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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 중독인 부인에게 남편이 한 뼈 때리는 말

사람 노예원 칼럼


"왜 만 원짜리 머리띠도 못 사게 해요?"


결혼 초에 남편이랑 말다툼을 했습니다.

아무리 형편이 어려웠다지만,

만 원짜리도 제 마음대로 못쓴다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질 않았습니다.


'백만 원짜리도 아니고, 고작 만원인데...'

'원래 이만원짜릴 50%나 세일해서 파는 건데...'

'그래도 나는 나름 참 알뜰한 사람인데...' 이러면서요.


내가 명품백을 사달라고 했나,

브랜드 구두를 사달라고 했나,

해외여행을 가자고 했나,

심지어 결혼 전 제가 모은 돈으로 산다고 해도 안된다고만 했습니다.

작은 물건 하나 제 맘대로 못 사는 신세가 처량하기도 했습니다.


나는 왜 남들처럼 못 사는 걸까?

참 자존심도 상하고, 이런 게 결혼생활인가... 싶었어요.




'설마 돈을 아끼려는 게 이 사람의 진심인가?'


분명히 나를 사랑하는 남편인데 왜 이럴까..?

오해를 하기도 했고, 혼란스럽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한참 후에 알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제게 돈 만원이 아까워서 그런 게 아니란 것을요.


부인의 상처를 치유하고,

진정한 자존감을 되찾게 해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당시 저는 쇼핑중독 증세가 심각했었어요.

▶ 쇼핑할 때는 기분이 좋고,

▶ 막상 물건이 오면 그리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 또 다른 물건을 사지 못하면 초조하거나 불안했어요.

전형적인 중독 증세였습니다.


무언가를 살 때는 좋은데, 그렇지 못한 상태는 불행하다고 느끼는 그런 저의 불안정한 심리 상태를 남편은 무척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때를 되돌아보면

심각한 피해의식열등감에 사로잡혀있었던 것 같아요.

지극히 '남들에게 보여주는 삶'에 집착했던 것 같습니다.


명백한 물질의 노예였고,

제 영혼을 다운그레이드 시키는 생각과 행동이었습니다.




결혼 전부터 저는 스트레스를 쇼핑으로 해소하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돈을 좀 벌 때는 거의 매일 쇼핑을 했었어요.

나름 비싼 건 안 산다며... 제가 알뜰한 사람이라고까지 착각했었지요.


그야말로 쇼핑에, 물질에 미친 여자였습니다.

말로는 생명을 존중하고 동물을 사랑한다면서

정작 동물실험을 하는 물건들을 사 모으고,

가난한 나라의 노동자들을 싸구려로 착취해서 만드는 옷들을 더 사지 못해 안달 난 사람이었습니다.

몇 트럭을 버리고도 남은 옷들... 아니 옷 무덤.


샴푸, 린스, 트리트먼트,  기초화장품, 색조화장품, 액세서리, 신발, 가방, 옷, 가구, 냉장고, 음식, 차, 집 등...

세상엔 사야 할 물건들이 너무 많았고,

저는 남들에 비해 가진 게 너무도 적은 사람 같았어요.


수많은 광고와 물건들은 저에게 '더 사! 넌 이런 게 더 필요해!'라는 것 같았고,

SNS상의 화려한 사람들과 저를 비교해가며 스스로가 지질하다 느꼈던 것 같아요.

왠지 그들에게 '지는 것 같은 느낌'도 받았지요.

'어떤 사람들은 화려한 것들을 다~들 누리고 사는데 왜 나만 이렇게 살아야 해?'라는 열등의식도 있었습니다.


그러니 사진을 찍을 때도 다리가 더 길게 나와야 해!

이런 옷을 더 사야 해!

장소도 더 화려해야 해! 하며 이상한... (지금 와서 보면 미친-_-") 경쟁을 혼자 했던 것 같네요.


그 과정에서 제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인 남편을 힘들게 했습니다.

"위에서 내려찍으니깐 다리가 짧게 나오잖아요!"

"이 옷 예쁘지 않아요? 이거 살까요 말까요?"

"남들은 신혼여행을 해외로 가던데, 우린 국내로 가네요... 그것도 1박 2일..." 이러면서요.


순전히 제 욕심, 남과의 비교 때문에 가장 사랑하고 세상에서 제일 아까운 사람인 제 신랑을 괴롭혔습니다.

그깟 다리 짧게 나오면 어떻습니까? 다리가 있는 것만 해도 감사하지요.

예쁜 옷 입으면 예뻐집니까? 마음이 예뻐야 진짜 예쁜 사람이지요.


신혼 여행지가 해외든 국내든, 가든 말든 무슨 상관입니까? 둘이 행복하려고 결혼했지, 해외여행 가서 뽐내려고 결혼한 것도 아니잖아요. 당시 어머니께서 편찮으셔 1박 2일만 여행하는데 동의해놓고서 딴소리하는 건 지금 생각해도 치사한 일 같네요. 신랑이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말이지요.

신랑이 없었다면 신혼여행이고 나발이고 꿈도 못 꿀 일이었을 텐데요.

두 손, 두 발 있고, 마음 맞는 성실한 남자와 결혼한 것만 해도 큰 복인데 말이지요.

어딜 가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누구와 무엇을 하느냐가 훨씬 중요한데 말입니다.

다시 시간을 되돌린다면 제가 했던 말과 행동들을 모두 180도 반대로 할 겁니다.

위에서 좀 내려찍으면 어떻습니까? 사랑하는 제 남편이 부인 이쁘다고 찍어준 게 중요하지요^^




저는 가진 게 없어 가난한 사람이 아니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나를 희생해서 남을 돕는 게 선이고,

남을 희생해서 나를 돕는 게 악이라면,

저는 명백한 악인이었네요.


이런 개념들을 남편과 결혼하고 배웠습니다.

남편은 철저히 자신을 희생해서 남을 돕는 타입이거든요.


▶ 그는 지금껏 단 한 번도. 부인에게

"물 좀 떠와" "밥 차려와"라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 본인이 파김치가 되도록 일을 하고 와도, 부인 혼자 마트에 보내는 법이 없습니다. 무거운 짐은 남자가 들어야 한다면서요... (혼자 마트 가려면 몰래 가거나, 심지어 싸워야 합니다. 언제나 남편 승이지만요;;)


▶ 저보다 나이가 많음에도 늘 높임말을 씁니다.


▶ 부인이 담배를 끊으라고 한 것도 아니고, 그저 "베개에서 담배냄새가 나네요"라는 이 한마디에 20년간 피운 담배를 하루아침에 끊었습니다. (당시 맨 정신에 손가락이 6개로 보인다며 고통스러워했네요... 오죽하면 제가 다시 담배를 피우라고 말할 정도였지요.)


▶ 부모님 간병하느라 어깨가 다치고, 허리가 다치고, 발목이 나가도 쉬지 않았어요.

부인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두말없이 집을 나서고, 묵묵히 운전하고, 밤새 일도 했어요.

본인의 욕심을 위해, 이익을 위해 타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일? 이 남자에겐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렇지 못했네요.

조금 힘들면 제가 제일 서러운 사람인 것 같고,

조금 아프면 만사가 다 귀찮고 짜증이 났습니다.




어느 날 신랑이 제게 물었습니다.


"지금 가지고 싶은 물건이, 만약 내일 죽는다 해도 가지고 싶은 거예요?"라고요.


'만약 내가 내일 죽는다면...?'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일이었어요.

눈을 감고 어떤 마음일지 상상해봤습니다.


내일 죽는데 그깟 옷이 뭐가 필요하고, 구두 따위가 왜 필요하겠습니까.

그리고 제가 죽기 전엔 과연 그동안 열심히 사 모은 물건들이 생각날까요?

아니면 발목이 다쳤어도 부인을 위해 무거운 짐을 들어준 남편이 생각날까요?


당연히 후자겠지요.


마지막에 가장 기억나는 존재

그의 이익을 위해 나를 희생한 사람이 아닌, 나를 위해 그를 희생한 사람일 겁니다.


마지막에 가장 후회되는 것

나를 위해 그를 희생시킨 일일 겁니다.


마지막에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

소중한 존재를 위해 저를 희생한 일일 겁니다.


저는 그렇습니다.

그동안 지은 죄가 많아 100% 후회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지금이라도 후회를 덜 하는 삶을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지금 당신이 사고 싶은 그 물건은,

만약 내일 죽는다 해도  사야 하는 물건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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