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끝에 다다르면
한 달 가까이 중호의 자리를 메우느라 동분서주하던 라니는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일을 하고 있다.
컨테이너 안으로 산더미 같은 구매품들을 들고 낑낑거리며 라니가 들어선다.
엄청난 주문을 처리하기도 모자란 시간에 바짝 따라붙는 경찰의 추적을 따돌리기까지 해야 하는 라니는 지칠 대로 지쳐있다.
구매한 물품들을 컨테이너 바닥에 툭 내려놓고는 소파 위의 쓰레기들을 손으로 툭툭 쓸어내더니 그대로 쓰러져 눕는다.
“아~ 지치네. 무슨 방도라도 세워야 하는데.., 이대로는 감당이 안돼, 더 이상..”
소파 끝에 힘없는 라니의 머리가 바닥을 향해 뒤로 젖혀지며 그의 시선이 책상 아래에 떨어져 있던 중호의 전자마약에 꽂힌다.
멍한 눈으로 바라보던 라니가 혼자 중얼거린다.
“저게..., 저기에 있었네.”
다리를 차올리며 벌떡 일어서더니 책상 쪽으로 걸어간다.
허리를 숙여 책상 밑에 떨어져 있는 전자마약을 집어 올린다. 뽀얗게 내려앉은 먼지를 후후 몇 번 불어 털어내고는 바지에 쓰윽쓰윽 문지른 후 전자마약을 유심히 들여다본다.
그리고는 중호가 했던 것처럼 코에 가져가 살짝 조심스레 흡입해 본다.
‘켁켁켁’
‘에취’
“이게 뭐야!” 하며 전자마약의 액상이 들어있는 카트리지의 양을 들여다본다.
그 순간, “어? 이상한데..., 우와! 기분이! 내 몸이 부웅 뜨네!”
“하하하하하하”
마약에 취한 라니는 쓰레기와 물품들이 한대 뒤엉켜 있는 바닥에 그대로 쓰러져 끊임없이 웃는다.
낡은 컨테이너 창밖이 붉게 물들고 있을 무렵,
라니가 깨어난다.
어둑해진 컨테이너에 화들짝 놀란 라니가 시계를 본다.
“아..., 이런! 시간이 이렇게 돼버렸네. 물건 보내야 했는데, 젠장!”
컴퓨터 앞에 앉은 라니가 구매자 리스트와 목록을 빠르게 확인하며 쌓여있는 물건들을 분류한다.
그러다 문득 자신의 몸 상태가 무척 좋다는 것을 눈치챈다.
“어? 몸이 엄청 가볍네! 기분도 상쾌한 것 같기도 하고.”
라니의 시선이 전자마약을 응시한다.
그리고는 쌓여있는 물건들을 바라다본다.
스마트 폰 카메라로 전자 마약의 카트리지를 찍는다.
“다뚫다!”
“네, 주인님”
“사진 찍은 거 검색해 봐.”
잠시 냉각기 팬의 소음이 커지다가 이내 잠잠해진다.
“퓨어데빌(Pure Devil)이라는 조직이 제조 판매하는 신종마약으로 위드(Weed)와 메타암페타민(Methamphetamine)의 합성성분을 주성분으로 하는 신종 마약으로 증류 기체를 흡입하는 방식의 마약입니다.”
“금액과 구매루트 알아봐”
“금액은 0.1밀리그램 함유 카트리지가 첫 구매 시 가상화폐 인샬로 10인샬이며 재구매 시마다 5인샬이 추가됩니다. 구매 루트는 QSC(Quick Secret Communications) 앱으로만 가능하며 인증절차가 필요합니다.”
“퓨어데빌에 대해서 알아봐.”
“퓨어데빌은 현재는 표면적으로는 전자담배 퓨어마인드(Pure Mind)란 제품을 생산 및 판매하며 합법적인 기업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퓨어데빌은 제바스라는 인물이 리더로서 멕시코에 본사를 둔 거대 마약 카르텔로 현재 전 세계적으로 분포되어 전자마약 시장을 장악한 거대 범죄 기업이며 GLA(Global Leadership Association) 20 글로벌 기업의 수장들과도 네트워크가 있습니다. 현재 임시 세계 정부 13 수장 중 한 사람입니다.”
다뚫다가 모니터에 제바스의 얼굴과 12 수장들의 얼굴을 띄운다.
“흠~, 모험 한번 해 봐!”
라니가 전자마약에서 카드리지를 분리해 자세히 들여다본다.
그리고는 중호에게 전화를 건다.
신호음이 잠시 울리더니 이내 음성 사서함으로 넘어간다.
“중호야 잘 있냐! 나, 라니, 이거 들으면 전화 줘라.”
전화를 끊은 라니가 분류해 놓은 물건들 중 하나를 텔레포테이터에 넣고 전송을 한다.
모니터에서 순차적으로 보이는 물품들과 좌표들로 한참을 텔레포테이팅하던 중 라니의 전화가 울린다.
시간은 새벽 3시를 막 넘어가고 있었다.
“어~이, 딩구~, 어잉 이루로 전활 주셔낭”
혀가 꼬인 중호의 목소리가 블루투스 이어폰 너머로 들려온다.
“너, 괜찮냐?”
“엇! 괴안징! 왜!”
“너 지금 어디냐?”
“야! 이 쉐키양! 외앵 전와 했냐고옷!”
“너 혹시 지금 카트리지 있냐?”
“어! 너 내 전마 했냐? 조으지! 내 전마 어디 갔나 헤터니 크크크 거기 있엉농!”
“카트리지 있어 없어! 빨리 말해! 바쁘다.”
“미팅너마아! 업겡냥? 크크크크크”
“그래! 그럼 그거 혹시 종류별로 있으면 다 가져와, 지금 빨리. 돈은 트리플로 줄게”
“엉! 그랭? 잠망 기둥깅”
중호가 전화를 끊는다.
라니는 보내던 물품들을 다시 텔레포테이팅 하기 시작한다.
컨테이너 창밖으로 새벽의 빛이 스며 들어온다.
밖에서는 우웅거리며 아버지의 포클레인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드뎌! 이게 마지막 물품 전송!”
라니가 힘 빠진 손으로 엔터키를 툭 누른다.
그 순간 다뚫다의 경보가 울린다.
“아씨! 이 개 같은 것들이 다시 접근했네!”
경찰 정보국의 특별수사본부의 엄사문 팀장과 그의 팀원들이 다뚫다를 통해 라니의 좌표에 가깝게 접근을 시도 중이다.
“팀장님! 이놈 보통이 아닌데요. 이번엔 아예 사라졌어요!”
“응수, 너는 어때?”
“제 컴에도 사라졌습니다.”
“난 아직 보인다 이 새끼. 오늘은 이 놈 잡는다!”
빠르게 키보드를 두드리는 엄사문의 컴퓨터에 꽂힌 USB 메모리스틱에선 LED 불빛이 연신 반짝인다.
“다 됐어! 이제 잡았다!”
엄사문이 엔터키를 힘차게 누르자 특별수사본부 안의 모든 컴퓨터가 셧다운 된다.
“뭐야! 무슨 일야!” 팀원들이 소리친다.
엄사문이 의자의 등받이에 기대며 맥 빠진 목소리로 말한다.
“하! 이놈 봐라..”
잠시 허탈한 모습으로 허둥대는 팀원들을 지켜보던 엄팀장의 눈초리가 매섭게 변한다.
그리곤 자리에서 일어선 엄팀장이 어수선한 팀원들을 향해 소리친다.
“다들 조용히 하고 각자 컴들 확인해봐. 재정비해서 다시 간다!”
특수본이 술렁인다.
라니의 컨테이너 문이 열린 건 해가 중천에 떴을 무렵이다.
“칭구! 내가 보고 싶으셨남?”
중호가 컨테이너 문을 열고 들어선다.
“야! 너 왜 이제와!”
“미안! 내가 깜박 잠이 들어서 크크크”
중호가 어색한 표정으로 꾸부정한 허리를 하고 오른쪽 눈을 오른손으로 가리며 거수경례를 한다.
“다 가져온 거지?”
라니가 재촉한다.
“워워! 이 친구 맛 들렸네!”
라니가 두툼하게 채워진 검은색 클러치를 중호에게 던진다.
“이제 가져온 거 거기 내려놔라!”
클러치 내부를 들여다보더니 자크를 닫으며 “오! 이거 원래 가격보다 많은데!”
“물건 놓고 이제 가라! 너 바쁘잖아! 그리고 이건 절대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라!”
“안돼! 물건 나간 건 다 리포트해야 해 수량 틀리면 나 죽어 빙신아!”
“니가 했다고 해! 그리고 그 돈에서 채워 넣으면 되잖아.., 바보냐!”
“어! 크크크 그러면 되나?”
"그래서 더 넣은 거야. 나도 바쁘니까 이제 가라.”
“오키! 자 이거 놓고 간다! 설명은 필요 없냐?”
“설명도 필요해?”
“카트리지 색상별로 기능이 다 다르다 이 마린이 쉐이야!”
“어! 그렇구나 다뚫다한테 말해두고 가!”
“아참! 다뚫다가 있었지. 아마 그 괴물은 다 알 수 있을 거다!”
“그럼 수고하고 또 연락할게. 잘 가라 친구!”
라니가 냉정하다 싶을 정도로 의자를 휙 돌려 모니터를 바라보며 키보드를 두드린다.
중호는 그런 라니는 아랑곳하지 않고는 테이블 위 쓰레기들을 더럽다는 듯 발로 쓰윽 밀쳐내고 검은 비닐봉지를 툭 던져놓듯 내려놓는다. 그러고 나서 바쁘게 물건을 전송하고 있는 라니의 등에 대고 “나 간다!” 하고는 나간다. 잠시 후 벤틀리의 묵직한 엔진음과 함께 폐차장을 떠난다.
“오늘로 이 잡동사니들 전송도 다 끝이다” 라니가 물건들을 전송하며 짜증 난 목소리로 혼자 중얼거린다.
컨테이너 창밖에 어둠이 짙어질 무렵 라니의 마지막 물건 전송도 끝이 난다.
“아~ 드뎌 완료!” 기지개를 켜며 라니가 일어선다.
“이게 그건가?” 중호가 놓고 간 검은 비닐봉지를 들여다본다.
안에는 여러 개의 색색의 박스가 들어있다.
하나씩 꺼내 보는 라니,
“오~, 색깔이 예쁜데, 뭐가 이렇게 많아!”
13개의 형형색색의 박스들을 일렬로 늘여 놓고는 하나씩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다뚫다, 찍은 사진들 검색해.”
잠시 냉각팬의 ‘웅웅’ 거림이 있은 후 다뚫다의 브리핑이 시작된다.
“노란 박스는 엘로라 불리며 엑시터시 계열이며 가격은 최초 구매가 3인샬 이후 1인샬이 추가됩니다. 녹색 박스는 팟으로 불리며 마리화나 추출물로써 최초 가격은 5인샬 이후 1인샬이 추가됩니다. 다음은..”
“그만, 됐어. 내가 쓸 것도 아니고.., 그것들 다 정리해서 20퍼센트 저렴한 가격으로 현재 고객명단의 고객들한테 뿌려, 그리고 일반 물품 구매대행 중단도 알리고.”
라니가 비장한 표정으로 일렬로 꺼내 놓은 카트리지들을 다시 검은 비닐봉지에 넣는다. 그리고는 벽면 가득한 모니터들 중 정중앙에 설치되어 있는 모니터 뒤쪽의 거치대 위에 숨겨 둔다.
“낼부터가 진짜 시작인가!” 라니의 지친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 번진다.
커피 한잔을 내린 라니가 소파에 힘없이 앉는다.
테이블 위에 커피잔을 올려 둔 멍한 눈의 라니가 옆으로 쓰러져 소파에 눕는다.
그리곤 이내 잠에 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