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끝에 다다르면
와장창 하는 소리와 함께 유리문이 부서져 바닥에 흩어진다.
검은 정장을 입은 건장한 사내들이 로스앤젤레스 빈민가의 한 인터넷 카페 출입문을 박살내고 진입한다.
놀란 카페 주인이 카운터 아래로 몸을 숨긴다.
손님들도 놀라 비명을 지르기도 하고 웅성거리며 그들을 쳐다본다.
십여 명의 건장한 사내들이 손님들의 얼굴을 일일이 사진과 대조하고 있다. 구석자리에 있던 차림새가 초췌한 백인 남자 하나가 조심스레 의자에서 내려와 뒷문 쪽을 향해 조용히 바닥을 기어간다.
사내들은 아직 그 남자를 눈치채지 못한 듯하다.
몸을 부들부들 떨며 힘겹게 기어가던 그 남자가 뒷문의 손잡이를 잡고 조용히 여는 순간 문이 밖으로 활짝 열리면서 그 사내가 밖으로 튕겨져 나간다. 쓰러진 남자의 눈앞에 반짝이는 검은 구두가 다가온다. 그 구두 위로 쓰러진 남자의 얼굴이 비친다.
위를 천천히 올려다보는 순간 그 남자가 공중으로 들어 올려진다. 그리고 이내 콘크리트 바닥에 내동댕이 쳐진다. 그러길 수 차례 반복된다.
신음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쓰러진 남자를 건장한 검은 정장의 백인과 흑인 사내들이 주위를 둘러싼 채 내려다보고 있다. 그 사이를 비집고 검붉은 정장과 검붉은 구두를 신은 약간 마른 듯한 그러나 다부져 보이는 체형의 백인과 동양인 혼혈 남자 하나가 들어선다. 그러자 그 검은 정장의 사내들이 일제히 모두 비켜선다.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그 검붉은 정장의 사내가 쭈그려 앉아 쓰러져 가냘프게 신음하는 남자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이 사람이 우리가 찾는 그 고객님들 중 하나 맞아?”
사내의 날카로운 쇠 긁는 목소리가 싸늘하게 게토(Ghetto)의 골목에 퍼진다.
“아직 확인하진 않았습니다만..”
검붉은 정장의 사내의 반쯤 돌린 얼굴에서 희번덕거리는 검붉은 눈동자가 올려다본다. 그가 레드라 불리는 퓨어데빌의 최상위 레벨의 히트맨이다.
“죄송합니다!” 검은 정장의 사내들이 모두 동시에 크게 외치며 뒷짐을 진다.
“니들, 만일 이 사람이 우리의 순수하고 숭고하신 고객님이면 다 죽여버린다. 왜? 고객이 있어야 우리도 있으니까 이해했지?”
검붉은 정장의 사내가 천천히 일어선다.
뒷짐을 진 사내들이 조심스레 뒤로 물러서며 다시 한번 크게 외친다. “Yes sir!”
“그래, 이 분 데려가고, 이제 그만 우리는 사라져 주자.”
검은 정장의 사내들이 쓰러져 신음하는 남자를 검은 밴 차량에 던져 넣듯 태우고 나서 검붉은 정장의 레드가 탄 붉은색 고급 세단을 따라 떠난다.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고층빌딩의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붉은 세단과 검은색의 밴 차량들이 주차장 통로를 따라 빙빙 돌아 내려간다.
한참을 내려가던 차량들이 멈춰 서고 밴들에서 잡아온 남자들과 여자들이 어두운 통로로 끌려 들어간다.
끌려가는 사람들을 무심히 바라보던 레드가 아무도 없는 어두운 공간에 말한다.
“난 이쯤에서 퇴근!”
그리고 자신의 세단을 몰고 지하 주차장을 빠져나간다.
이곳은 퓨어데빌의 전 세계 마약 판매시장의 30퍼센트 이상 매출이 나오는 미국 LA지사 건물의 깊숙이 숨겨진 지하공간이다. 이곳은 그들의 범행들을 은닉하고 전 세계 조직원들을 관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지사 중 가장 큰 규모이기도 하다.
또한 배신한 조직원들의 처형부터 마약대금을 사채로 결제한 북미지역 구매자들이 그 빚을 갚지 못하면 끌려와 장기를 적출당하는 곳이기도 했다. 마치 판옵티콘 레이아웃(Panopticon Layout)식 감방 같은 구조로 2층으로 된 수많은 방들이 원형으로 둘러져 있고 그 원형의 중심에는 무대 같은 것이 있어서 그곳에서 모든 처형이 이루어진다. 처형이 이루어질 때 각 방들에 갇힌 사람들은 모든 과정을 강제적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는 구조로 되어있어 잡혀 온 사람들을 더욱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한 사람씩 중앙 처형 무대에서 취조를 받고 있다.
“이름이 드레이 헷 맞습니까?”
건장한 체구의 스킨헤드에 길게 기른 붉은 수염을 가진 거대한 체구의 백인 사내가 처형대 중앙 의자에 묶여 겁에 질려있는 라틴계 남자를 내려다본다.
“네..” 라틴계 남자가 간신히 소리를 내어 대답한다.
“퓨어데빌 딥레이어 웹사이트의 아이디가 듀크 맞습니까?”
“네..”
“평균 삼일에 한 번씩 구매하던 기록이 있는데, 근래 구매 내역이 없습니다. 이유가 뭐죠?”
스킨헤드의 거대한 백인 사내의 엷은 미소 속 광기 어린 푸른 눈동자가 서늘하다.
“그.. 그건.. 약을 끊으려 했기 때문에...”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스킨헤드 사내가 의자에 묶인 남자의 콧속을 들춰본다.
“쯧쯧, 신선한 이 붉은 반점들은 뭘까요?”
“이.. 이건.. 제가 비염이 있어서..”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의자에 묶인 사내가 뒤로 밀려 넘어간다.
“켁켁” 얼굴이 붉게 물든 사내가 호흡을 하려고 입에서 붉은 피를 연신 내뱉는다.
주변에 있던 검은 정장의 사내들이 의자를 번쩍 들어 원래 있던 자리로 옮겨 놓는다.
“다시! 카트리지는 어디서 구매한 겁니까?”
얼굴이 피로 붉게 물든 사내가 겁에 질린 목소리로 대답을 한다.
“새로 알게 된 곳에서 구했습니다... 왜냐면 훨씬 싸서.. 죄송합니다. 살려주세요!”
스킨헤드 사내가 손바닥에 묻은 피를 손수건으로 닦으며 나지막이 명령한다.
“이 분 풀어 드리고 카랜에게 데려가”
“네, 알겠습니다.”
검은 정장의 사내가 의자에서 겁에 질린 라틴계 사내를 풀어 질질 끌며 데리고 간다.
다른 검은 정장의 사내들이 다른 사람 하나를 피로 붉게 물든 의자에 앉히고 두 팔을 의자 손잡이에 두 다리는 의자 다리에 묶는다.
그리고 스킨헤드 사내가 미소를 띠며 다가온다.
사방이 검은 벽으로 된 작은 방으로 끌려온 라틴계 사내가 코와 입에서 흘려내리는 피를 닦으며 의자에 앉아 있다.
“자, 이제 시작할 겁니다. 겁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협조만 잘하시면 빨리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실 겁니다.” 부드러운 남자 목소리가 천장에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온다.
목소리의 주인은 인도계 아메리칸인 카랜이라 불리는 퓨어데빌의 헤드 해커다. 인터폴, FBI와 CSIS의 추적을 피하는 것이 그의 주 업무다. 또한 카랜은 딥레이어 웹의 창시자이자 관리자이다. 딥레이어 웹에서는 ‘솔로몬’이라 일컫어지는 신 같은 존재이다.
“네.” 라틴계 남자가 안심한 듯 울먹이며 대답을 한다.
“그 사이트 좌표가 어딥니까?”
“딥레이어에서 505.6.St.SW.UKNW입니다.”
“네, 잠시만요.”
묵직한 침묵이 검은 방에 흐른다.
“자, 아이디요.”
“듀크”
“패스워드요.”
“갓듀크드레이킹”
“풋” 스피커에서 터진 웃음을 참는 소리가 들린다.
자괴감에 빠진 라틴계 남자가 고개를 숙인다.
잠시 후, 방의 문이 열리고 검은 정장의 건장한 사내 둘이 들어온다.
“정중히 모셔다 드리세요.” 스피커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울린다.
검은 정장의 사내들의 부축을 받으며 라틴계 남자가 힘없는 걸음으로 방을 나간다.
“어디 보자 어떤 놈인지.”
카랜이 카트리지 주문을 넣으며 전송받을 텔레포테이터의 전원을 올린다. 그 텔레포테이터는 일반적인 것들보다 조금 더 크고 GPS 같은 장치가 달려있다.
라니를 위협할 강력한 새로운 적이 등장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