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끝에 다다르면
이주일 후.
라니는 ‘뭐든지 구해 드립니다’라는 온라인 쇼핑몰을 딥레이어 웹에 개설하고 열심히 익명으로 SNS를 통해 홍보를 한다.
단품 거래가 어렵게 된 사회에서 소비자들은 많은 부담을 안고 벌크로 된 필수품들을 구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이 남은 제품들은 사용기한이 만료되어 버려지고 있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시장을 장악한 소수의 글로벌 대기업들은 사용기한을 가능한 짧게 만들어서 소비를 늘리는 마케팅 전략을 썼다. 그들은 더 많은 부를 축적하기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했다. 모든 세금의 90퍼센트를 그들로부터 받는 정부는 그들의 하수인에 불구했다. 모든 개인 간의 거래 또한 금지되어 있어서 쓰레기는 날로 쌓여만 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라니는 위험을 무릅쓰고 복제가 가능한 텔레포테이터를 개발한 것이었다. 물론 많은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이었다. 라니는 모든 물품의 주문을 받는 것은 딥레이어 웹에서만 하였고 결제는 보안이 가장 잘되는 암호화폐인 인샬로만 받았다. 자기 자신의 노출을 최대한 감추고 발각되는 것을 최대한으로 늦추기 위함이었다.
딥레이어 웹이란, 딥웹과 다크 웹보다도 더 복잡한 경로와 암호화된 코드들로 만들어진 새로운 인터넷 시스템으로 정부의 감시로부터 철저히 차단된 온라인 공간을 말한다. 구매를 원하는 소비자들은 SNS의 DM을 통해 라니로부터 웹에 접속할 수 있는 좌표와 아이디 및 비밀번호를 부여받아야만 접속을 할 수 있다. 라니는 철저한 보안을 위해 주문자의 신상 정보를 받아 경찰 서버를 해킹해 얻은 데이터들을 토대로 인증을 해 주었다. 다소 복잡하고 번거로운 절차지만 단품 구매가 가능했기에 저소득층과 돈을 아끼고자 하는 소비자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끊임없는 구매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엄청난 주문이 밀려들게 되어 힘이 부치게 된 라니는 미국의 ‘아메지(Homage)’라는 전 세계 메인으로 작동되는 인공지능을 해킹하여 자신이 만든 인공지능 ‘다뚫다’를 아메지가 가장 신뢰하는 보조 인공지능으로 인식하게 한 후 연동시키는 데 성공한다. 그로 인해, 좀 더 빠르고 간편한 인증절차를 거쳐 신규 구매자들에게 인증을 내주고 주문을 받을 수 있도록 시스템을 재구축한다.
라니의 다뚫다가 아메지를 통해 많은 정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아메지 회사 내의 보안관리팀에 의해 허가받지 않은 신용정보 데이터 처리 과정이 감지되었다. 그래서 아메지에게 해킹의 여부를 조사하게 한다. 그 과정에서 ‘다뚫다’ 라는 한국어 이름을 가진 인공지능이 접속되어 정보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을 확인한다. 아메지 회사와 미정보국은 한국의 경찰 정보국에 수사 협조를 구하게 되고 특별수사본부가 만들어진다. 팀장은 대한민국 경찰 정보국 해커 출신의 엄사문이 맞게 된다.
엄사문과 그의 팀은 아메지에 기생하는 다뚫다를 해킹하기 시작한다. 이를 눈치챈 라니는 우회 방어벽을 구축하고 엄사문의 추적을 따돌릴 준비를 한다. 그러는 동안에도 쓰나미가 밀려오듯 전 세계의 신규 가입자들의 인증과 주문이 쇄도한다. 라니는 불안하지만 어쩔 수 없이 노출된 다뚫다를 이용해 계속 아메지의 정보를 들여다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아메지의 회사는 다뚫다의 소유자를 잡기 위해 이를 방조하며 다뚫다의 정보 취득 및 활동 로그들을 빠짐없이 기록하고 분석한다.
그러는 한편, 엄팀장은 아메지로부터 다뚫다가 취득하는 정보들을 따라 역추적해 보지만 번번이 라니가 매일 새롭게 만들어 놓은 방어벽에 부딪혀 놓치고 만다.
라니는 쏟아지는 주문들을 소화하기 위해 믿을 만한 친구 몇 명에게 물품구매를 부탁한다. 친구들은 구입한 물품들 중에서 한 개씩만 가져와 어릴 적 자주 어울리던 동네 놀이터에서 은밀히 라니에게 전해주었다. 라니는 폐차장 컨테이너로 돌아와 텔레포테이터로 그것들을 소비자들에게 복제 전송을 해주고 있었다.
어느 햇살 좋은 날 오후.
라니의 구매대행을 해주던 친구들 중 하나인 박중호가 라니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폐차장에 벤틀리를 몰고 들어오며 클랙슨을 울린다. 번쩍이는 황금 빛깔의 벤틀리에서 내리며 중호가 놀란 라니의 아버지에게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셨어요. 어르신!”
“라니 친구인가?”
“네, 어르신, 라니 어디에 있나요?”
뭔가 못마땅한 듯한 표정과 말투로 라니 아버지가 “저기 가봐라” 하며 턱을 들어 스프레이로 알록달록하게 그라피티 된 컨테이너를 가리킨다.
“저거요!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허리를 꾸부정하게 연신 위아래로 흔들며 중호가 말한다.
“별, 미친놈 다 보겠네. 인사를 하는 거야 건들거리는 거야. 차는 어디서 저런 걸 타고는…, 쯧쯧.”
라니 아버지가 팔자걸음으로 거들먹거리며 컨테이너로 걸어가는 중호의 뒤통수에 대고 중얼거린다.
중호가 마치 듣기라도 한 듯 뒤를 휙 돌아보고는 다시 허리를 꾸부정하게 하면서 인사 같지 않은 인사를 건넨다.
라니의 컨테이너의 문을 확 열고 중호가 들어선다.
“어이~, 칭구 잘 있었냐!”
벽면에 빼곡한 모니터들을 바쁘게 들여다보던 라니가 돌아본다. 라니의 손은 연신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어! 너! 여기 어떻게 알고 왔어?”
“이게 돌았나? 내가 여길 왜 몰라! 고딩 때부터 알고 있었는데!”
“아..., 그런가?”
창백한 얼굴의 라니가 어색한 듯 흘러내린 앞 머리카락을 쓸어 올린다.
“친구가 왔는데 뭐, 커피 같은 거라도 좀 줘야 하는 거 아님?”
“그래, 잠깐 기다려봐..., 저기 앉아라.” 라니가 잡동사니로 가득한 소파를 가리킨다.
“짜샤! 좀 치우고 살아라. 아무리 바빠도 그렇지 이게 뭐냐! 돼지우리냐? 아니 돼지우리가 이보단 낫겠다!”
구시렁 거리는 중호를 힐끗 보고는 믹스커피 하나를 컵에 털어 넣는다.
“야! 그 컵! 깨끗한 거지?”
“아~, 거 말 많네! 깨끗해! 안 죽어.” 하며 라니가 정수기에서 온수를 받는다.
커피믹스의 껍데기로 휘휘 저으며 중호에게 건네고는 믹스커피 껍데기를 쪽쪽 빨더니 쓰레기 통으로 휙 던진다. 쓰레기가 가득한 쓰레기통에 툭하고 떨어진다. 그러자 간신히 쌓여있던 쓰레기들이 우루룩 쏟아진다.
“아! 이 더러운 쉐키!” 하며 중호가 잡지들과 과자 봉지들로 수북한 탁자 위를 광나는 구둣발로 쓰윽 밀어 바닥으로 떨군 후 마시던 커피 컵을 내려놓는다.
그리고는 주머니에서 전자담배처럼 생긴 물건을 꺼내 콧구멍 속에 넣더니 ‘쓰흡’ 하고 흡입한다. 전자담배처럼 생긴 물건을 탁자 위에 툭하고 던진다. 이내 고개를 좌우로 가볍게 젓더니 몸을 한번 부르르 떤다. 초점 잃은 붉게 핏발이 선 눈으로 휙휙 컨테이너 안을 둘러본다. 라니는 중호가 지금 마약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그거 뭐냐?”
중호의 붉게 변한 눈동자가 라니를 노려본다.
“이거 조~은거 있다! 해볼래?”
“거 드럭이지!”
“크크크, 뭐 비슷한 거지...”
“해봥!” 중호가 전자담배처럼 생긴 물건을 라니에게 집어던진다.
“지금은 별로...” 라니는 두 손으로 받은 물건을 책상 위에 올려놓는다.
“근데, 어쩐 일로 온 거야?”
“어~엉, 나, 너 일 도와주는 겅 이제 더 몬할 것 같아성 미안하기도 하공 그래서엉...”
“그래? 큰일이네...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없는데...”
“미앙하다. 칭구양... 으헤헤하하하아하아” 중호가 술에 취한 듯 꼬인 혀로 몸을 흔들거리며 말하다 말고는 미친 듯이 웃는다.
“야, 괜찮냐?”
“으엉, 괸아너. 할 말도 해꼬 엉굴동 봐꼬, 일해랑 틴구야 난 간당! 헤헤헤.”
비틀거리며 중호가 일어선다.
그런 중호를 부축이며 라니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진짜 괜찮아?” 한다.
“쟈슥, 괴안엉! 으헤헤헤.” 컨테이너 문을 발로 ‘쾅’ 차 열고는 흔들흔들 라니의 부축을 받으며 벤틀리로 걸어간다.
“저거 보이냥! 저게 내 거 다앙~, 크크크”
“어! 신형 벤틀리네! 멋지다!”
중호가 입술을 삐죽 내밀며 자신을 부축하던 라니를 빨갛게 충혈된 눈빛으로 쳐다본다. 마치 불쌍한 노숙자를 보는 듯한 눈빛이다. 순간, 라니는 내장 깊은 곳에서부터 짜증이 올라오는 것을 느낀다. 중호의 신형 벤틀리 때문인지 일을 도와줄 친구 하나가 없어져서 그 일을 감당해야 하는 것 때문인지 그 자신조차 헷갈리는 감정이다. 아니, 어쩌면 둘 다 일 수도 있겠다.
라니의 부축을 받으며 벤틀리에 앉은 중호가 악수를 청하더니 뭐라 알 수 없는 말로 히죽거리며 중얼댄다.
그리고는 햇빛에 번쩍거리는 황금색 벤틀리를 몰아 폐차장을 아슬아슬하게 빠져나간다.
일을 하시던 라니의 아버지가 라니를 부른다.
“저 놈 뭐 하는 놈이야?”
“고딩때 친구예요.”
“저런 놈하고 어울리지 마라. 저런 겉 멋만 든 놈들은 한결 같이 안 좋아.”
아버지의 길어지려는 말을 끊으며 라니가 말한다.
“네, 걱정 마세요. 이제 더는 볼일 없을 것 같아요. “
컨테이너로 돌아온 라니는 책상 위에 놓인 전자마약을 물끄러미 내려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