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끝에 다다르면
아버지의 폐차장으로 서둘러 돌아온 라니는 공포에 질린 얼굴로 컨테이너 안의 장비들을 분리한다.
사색이 되어 갑자기 나타난 라니를 본 아버지가 라니의 컨테이너로 들어선다.
“무슨 일이니?”
“별일 아니에요. 저 잠시 강원도 땅에 가 있을게요.”
“거긴 왜? 무슨 일인지 말을 해봐라. 그래야..” 라니가 아버지의 말을 가로막으며 말한다.
“진짜 별일 아니에요. 좀 조용한 데서 머리 좀 식히려고요. 참, 아버지 이거 받으세요.”
라니가 명품 캐리어 하나를 건넨다.
“이게 뭐니?”
“이따 집에 가서 열어보시고 폐차장도 이제 폐업하시고 쉬세요.”
“갑자기 폐업은..”
“제가 돈 벌잖아요. 그것도 많이 하하하.”
“하기사 요즘 허리도 안 좋고 그러긴 하다만.. 폐업하려면 절차가..”
“오늘 당장 폐업 신고하시고 어머니하고 세계여행이라도 다녀오세요.”
라니가 검은색의 익스프레스 카드를 지갑에서 꺼내 건넨다.
“이건 또 왜 주는 거냐?”
“그거 가지고 다니시면서 드시고 싶으신 거 드시고 사고 싶으신 것 다 사세요.”
“아니, 난 도통 이해가 안 돼서 그러는데..”
“그냥, 그렇게 하세요. 제발..” 라니가 약간 짜증 섞인 목소리로 아버지의 말을 다시 끊는다.
“저 지금 좀 바빠요. 아버지 이제 그만 퇴근하시고 집에 가시는 길에 폐업신고도 하세요. 그리고 가능한 한 빨리 여행 가세요. 아셨죠.”
“그래 알았다. 일단 휴업하면서 부동산에 내놓으마. 그런데 진짜 아무 일 없는 거지?”
“네, 걱정 마시고요. 제가 폐차장 정리하고 문단속도 잘하고 폐업안내문도 입구에 잘 보이게 붙이고 갈게요. 조심히 먼저 들어가세요.”
“그래 알았다. 너도 몸조심하고, 전화 자주 해라.”
“당분간 연락도 하지 마세요. 그리고 저 강원도 간 것도 아무한테도 알리지 마시고요.”
“진짜 무슨 일 있는 거지?”
“혹시나 해서 그래요. 꼭 그렇게 하셔야 해요. 아셨죠.”
“그래 알았다. 니 엄마랑 나는 좋지 하하하 니 엄마가 죽기 전에 크루즈로 세계여행 꼭 해야 한다고 그렇게 성화였는데 이참에 니덕 좀 보자꾸나. 하하하.”
“네, 그렇게 하세요. 돈 걱정 마시고요.”
“그래 알았다. 근데 내려가기 전에 니 엄마 한 번은 보고 가야 하지 않겠냐?”
“여행 다녀오시면 그때 뵈면 되죠. 제가 지금 진짜 바빠서요.”
“그래 알았다. 몸조심해라.”
“네, 건강히 즐거운 여행 하시고요.”
바쁘게 장비들을 분리하는 라니의 뒷모습을 잠시 말없이 바라보던 아버지가 컨테이너의 문을 살며시 닫고 나간다.
분리된 장비들을 케이스에 넣고 있을 무렵 클랙슨 소리가 두 번 울린다.
컨테이너의 문을 열어 밖을 내다보는 라니를 향해 아버지가 클랙슨을 한번 더 울리더니 미소 띤 얼굴로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려 보인다.
라니도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려 보인다.
아버지의 구형 픽업트럭이 덜컹이며 폐차장을 빠져나간다.
잠시 그런 모습을 물끄러미 컨테이너 문에 기대어 바라보던 라니가 두 뺨을 양손으로 툭툭 두들긴다.
“괜찮아, 다 잘 될 거야!”
라니가 서둘러 분리된 장비들을 케이스에 넣는다.
퓨어데빌 한국지사로 돌아온 레드가 회장실 문을 발로 걷어차며 들어선다.
그의 얼굴에는 피가 뿌려지듯 묻어 흘러내리고 있다.
놀란 이진호 회장이 책상 의자에서 벌떡 일어선다.
“Yo, man~. 왜 그랬어? 다 죽었잖아!”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니 부하들 말이야 이 dick head야!”
“한국말로 해 이 양키 잡종 새끼야!!”
“나 지금 한국말로 하잖아! 이 븅신아!”
이 회장에게 출입문 옆에 장식으로 놓여있는 커다란 백자기를 집어던진다.
“그리고 잡종 소리 한번 더 하면 저 벽하고 하나로 만들어 준다.”
날아오는 도자기를 간신히 피해 창가에 바싹 몸을 붙인 이 회장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담.. 담그라고 한건 미안하고…”
“담그라고? 뭘 담가? Fuck! 내가 퍼킹 김치냐? 이 회장 새끼야!”
“아니.., 그러니까 미안하다고 애들이 한 짓들 말이야.”
“한번 더 그러면 그땐 너도 찢어 죽인다. 이진호 새끼야!”
“그래 미안하네.”
레드가 기다란 소파에 앉으며 이 회장에게 이리오라 손짓하며 말한다
“본사 연결 전화기 가져와 그리고 밖에 빨리 청소해라 깨끗하게 아무 문제 없이.”
위성전화기를 레드에게 가져다주는 이 회장의 손이 덜덜 떨리고 있다.
“이제 나가서 청소해야지.”
떨고 있는 이 회장을 레드가 올려다본다.
올려다보는 자그마한 검붉은 눈동자가 희번덕거린다.
이 회장이 서둘러 회장실 밖으로 나가며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나 팀장, 어디야?”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이듯 통화하며 회장실의 문을 조용히 닫고 나간다.
레드가 통유리 너머로 붉게 물드는 아름다운 서울의 하늘을 바라다본다.
피 묻은 손에 쥔 위성전화기의 안테나를 위로 뽑았다 넣었다를 반복하며 앉아있다.
안테나를 뽑을 때마다 통유리 창가 벽면에 설치된 인도어 리피터(Indoor Repeater)의 LED 불빛이 깜박인다.
한편, 라니가 컨테이너 안의 모든 장비들을 대형 SUV에 실으니 조수석까지 가득 찬다.
폐차장 이곳저곳을 꼼꼼히 살핀 라니가 폐차장 입구에 폐업이라 커다랗게 프린트된 종이를 붙이고는 강원도로 출발한다.
굽이굽이 비포장도로를 한참을 달려 올라간 강원도 고성의 한 산자락에 조그마한 조립식 주택이 보인다.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고 소나무들과 자작나무 숲이 우거져있다. 아직 이른 봄이라 앙상한 자작나무와 소나무들이 스치는 바람에 ‘스스스’ 소리를 낸다.
조립식 주택의 문을 열고 들어서니 뽀얀 먼지가 일어난다.
“흡! 컥컥”
라니가 팔꿈치로 코와 입을 가린 채 서둘러 커튼을 열어젖힌다. 그러자 뿌연 먼지가 라니의 머리와 어깨에 내려앉는다.
“아씨.., 5년 만에 왔더니 엉망이네.”
닫혀있던 창문들을 열어 환기를 시키며 벽면에 붙어있는 진공청소기를 집어 든다.
“참, 충전이 안 돼있지..”
라니가 두꺼비집의 스위치를 올린다.
그러고 나서 전등 스위치를 올려본다.
“다행히도 태양광 전기는 잘 들어오네. 혹시나 걱정했는데.”
가구들과 집기들 위의 먼지들을 털어내기 시작한다.
“켁켁 마스크가 필요해.., 이건 뭐.”
피어오른 먼지들을 참지 못하고 집 밖으로 나온 라니가 SUV의 콘솔박스에서 버프와 모자를 꺼낸다. 머리카락에 내려앉은 먼지를 손으로 훑어 털어내고 모자를 쓰고는 버프로 코와 입을 가린 후 모자의 뒷부분 위로 올리듯 버프를 쓴다. 특수부대에서 배운 대로...
“다시 시작해 볼까!”
충전이 끝난 벽면의 진공청소기를 집어 들어 청소를 다시 시작한다.
해가 떨어져 어둑해진 조립식 주택에 오랜만에 환한 전등 불빛이 숲 주변을 밝힌다.
청소가 얼추 끝이난 집에 가져온 장비들을 옮겨 넣는다.
라니의 얼굴엔 땀과 먼지들이 한대 뒤엉켜 마치 검은 땀이 흐르는 듯하다.
“출출한데 잠깐 쉴까.”
전기포트에 정수처리를 거친 지하수를 넣어 끊인다.
물이 끓는 동안 사발면 하나를 개봉해서 식탁 위에 올려놓는다.
그리고 케이스에서 장비들을 하나씩 꺼내 거실에 배치하기 시작한다.
밖에서는 고라니의 ‘꺄악’ 하는 소리가 숲 속에 울려 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