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끝에 다다르면
검은색 세단이 미끄러지듯 라니의 홍대 건물 앞에 도착한다.
차문을 열고 나온 레드가 라니의 3층 건물을 훑어 올려본다.
“I’ve got a hunch! 촉이 딱 왔어.”
뒤따라 내린 나 팀장이 징그러운 미소를 띤 레드의 얼굴에서 섬뜩함을 느낀다.
1층 피시방의 문을 열고 들어서는 레드가 고개는 움직이지 않은 채 두 눈동자만으로 빠르게 내부를 스캔하며 카운터를 향해 천천히 그러나 당당하게 걸음을 옮긴다.
나 팀장은 레드의 뒤를 조심스레 따른다.
“헬로~, 여기 사장님 어디 있어?”
“사장님이요? 왜 그러시죠?”
“뭣 좀 물어보려고 그래요 아가씨.” 레드의 뒤에 서있던 상냥한 표정의 나 팀장이 레드의 옆으로 나서며 말한다.
“지금 안 계신데.., 잠시만요. 전화함 해볼게요.”
어디론가 전화를 거는 점원을 물끄러미 레드와 나 팀장이 바라보고 서있는다.
“여보세요. 저 현미요. 여기 사장님 찾는 분들께서 오셨는데요.”
점원이 나 팀장을 쳐다보며 묻는다 “어디서 오셨다고 전할까요?”
“인터폴입니다.” 레드가 당황한 나 팀장 대신해 부드러운 미소로 답한다
“인터폴이라는데요.”
“네? 네. 네. 그럴게요.” 전화를 끊은 점원이 카운터 옆쪽에 있는 소파를 가리키며 “이쪽에서 잠시만 기다리시겠어요?”
“네, 그러지요.” 나 팀장이 어색한 표정으로 소파에 앉는다.
레드는 카운터 앞에 그대로 서서 점원의 행동을 잠시 바라다보다 뒤돌아서서 피시방 내부 구조와 손님들을 훑어보며 서있다.
“커피 같은 거라도 드릴까요?” 점원이 앉아있는 나 팀장에게 묻는다.
“네, 주시면 감사합니다.”
서있던 레드가 고개를 반쯤 돌리고는 말한다. “나도”
나 팀장이 점원을 바라보며 미안하다는 눈짓을 보낸다.
기분이 약간 상한 점원이 뒤돌아서 있는 레드를 힐끗 노려보더니 주방 안으로 들어간다.
받아 들은 커피를 마시는 레드와 나 팀장.
잠시 후 피시방의 문이 열리고 근육질의 큰 체형이지만 배가 좀 나온 중년의 남자가 들어선다.
조금 쌀쌀한 초봄의 날씨임에도 민소매 티셔츠를 입은 그 중년 남자의 양팔에는 문신이 선명하게 휘감아져 있다.
“현미 씨, 이 분들이신가?” 카운터에 다가서며 그 중년의 남자가 주방에 있는 점원을 부른다.
“당신이 여기 사장이야?” 레드가 상체를 그 남자 쪽으로 돌려 한 팔을 카운터에 올리고는 묻는다.
“네, 제가 여기 사장입니다만, 무슨 일이시죠?”
나 팀장이 마시던 커피를 계산대 안쪽에 밀어 놓으며 일어선다.
레드가 그 중년의 남자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여기 서버 어디 있어?” 한다.
레드의 언행에 불쾌해진 피시방 사장이 문신이 가득한 팔을 보란 듯 올려 팔짱을 끼며 짝다리를 짚는다.
“왜 그러시냐니까요?”
“그냥 말해 지금 상황 나쁘지 않잖아.”
“뭐야? 당신들 진짜 인터폴 맞어?”
피시방 사장의 갑작스러운 언성에 주방에 있던 점원이 나온다.
“경찰인지 아닌지 내가 어떻게 알어! 신분증 먼저 보여주고 어! 그리고 협조를 정중히 구해도 도와줄까 말까 한데, 바쁜 사람 불러 놓고는 이게 뭡니까!”
뻘쭘히 서있는 나 팀장을 향해 피시방 사장이 소리친다.
“어..., 네.. 그러니까 그게..” 당황한 나 팀장이 말을 얼버무리며 레드를 바라본다.
피시방 사장의 큰 언성에 손님들도 하나 둘 헤드셋을 벗으며 카운터 쪽을 주시한다.
카운터에 걸터있던 상체를 바로 세우며 레드가 피시방 사장을 내려다본다.
“서버 어디 있어? 서버가 뭔지는 알지?”
“이 사람들이! 당신들 영장 있…”
사장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레드가 사장의 목을 움켜쥐고는 한 손으로 번쩍 들어 올린다.
놀란 점원과 손님들이 웅성거린다.
몇몇 10대로 보이는 손님들은 이틈을 타 돈을 내지 않고 몰래 피시방을 빠져나간다.
“이제 내려 줄 테니 서버 어디 있는지 얌전히 말해.”
레드가 사장을 바닥에 내리꽂는다.
바닥에 쓰러졌던 사장이 곧바로 벌떡 일어선다.
“경찰에 신고해!” 사장이 목을 쓸어 만지며 점원에게 말한다.
전화기를 들어 신고하려는 점원의 전화기를 나 팀장이 가로챈다.
“서버 어디 있어?” 레드가 나긋한 목소리로 말한다.
“이 새끼들이 미쳤나? 내가 누군지 알어!” 하는 순간 건장한 체구의 피시방 사장이 공중으로 부웅 떠 오르더니 한 손님이 앉아 있던 옆자리 컴퓨터 위로 날아가 떨어진다.
놀란 손님이 비명을 지르며 벽에 붙어선다.
“너! 서버 어디 있는지 알어?”
레드가 벌벌 떨고 서있는 점원에게 미소 띤 냉한 얼굴로 물어본다.
“저는.. 잘 몰라요..”
“흐.., 저 새끼가 방심한 틈에..” 사장이 무릎을 짚고 일어선다.
그리고는 의자를 집어 들어 레드에게 던진다.
피시방에 있던 그 누구도 눈치챌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레드가 날아오는 의자를 피해 사장에게 다가간다. 던져진 의자가 카운터에 부딪치며 큰 소음과 함께 바닥에 나뒹군다.
어느샌가 레드가 사장을 다시 한번 들어 올려 사정없이 던진다.
‘와르르’ 밀려 넘어지는 컴퓨터들과 손님들 그리고 내동댕이 쳐진 사장이 한대 뒤엉키며 피시방이 아수라장이 된다.
놀란 손님들 대다수가 피시방을 빠져나갔지만 몇몇 학생들이 스마트폰으로 그 상황을 촬영하고 있다.
나 팀장이 빠르게 몸을 움직여 촬영하고 있는 스마트폰들을 빼앗는다.
폰을 빼앗겨 항의하는 학생들에게 나 팀장이 수표 두장씩을 건네며 밖으로 내 보낸다.
백만 원권 수표 두장씩을 받은 학생들은 아무 말없이 밖으로 나간다.
나 팀장은 수거한 폰들을 들고 있던 가방에 넣으며 “큰일이네, 이거 어떻게 수습하지..” 하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부서져 엉망이 된 피시방을 보며 출입문을 막고 서 있다.
“서버 어디 있어? 이번에도 이상한 말 지껄이면 죽여버린다.” 레드가 쓰러져있는 사장에게 다가가 쪼그려 앉으며 말한다.
“지하에 있다.”
피가 흐르는 머리를 한 손으로 지혈하며 피시방 사장이 힘없이 말한다.
“지하는 어떻게 가?”
“밖으로 나가면 왼쪽에 계단이 보이는 출입문이 있다.”
고개 숙인 사장이 흔들리는 목소리로 대꾸한다.
출입문을 열고 나가는 레드를 뒤로한 채 나 팀장이 주저앉아 있는 사장 앞에 빠르게 명함 하나를 내려놓고는 “경찰에 신고하지 마시고 연락 주세요. 두배로 배상하겠습니다.” 하고는 빠른 걸음으로 레드를 따라 나간다.
3층에 있던 라니가 밖에서 나는 소란스러운 소리들과 어수선한 분위기에 창밖을 내다본다.
웅성거리는 행인들이 모여 피시방을 보고 있다.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라니가 CCTV 모니터를 들여다본다.
그리고는 지하실 입구에 한 남자가 서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뭐지?” 라니가 CCTV 카메라를 줌인해 그 남자의 얼굴을 클로즈업한다.
“처음 보는 사람인데.., 경찰 같지는 않고.“
모니터에 클로즈업된 레드의 살기 어린 검붉은 두 눈이 라니를 노려본다.
겁에 질린 라니가 3층의 모든 서버의 전원을 내리고는 자신의 노트북, 백업된 외장 SSD(Solid State Drive), 그리고 복제 가능한 텔레포테이터를 분주히 분리해서 챙기기 시작한다.
지하실 입구 문이 잠겨있고 CCTV가 사각지대 없이 설치된 것을 확인한 레드가 2층으로 올라간다. 나 팀장도 따라 올라간다.
라니는 주요한 장비들만을 챙겨 준비해 둔 커다란 배낭과 하드케이스에 서둘러 넣는다.
그리고 다뚫다를 건물 내에 설치된 모든 서버와 네트워크 망에서 제거하기 시작한다.
2층에 도착한 레드가 오른쪽에 있는 IT회사의 유리문을 열어보려 하지만 문이 잠겨있다.
맞은편에 열려있는 게임회사로 들어선다. 안내데스크에서 젊은 여성이 가벼운 미소로 응대한다.
“안녕하세요.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사장 만나러 왔어.”
레드의 퉁명스러운 말투에도 미소를 잃지 않으며 애써 다시 묻는다. “만나실 약속이 되어있으신가요?”
“아니.”
“그럼, 조금 힘드실 것 같습니다.”
“간단한 거 하나만 물어보려고 합니다.” 레드의 뒤에 서있던 나 팀장이 불쑥 끼어든다.
“아휴, 깜짝이야. 무슨 일로 오신 거죠?” 갑자기 나타난 나 팀장에 안내데스크 직원이 놀라며 뒤로 물러선다.
“사장님이나 서버 관리자에게 문의가 있어서 왔습니다.” 예의 바르게 대답하는 나 팀장을 뒤로 밀쳐내며 “서버 어디 있는지 알아?” 레드가 귀찮다는 어조로 되묻는다.
“서버는 왜…?”
“시간 아까우니까, 서버 어디 있는지 모르면 서버 관리자라도 나오라 해.”
레드가 윽박지르 듯 노려보며 안내데스크의 젊은 여성을 향해 얼굴을 들이민다.
“아! 잠.. 잠시만요.”
인터폰 수화기를 들고는 내선 번호를 확인하며 버튼을 누른다.
다뚫다의 모든 연결을 끊은 라니가 사무실 내부 정가운데에 노란 십자 표시 위에 원통형의 검은 물체를 놓아두고 허리를 숙여 벽면 아래의 스위치를 누른다.
그러자 천장 전체가 아래로 천천히 내려온다.
라니는 이런 날을 대비해 천장에는 두꺼운 강철판과 폐차장에서 자동차를 압착시킬 때 사용하는 강력한 프레스 기계장비를 설치했다. 그리고 그 위에 강력한 전자석을 설치해 두었다. 바닥 또한 강철 재질로 마감을 해두었다.
이는 전자석을 설치해서 일차적으로 가져가지 못한 장비들의 기록을 지우고 이차적으로는 천장의 프레스가 짓눌러 모든 장비들을 물리적으로 파괴하기 위함이다.
바닥 정가운데 놓아둔 원통의 장비는 전자기 펄스(Electromagnetic Pulse: EMP)를 발생시키는 장치다. 그리고 천장에서 서서히 내려오는 강철판의 정가운데에는 동그란 구멍이 나있다. 프레스가 바닥까지 짓누르더라도 가운데 놓아둔 EMP장치는 파괴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라니가 도주 시 혹시 모를 건물 주변의 추적장비들과 통신장비들을 불능 상태로 만들기 위함이다.
라니가 계획해 둔 퇴각 준비를 마치고 건물의 뒤쪽 창문에 설치해 둔 자동 제동 하강기로 이동한다.
자동 제동 하강기와 하드 케이스를 연결한 라니가 배낭을 둘러맨 후 마치 핵폭탄 발사 버튼처럼 생긴 빨간 버튼을 주먹으로 내려치고 나서 창밖으로 뛰어내린다.
안전하게 지면에 도착한 라니는 배낭과 연결된 고리를 해제한 후 자신의 낡은 SUV에 올라 빠르게 빠져나간다.
‘우르릉 콰지직’ 하는 커다란 소리와 함께 건물이 잠시 흔들거린다.
놀란 안내데스크의 직원과 나 팀장이 주저앉는다.
레드가 빠르게 밖으로 나가 3층을 향해 계단을 뛰어오른다.
‘쿠웅’ 엄청난 굉음과 함께 3층 출입문 아래로 먼지들이 뿜어져 나온다,
잠시 주춤하던 레드가 아래층으로 뛰어내려 가며 자신의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스마트폰의 화면이 꺼져있다. 연신 화면을 두드려 보지만 EMP로 인해 작동되지 않는다. 건물 밖으로 뛰어나온 레드가 큰 소음과 파편에 놀라 허둥대는 행인들 사이를 비집고 빠르게 건물 주변을 둘러본다.
“Shit! 놓친 건가.”
도로에는 자동차들의 추돌 사고로 뒤엉켜 멈춰 서있고 신호등의 모든 불들은 깜박이고 있다.
잠시 후 경찰차량의 사이렌이 들려온다
레드와 나 팀장은 도로가에 대기하고 있던 세단에 서둘러 몸을 싣는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당황한 나팀장이 손을 떨고 있다.
“What the Fxxx! 아저씨, 좀 빨리 갑시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한 레드가 재촉한다.
“잡히면 최대한 괴롭게 죽인다.” 중얼거리는 레드를 두려운 눈으로 나 팀장이 바라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