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단편 소설
고2 여름 방학이 다가오던 어느 날 겪은 일이다.
아침부터 늦잠을 자 분주하게 학교를 향했다.
똑같은 교실과 친구들 그리고 선생님들 하지만 난 유독 그날따라 우울한 낯선 기분에 사로 잡혀 있었다.
점심시간 이후에는 편두통이 생겼고 체한 것 같아 양호실에서 약을 받아먹었다.
하지만, 오후 수업 내내 편두통에 시달렸었다.
후덥지근한 날씨에 습도가 높아서인지 야간 자율학습 시간 내내 짜증이 나 견디기가 몹시 힘들었다.
어두워진 하늘과 무거운 책가방을 등에 지고 교문을 빠져나왔다.
우르릉 밤하늘에서 천둥 치는 소리가 들렸다.
소나기라도 오려나 걱정이 되었다. 우산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참을 버스정류장에 서있었다.
오늘따라 유독 집으로 가는 버스가 오질 않았다.
버스를 기다리는 내내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에 빠져 있다 보니 어느덧 편두통도 사라졌다.
북적거리던 아이들이 빠져나간 버스 정류장에 혼자 서 있자니 쓸쓸한 기분마저 들었다.
저 멀리서 버스가 오는 것이 보인다.
드문드문 승객들이 있는 버스에 올랐다.
맨 뒷자리로 가 앉았다. 버스기사님이 에어컨을 끄신 것 같았다.
버스 안의 높은 습도로 인해 사우나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난 창문을 가능한 활짝 열었다.
버스가 출발하자 열어 둔 버스 창으로 더운 바람이 들이쳤다.
그래도 바람이 불어주니 한결 나았다.
몇 정거장을 지나자 버스 창에 빗 방울이 부딪치기 시작했다.
난 뻣뻣한 창문을 낑낑거리며 닫았다.
급기야 억수 같은 비가 마치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 쏟아부었다.
내심 버스에서 내리기 전에 이 소나기가 그치길 바랬다.
그렇게 달리는 버스 창 너머 쏟아지는 소나기에 젖어 가는 도시를 멍하니 보고 있었다.
내려야 하는 정류장에 가까워질수록 난 조바심이 났다.
비야 그쳐라.. 제발 그쳐라.. 비를 맞고 싶지 않았던 나는 마음속으로 빌었다.
하지만, 비 내리는 정류장에서 내릴 수밖에 없었다. 집까지는 도보로 20여분을 더 가야 했다.
달려서 집으로 갈 것인가, 비를 맞으며 낭만을 즐길 것인가 고민하며 천천히 집으로 향했다.
그렇게 몇 걸음을 옮겨 가로등 하나를 지나자 다행히도 빗줄기도 차츰 사그라들었다.
그냥 비를 맞으며 천천히 집으로 걸었다. 집 어귀에 거의 다다랐을 땐 비가 그쳐있었다.
축축하게 젖은 바지가 가뜩이나 높은 불쾌지수를 급 상승시켰다.
저 모퉁이만 돌면 집이다.
그런데 환하게 비추고 있어야 할 가로등이 고장이 났는지 꺼져 있었고 그 골목길은 너무나도 어두웠다.
골목 모퉁이를 조심히 걸어 돌았다.
그때 나는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커다란 오렌지 빛 둥그런 불덩이가 마치 춤을 추듯 불 꼬리를 늘리고 휘억 휘억 공중을 헤엄치듯 모퉁이 집 대문에서 나와 어두운 하늘로 느릿느릿 날아 올라가고 있었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몇십 초가량을 그 이글거리며 마치 태양을 연상시키는 오렌지색 불덩이가 날아가는 것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같으면 스마트폰의 카메라로 촬영을 했을 텐데.. 이 글을 쓰고 있는 내내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게 어두운 구름 낀 밤하늘로 이글거리며 불타고 있던 불덩이가 사라지고도, 나는 한 동안 제자리에 서서 눈만 껌벅거리고 있었다. 내가 지금 본 게 뭘까 생각하며..
다음날 아침, 학교를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어제 일은 까맣게 잊은 채로..
대문을 열고 집을 나선 지 얼마 안돼 난 깜짝 놀랐다.
그 모퉁이 집 대문에 조등(弔燈)이 걸려 있었다.
난 묘하고도 기괴한 기분에 사로 잡혔다.
어제 내가 본 그 이글거리며 하늘로 올라간 오렌지 빛 불덩이가 혼불이었던 것 일까?
이 일은 내가 경험한 괴상한 일들 중 가장 또렷이 기억에 남아 있다.
나이가 든 지금도 그때 본 그 불덩이가 눈앞에서 생생하게 보이는 것 같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