아니 1년 하고 3개월이 끝이 났다.
아까 맞은 허벅지의 통증이 뼈를 타고 심장을 찌르는 것 같다.
붉게 부어오른 통증을 참아가며 절룩거리며 걸었다.
지나는 사람들이 힐끗거리며 보는 시선 따위는 아랑 곳 하지 않고 그냥 걸었다.
너무나도 서글퍼졌다. 원룸 월세 내고 한 끼 8천 원 이하 점심 사 먹고 나면 바닥을 보이는 계약직 월급쟁이한테 10억이란 돈은 가늠조차 되지 않는 액수일 뿐이었다.
갑자기 막막한 절망감에 사로잡혔다. 다시 회사로 돌아가 있는 사실 그대로 난 대리님이 시키는 일만 했을 뿐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그 자리에서 요목조목 따졌어야 했나, 내가 너무 성급하게 행동했나, 아니! 내가 왜 그랬나.., 자책감에 사로잡혀 걷고 또 걸었다.
어느덧 이름 모를 한강 다리 중간에 서있다.
지나는 차량들의 소음과 환한 다리의 조명이 흐르는 강물 위에 반짝인다.
강변 양옆으로 즐비하게 늘어선 높고 화려한 불빛들이 휘황 찬란하다.
난 다리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저기 아래 흐르는 강물로 뛰어들면 이 모든 것이 끝날까? ‘
이렇게 생각한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무수히 많은 힘겨운 순간들 마다 떠오른 생각이었다.
난 다리 난간을 잡고 올라섰다. 조금은 차가운 봄날의 밤바람이 내 머리카락을 훑고 지나간다.
올려다본 밤하늘은 이글거리는 서울의 불빛에 가려져 별 하나 보이지 않는다.
다시 내려다본 강물이 떨구어져 내린 나의 눈물을 흔적도 없이 가져가 버린다. 저 멀리 있는 대양으로...
나도 데려다줄까? 저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를 행복이 가득한 곳으로...
다리를 들어 나간 위로 올려 보는데 허벅지의 통증이 너무나도 심하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전화벨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난간에서 내려왔다.
주머니의 스마트 폰을 꺼내 보았지만 내 전화기에서 울리는 것은 아니었다.
소리가 나는 곳으로 절룩거리며 걸어갔다.
환하게 불이 켜져 있는 SOS 생명의 전화에서 벨이 울리고 있었다.
다리 위를 질주하던 그 많던 차량들은 모두 어디론가 사라졌고 다리 위에는 환한 불빛의 전화기와 그리고 나밖에 없는 것 같다.
CCTV를 본 상담원이 건 전화라 생각하며 전화기 앞으로 다가갔다.
조심스레 집어 든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목소리.
“여보세요.”
췌장암으로 돌아가신 엄마의 목소리였다.
“엄마?”
난 흐르는 강물 위에서 그렇게 그립던 엄마에게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