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과 속도를 맞추어 걸어가기

영화 <체실비치에서>

by 책읽는 리나


이언 맥큐언의 <체실비치에서>를 읽고 나서 이 소설을 과연 어떻게 영화로 보여줄 수 있을까, 두 사람의 내면 심리를 영화에서 보여주는 게 가능할까 싶었다. 이 작품을 영화화하겠다고 나선 감독이 용감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영화를 보니 우려와 달리 참 멋지게 영상이 오히려 더 나은게 아닐까라는 느낌까지 들었다. 두 주인공의 과거의 이야기들을 플래시백으로 형상화하는 면에서는 오히려 영화적인 장치가 소설보다 극적이고 몰입이 쉬웠다.



이언 맥큐언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을 그동안 세 편을 보았다. <칠드런 액트>도 그러했는데 이 영화 역시 이안 맥큐언이 각본에 참여했다. 그래서 원작의 느낌을 더 잘 살릴 수 있었다. <칠드런 액트>와 마찬가지로 이 영화의 음악은 아름답다. 소설을 영화화하면 이게 제일 좋은 점 같다. 소설에서는 연주 장면이 나오고, 음악에 대해 설명이 나와도 직접 들려주는 것만큼 효과적이지 않다. 플로렌스는 바이올린 오중주 연주자인지라 극중에서 연주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선율이 아름다웠다. 마지막 연주 장면은 특히 감동적이었다. 극 전반에서 아름다운 클래식 음악이 계속 흘러나온다. 박자, 높낮이, 선율 등으로 인물의 심리와 상황을 묘사해주는 게 인상적이었다.



영화는 주제와 인물의 심리를 밀도있게 보여준다. 플로렌스와 애드워드는 핵반대 집회에서 만나 호감을 느끼며 서로에게 빠져든다. 연애 기간 동안 두 사람이 어떤 환경에서 성장해왔는가에 대한 과정이 제시된다. 두 사람은 각자 상처를 가지고 있다. 에드워드의 어머니는 기차역에서 정차하는 기차에 부딪혀 뇌손상을 입어 정상적이 생활이 불가능했다. 집안은 오랫동안 활기가 없었다. 쌍둥이 여동생과 함께 어머니를 돌보지만 집안은 날로 황폐해져가기만 한다. 플로렌스의 부모님은 현실적이고 다소 속물적이기까지 하다. 열세 살의 그녀가 아버지와 배를 타고 나가던 날, 그녀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된다.



에드워드가 플로렌스와 결혼을 해야겠다고 다짐한 장면도 인상적이다. 에드워드의 집에 방문한 플로렌스는 뇌손상을 입은 에드워드의 엄마를 잘 돌보아드린다. 주방과 거실의 묵은 때를 벗기고 청소를 한다. 어둡고 침울하던 집 분위기를 바꾸어나가자 에드워드 아버지가 "그녀랑 결혼해라" 라고 말한다. 플로렌스는 에드워드를 사랑하지만 첫날밤의 육체관계를 두려워하고 공포감을 느끼고 있다. 결국 첫날밤은 실패하고, 두 사람은 체실비치에서 날선 대화로 서로에게 상처를 입힌다. 플로렌스는 함께 돌아가자고 말을 건네지만 에드워드는 끝내 몸을 돌리지 않는다. 결혼한지 6시간만에 두 사람은 결국 헤어지고 만다.



소설과 영화가 가장 다른 장면은 결말이다. 특히 에드워드가 운영하는 음반샵에 와서 음반을 사가는 플로렌스의 딸과 만나는 장면은 굉장히 극적이다. 클래식을 전공하던 그녀는 에드워드가 즐겨듣던 록큰롤을 몰랐고, 가수도 구분할 줄 몰랐다. 에드워드가 좋아하던 가수의 음반을 사가는 딸의 모습을 보며 두 사람의 관계도 변화하고 바뀌어나갈 수도 있었을 텐데 라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영화의 마지막이 굉장히 영화적이라서 좋았고 인상적이었다. 영화를 보면서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상처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으며 온전히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상대방의 상처를 이해하고 보듬어 안기 위해서는 어떤 과정이 필요할까, 서툴렀던, 그래서 상대방을 받아들일 여유가 없었던 그때 그 시절에 대한 지금의 후회와 안타까움은 우리에게 무엇을 깨닫게 해주는 걸까.



인상적인 대사가 기억난다. 플로렌스가 오중주로 음악을 연주하는데 첼로를 연주는 찰스가 다소 빠르게 켜자 플로렌스가 말을 한다. “질문을 하듯이 부드럽게” 연주하라고 말한다. 악기를 연주하다보면 한 번쯤 경험해보았겠지만 나만 신경쓰다보면 절로 속도가 빨라진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연주하려면 속도를 맞추어야 한다. 상대방과 속도를 맞추어 함께 연주해나가는 것, 이게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자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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