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히 고전적으로 들리지만 내 취미는 영화 감상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취미란에는 항상 영화감상이라고 적어왔다. 독서는 하지 않던 기간도 있었지만 영화를 보지 않은 시기는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처음 극장에 가본 것은 초등학교 때였다. 집에서 텔레비젼만 보다가 극장에 처음으로 간 날이 잊혀지지 않는다. 고등학생이던 오빠는 좋은 곳에 데려가준다면서 따라오라고 했다. 그렇게 극장이란 곳에 처음 가보았다. 그 때 본 첫 영화는 <슈퍼맨>이었다. 하늘을 나는 망토를 걸친 슈퍼맨만큼이나 처음가 본 극장은 신기하고 멋진 공간이었다.
그 후로 중학생이 되면서부터는 혼자서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당시 한국영화는 방화(邦畫)라고 불렸는데 방화란 외국영화가 아닌 국내에서 만든 영화를 뜻하는 말이었다. '방화' 시대의 한국 영화는 작품성이 있는 영화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비슷비슷한 주제로 양산되던 국내 관객들을 수요로 하는 영화가 많았었다. 그때만 해도 한국영화는 보지 않는다고 말하는 주변사람들이 많았다. 이후 한국영화 상영을 보장하기 위해 스크린 쿼터제를 도입하면서 찬반양론이 거세기도 하였다. 그런 한국영화가 이제는 그 틀을 깨는 다양한 시도 끝에 전세계인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다.
듀나의 <여자 주인공만 모른다>라는 책을 보면 두 글자 제목을 좋아하는 한국영화계 이야기가 나온다. 두 글자 제목이 많다는 건 체감하고 있었지만 모아놓고 보니 두 글자 제목의 영화가 정말 많다. 이런 영화도 있었어? 하는 처음 들어본 제목의 영화도 있고, 보고 싶었는데 때를 놓쳐 못 본 영화도 있다. 체크해보니 삼분의 이가 넘는영화를 보았다. 참고로 소재와 제목이 비슷한 느낌이라서 헷갈리는 영화들도 많다. <밀정>과 <암살>의 내용을 맨날 구별 못한다. <마녀>와 <악녀>도 헷갈린다.
인랑, 염력, 해빙, 옥자, 트릭, 춘몽, 탐정, 역린, 공범, 광해,버닝, 물괴, 군산, 악녀, 재꽃, 그물, 대호, 디워, 경주, 타워, 가시, 괴물, 변산, 재심, 침묵, 밀정, 손님, 특종, 표적, 소원, 간첩, 독전, 궁합, 하루, 그후, 럭키, 암살, 협녀, 해무, 화이, 화차, 명당, 영주, 용순, 곡성, 자백, 함정, 명량, 감기, 후궁, 창궐, 협상, 친구, 순정, 분장, 사도, 해적, 설계, 벌새, 만추, 마녀, 공조, 리얼, 터널, 초인, 간신, 군도, 맨홀, 닥터, 써니, 공작, 쉬리, 박열, 사냥, 동주, 스물, 타짜, 관상, 만신, 하녀,악녀
이 중에 좋았던 영화 몇 편 골라보았다.
1994년 한국의 시대적 상황과 한 소녀의 삶이 연결되어 있는데 그 시선이 가슴 한켠을 서늘하게 만든다. 열네 살 은희가 세상에 부딪히고 성장해가는 가슴 아픈 성장담을 보여준다. 불안으로 가득한 시대, 사춘기의 위태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보여준다.
감독은 영화 내내 신과 악마, 선과 악, 무속신앙과 기독교 등에 대해 굵직굵직한 질문을 던진다. 기독교 종교를 가진 분이 본다면 더 무서울 수도 있을 것 같다.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하다. 곽도원씨 연기는 극성스러운 연기부터 딸바보 연기까지 다 잘하고 황정민씨는 진짜 무당인가 싶다.
2018년도에 본 한국영화 중 가장 인상적으로 본 영화이다. 이 영화 한 편으로 인간사 모든 보편적 주제들 (선과 악, 욕망과 허무, 계층 간의 대립, 기억의 왜곡, 집착과 파멸 등)을 다 풀어낼 수 있을 것 같은, 즙이 많은 과일 느낌의 영화였다. 쉽게 해석되지 않고 다양한 수수께끼로 남겨져있는 메타포들의 향연이 특히 좋았다.
그 밖에 기억나는 영화들이다.
이 중 유일하게 극장에서 두 번을 본 영화이다. 폭력적인 장면들에도 불구하고 15세 관람가를 받아서 말이 많았던 영화이고 스토리상 치명적인 약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의 연기가 돋보이는 영화였다. 특히 고 김주혁이 펼치는 연기의 몰입감이 정말 대단했다.
이 영화도 정말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영화이다. 여주인공은 주인집 남자와의 관계와 임신을 통해 신분 상승의 욕망을 가지지만 그녀의 욕망은 무참히 짓밟히고 만다. 자신을 파멸시켜가면서까지 했던 복수는 그들에게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마지막 장면이 정말 충격적이었다.
이 영화는 좋았고 나쁘고를 떠나서 기억에 오래 남는다. 터널과 다리 공포증이 있는데 터널이 무너지면 어떻게 하지? 다리가 무너지면 어떻게 하지? 하는 공포때문에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 차에 물이나 비상식량을 가지고 다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휴대폰 바꾸기 전에 밧데리가 금방 닳는 편이었는데 그래서 새 걸로 바꿔야하나 생각했었다.
정말 펑펑 울었던 영화이다. 구체적 장면은 단 한 씬도 나오지 않았지만 길거리에 뒤집혀진 노란 우산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며 하염없이 눈물 흘렸던 기억이 난다.
그리 잘 만든 영화는 아닌데 이상하게 해질 무렵의 병원 분위기가 오랫동안 생각나는 영화이다. 조진웅의 신들린 연기도 인상적이었다.
두 글자 한국영화, 어떤 게 기억나시나요?